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직접 해 먹으면 좋은 것이 식재료로 계절 변화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겨울이 오면 굴이나 꼬막을 산다. 굴보쌈이나 꼬막 비빔밥을 해먹을 때면 차가운 온몸을 덥혀주는 맥주가 술술 들어간다. 반면 과메기에는 피트 위스키가 비린 맛을 훈연 향으로 감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바지락이나 미나리를 산다. 바지락은 선도가 중요하다. 봉골레 파스타를 해 먹고, 남은 것은 술찜을 해서 선도를 관리한다. 산미가 풍부해 평소에 잘 마시지 않던 화이트 와인을 요리에 쓰고 남았을 때 마신다.
삼겹살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다만 봄이 제철인 미나리를 함께 먹으면, 기름기 많은 고기에 초록초록한 채소를 먹음으로써 죄책감도 함께 넘긴다. 삼겹살의 고소함과 미나리의 쌉싸름함은 막걸리의 단맛과 페어링이 좋다. 여름에는 갈치가 빠질 수 없다. 바지락과 마찬가지로 선도가 좋을 때는 구이를, 나머지는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갈치조림으로 해 먹는다. 갖은양념으로 선도가 요리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을 전어와 며느리 이야기는 구울 때의 이야기다. 회로 먹는 다면 여름이 가을보다 낫다. 생선 구이를 먹다가 뼈가 목에 걸려서 아팠던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는 세꼬시를 싫어했다. 하지만 잔 뼈를 씹으면서 고소함을 알게 된 현재는 여름 전어 세꼬시가 제철 음식이 됐다. 나는 부산 사람이라서 사계절 내도록 회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여름에는 회를 먹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소주와 함께라면 배 아플 걱정도 없다.
게장은 여름에도 먹을 수 있다. 다만 먹고 남은 껍질로 벌레 꼬이는 것이 신경 쓰여 먹지 못했을 테다. 더군다나 꽃게는 가을이 제철이다. 냉동실에 항상 있어서 제철이 언제인지 모르는 새우도, 대하를 떠올리면 쉽다. 싱싱한 새우를 소금에 구울 때면 언제나 코 끝이 시렸다. 치킨은 제철이 없다. 그럼에도 가을이 좋다. 여름처럼 습도가 높지 않아서 바삭함을, 겨울처럼 금방 식지 않아서 따뜻함을, 싱그러운 봄보다는 여름철 지친 체력 보충에 딱인 계절이 가을이다.
흑백요리사에서 최현석 셰프가 "주방에서 셰프 위에 있는 것은 단 하나, 재료."라고 했다. 요리를 하기 전에는 몰랐다. 제철 식재료가 가지는 신선함과 풍부한 영양소의 중요함을 말이다. 이전에는 스팸, 인스턴트 라면, 냉동식품을 주로 먹었다. 지금이라고 전혀 안 먹는 것은 아니지만, 요리를 하면서 그 비율을 현저하게 줄였다. 비록 직접 해 먹는 것이 전문 식당만큼 맛있지 않겠지만 제철 식재료가 어느 정도 이상의 맛을 보장한다.
제철 음식을 해 먹는 것은 자기 돌봄이라고 생각한다. 제철마다 할 수 있는 요리의 가지 수가 늘어나면서 생기는 효능감도 엄청나지만, 제철이면 오히려 비싸지는 음식점과 달리 제철이라 신선한 재료를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금전적 이점, 사 먹으면 한 가지 요리 밖에 못 먹지만 해 먹으면 여러 가지 형태로 제철 식재료를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 된다.
독립하면서부터 제철 음식을 해 먹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아버지가 대형 마트에 갈 때 따라가서 먹고 싶은 것을 고르는 형태였다면, 이제는 일주일 동안 먹을 식단을 계획하면서 장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제철 음식이나 식재료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혼자 살면서 오롯이 부담해야 하는 식비를 줄이기 위해 제철 식재료를 요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는 제철 음식을 먹으며 '스스로를 잘 돌보고 있구나.' 생각한다. 제철 음식은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가공 식품이 아니라, 그 시기에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항상 특별한 존재가 되기 힘들다. 그러나 제철 음식을 해 먹으면 나를 항상 특별하게 돌볼 수 있다. 잠자는 것처럼 매일 반복하는 것이 바로 먹는 것이다. 단지 제철 음식을 해 먹는 것만으로 스스로를 잘 돌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