꾸준히 쓰는 사람
"여기에서 일하고 싶어요". 복지관에 실습하러 온 학생이 나에게 말했다.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서는 전공과목 중에 '사회복지 현장실습'을 해야만 한다. 160 시간, 즉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현장 경험을 배워야만 한다. 사회복지사가 되는 조건 중에 하나인 셈이다. 보통은 방학 기간을 활용해서 실습을 하는데, 실습 과정 중 특강으로 내가 근무하는 조직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복지관으로부터 부탁받았다. 160 시간 중 2시간이라고 하면 짧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회복지사가 되는 필수 과정 중 하나로 부여받은 시간이라서 결코 그 무게가 적지 않았다. 두 시간 뒤에 그는 나에게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마 실습하러 온 학생은 내가 일하는 조직에 대해 세세한 이야기를 들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장의 사회복지사도 내가 근무하는 조직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알기 때문에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접근했다. 나는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할 때만 해도, 사회복지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나에게는 사회복지사라면 응당 가지는 '소명의식'이랄 것이 없었다. 나는 사회복지사를 외면하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했고, 그 과정에서 사회복지를 선택한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후는 뻔하지만은 않지만 뻔한 이야기를 했다. 첫 직장에서 좋은 관리자를 만나 사회복지사로서 소명의식을 고민하고, 전문성을 갖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 배움을 바탕으로 이제는 주체적인 사회복지사로서 조직과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나는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 특강을 종종 한다. 마지막에는 질문이 있냐고 물어본다. 대체로 질문은 없는데, 어색함을 무마하기 위해 명함을 나눠준다는 식의 농담을 던지며 마무리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실습 특강 마지막에 질문이 있냐고 말했다. 실습하러 온 학생들이 진중하게 듣고 있음은 알고 있었지만, 부탁받은 시간마저 지나 점심시간을 빼앗는 상황이었기에 질문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명함을 받을 수 있나요'라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사뭇 당황한 채 농담을 뱉으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그는 정말 나에게 명함을 받으러 왔고, "김재용 사회복지사입니다."라며 정중히 명함을 건넸다. 그는 명함을 받으며, 여기에 관심이 생겨서 일하고 싶다고 수줍지만 당당하게 말했다.
나도 그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대상은 사회복지사가 아닌, 뮤지컬 배우 엄기준이었다. 군 복무를 마칠 때까지도 나는 사회복지사가 나의 직업이 아닐 것이라 굳게 믿었다. 하고 싶은 일을 찾던 도중, 우연히 뮤지컬 무대의 스태프로 일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작품 마지막 날의 회식 자리에서였다. 우리는 큰 사고 없이 끝났음을 거나하게 축하했다.
축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길어졌고, 그때가 1월이었으니 한 겨울 새벽 4시 33분이었다. 나와 그는 술이 취한 채 옆 자리에 앉게 되었다. 나는 솔직한 내 동경을 고백했다. "저 뮤지컬 배우가 꿈인데요. 제가 나중에 뮤지컬 배우가 된다면, 사진 들고 찾아가게 사진 한 장 찍어주세요". 그는 나에게 응원한다는 말을 했고, 우리는 그날의 순간을 남겼다. 아마도 그는 기억조차 하지 못할 그날의 고백과 사진은 나에게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비록 술에 취해 둘 다 눈이 풀려있는 사진이지만.
내가 엄기준 배우에게 가졌던 동경과 나에게 찾아와 말했던 실습생 취업 이야기는 그 무게가 다름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시절을 떠올리는 것은 어렴풋이나마 가능했다. 사회복지사로서 노력해 왔던 8년이라는 시간이 헛되지 않음을 조금 알 수 있었다. 항상 '움직이는 사람인 동시에, 움직이도록 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이상에 조금씩이나마 다가가고 있음을 표현으로 듣게 되자, 앞으로 '사회복지사로서 걸음을 더 신중히 걸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실습생의 관심 이야기를 더 감사하게 느꼈던 이유는 내가 근무하는 기관에 실습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관심 있어 내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니지만, '두 시간 남짓에 변화를 위한 마음을 갖도록 할 수 있다면, 사회 변화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내가 브런치에서 지속하고 있는 사회변화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나는 사회복지사로 느끼는 일상에 대한 글로 사회 변화를 독려한다.
직업인으로서 사회 변화를 외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을 간절히 염원한다. 내가 사회 변화를 위한 생각이나 열망이 아예 없는 사람을 움직이는 사람으로 돕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마음은 있지만 당장은 행동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행동으로 이어지는 결심만으로 환영할 것이다. 내가 가진 재주는 특별한 것이 없다. 하지만 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움직이려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계속해서 쓸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