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중심의 사랑과 말을 전하다.

by 김재용

우리 집 강아지는 밥 먹는 시간을 스스로 선택한다. 자율 배식을 하는데, 쉽게 말해 식판에 항상 여유 있게 밥을 주는 것이다. 식탐 때문에 달려드는 일이 없지만, 단점은 식욕이 많지 않아 사료를 많이 먹지 않는다. 산책을 하며 다른 강아지의 냄새를 맡고, 동네방네 자신의 소변을 뿌리고 난 뒤에는 배가 고픈지 물도 마시고 밥도 곧잘 먹는다. 우리 집 강아지는 스스로 선택하는 행위자다.

끈끈이는 산책 중 :D

오늘도 저녁 산책 후에 밥을 먹고 오길래 침대로 가는 발걸음을 붙잡고, 한참을 쓰담쓰담했다. 잘했다고 칭찬도 하고, '아이고 예쁘다'라며 사랑한다 말도 하고, 애정표현으로 볼에 뽀뽀도 해주고 안아준다. 그런데 뽀뽀를 해주거나 안아주려고 할 때는 물러설 때가 많다. '으이그 자식아'하면서 머리를 쓰다듬고 말지만, '우리는 소통하는 방법이 다르구나'하고 생각이 들었다.


우리 "끈끈이"는 나에 대한 애정표현으로 와서 손을 핥기도 하고, 내 몸 구석구석을 냄새 맡고, 내게 달라고 하지 않은 손을 자꾸만 준다. 나는 핥는 것이 싫어 못 핥게 했고, 엉덩이와 같이 민감한 곳의 냄새를 맡을 때는 엉덩이를 피하고, 내가 달라고 했을 때가 아니면 손을 줘도 받아주지 않는다.


주인과 반려견, 보호하는 자와 보호를 받는 자, 인간과 동물로 명확하게 위계를 구분했기 때문은 아닐까? 내가 원하는 애정표현만을 그에게 받아들여 달라 강요했고, 내가 원할 때만 그의 애정표현을 받아줬고, 사람의 말과 제스처로만 소통하기를 원했다. 말과 행동은 내 무의식 중 가지고 있는 관계성을 드러내는데, 지극히 내 중심의 사랑과 말을 그에게 전달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평등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했다. 이는 인간뿐 아니라 모든 식물, 동물을 할 것 없이 생명에게 적용되는 일종의 정언명령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환경적이나 사회적으로 약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집에 함께 사는 강아지를 대상으로는 그러지 못했다.


나 중심의 소통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스스로는 바뀌려는 생각도 고민도 하지 않은 체, 상대방이 바뀌기만을 바라는 내 이기심에 부끄러움과 미안함,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혼란스러움이 공존한다. 반성과 고민을 하며 글을 쓰는 와중에도 "끄니"는 내 가랑이 사이의 똬리를 틀고 쉬고 있다. 그저 내 온기를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애정표현이 되지 않을까? 앞으로는 미러링을 하면서 "끄니"의 의사소통도 함께 해보는 형태로 바꿔나가는 것으로 그 첫걸음을 시작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