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최몇?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다. 여행에서 먹는 즐거움을 배제하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친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문화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에 음식은 좋은 도구다. 이를 테면 돼지 국밥이나 부대찌개처럼, 전쟁 후 한국인의 삶을 어렴풋이나마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얼마나 많이 먹을 수 있는가?'를 다시 말하면, '얼마나 많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가?'가 된다.
내가 햄버거를 최대한 많이 먹었던 기억은 맘스터치 싸이버거 단품을 기준으로 4개까지 먹어본 적이 있다. 나름 대식가인 셈이다. 캄보디아 여행 중에 길을 걷다가 길거리 좌판에서 돼지고기 덮밥을 먹고, 비록 소통이 어려워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다양한 숯불 꼬치구이를 사서 먹고, 후식으로 과일 음료까지 한 끼에 먹는다. 방콕에서는 혼자서 2~3개 요리와 과일 음료를 한 가게에서 주문해서 먹기도 했다.
늦은 밤 길거리에서 나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유하고, 음식을 가져다주고, 식탁 정리까지 도맡아서 하던 열 살 즈음의 아이를 통해 캄보디아의 삶을 잠시나마 엿본다. 방콕은 현대화된 도시였지만, 식재료로 쓰이는 신선한 수산물을 통해 방콕이라는 도시가 바다 인근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운 날씨는 불쾌하기만 한 것이 아닌 과일의 달콤함으로 바뀐다. 따라서 '얼마나 먹을 수 있는가?'는 혼자서 여럿 못지않게 풍성한 여행을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한 기준이 된다.
아만다(아무나 만난다).
혼자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는 것은 자아 성찰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성찰을 위한 사색에 잠기기 전에 마주하는 것이 있다. 다른 여행객들의 들뜨고 행복한 모습에 비해서 나의 현재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 괜스레 지루하다고 느끼거나, 여행에서 깨닫는 통찰을 누구와도 나누지 못하며 오히려 외로움을 느끼기 쉽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와서조차 그 감상을 나누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혼자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일정을 다 채우지 못하고 포기한 후기를 심심치 않게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성향마다 다르겠지만 외로움은 성찰을 위해 의도적으로 가져야 할 것이면서, 지치지 않기 위해 멀리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혼자 여행하는 사람은 때로 동행을 구하기도 한다. 혼자 여행은 자유롭게 일정을 조절할 수 있기에 외로움을 느낄 때면 언제든지 동행을 선택할 수 있다. 혼자 여행을 시작했다고 해서 끝이 혼자여야만 한다는 강박은 의미가 없다. 사색만 성찰의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사람을 통해 스스로를 알 수 있는 기회도 있다.
나는 이것이 혼자 여행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여행 파트너가 없으니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나는 보통 여행에서 게스트 하우스나 호스텔 같은 곳에 묵는다. 이러한 숙소의 로비에서는 나처럼 혼자 여행하는 사람을 위해 여행지 추천이나 현지인 맛 집을 알려주고, 다른 여행자와 자연스레 만날 수 있는 공간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비슷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 아닌, 전혀 다른 생각과 삶의 지향을 가진 사람과 여행하다 보면 내가 가진 편협함을 깨닫게 된다. 아무나 만나지만, 언제나 친구가 될 수 있다.
안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꿈꿨니?
일본인 친구가 제주도 여행을 계획할 때였다. 그녀에게 조언을 해주다 안전을 대하는 태도가 다름을 깨달았다. 제주도는 대중교통으로 여행하기 쉽지 않다. 나에게는 제주도가 모국인 것도 차이겠지만, 나는 제주 여행에서 히치하이킹 여행을 한 적 있다. 덕분에 좋은 친구를 만났고, 함께 여행도 했고, 손에 꼽는 여행 추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히치하이킹 여행을 추천할 수 없었다. 안전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기록이 남는 카카오 택시를 추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는 택시가 유일한 선택지가 됐다.
반면 첫 해외여행인 도쿄에서는 반대였다. 나와 친구는 길을 가다가 또래로 보이는 일본인 여자에게 저녁 먹을 장소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녀는 우리를 자신이 자주 가는 이자까야로 데려갔고, 나는 무계획 여행이었기에 함께 맥주 마시며 여행 계획을 짜달라고 했다. 내 친구는 일본 만화인 "짱구는 못 말려"에 나오는 다다미가 깔린 곳에서 자고 싶어 했다. 그녀 집에 마침 다다미가 있었고, 우리는 처음 가보는 나라에서 술 마신 상태로 호텔을 뒤로하고, 길에서 처음 만난 그녀의 집에 다다미방에서 잠을 잤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곳과 견주어도 치안이 좋다. 새벽까지 술 마시고 돌아다녀도 안전한 나라는 몇 없다. 다만 해외에서는 그렇지 않다. 성에 따른 차별을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남성인 나는 여성에 비해 안전함을 느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동행을 구하는 과정에서 낯선 사람과 만나거나,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거나, 각종 범죄로부터의 위험을 걱정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적다.
어렸을 때부터 안전에 대한 걱정 없이 자란 사회 환경과 남성이라는 성 구분, 숱한 여행에서 다양한 경험은 자기 효능감과 자신감으로 돌아왔다. 복합적인 결과지만 안전에 있어 불평등은 존재한다. 이로 인해서 개인의 성장 여부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옳지 않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혼자 여행에 안전은 언제나 우선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여행은 나의 여행처럼 순탄치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를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혼자 여행을 떠나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