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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Mar 02. 2023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와 보이스 피싱의 공통점

작정하고 달려드는데 별 수 있나

평일 오전 10시쯤, 내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때마침 휴가를 쓰고 집에서 쉬려고 했던 날이라 늦잠을 자고 있었다. 전화 소리에 반쯤 눈을 뜨고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전화를 받았다. “이대성 수사관입니다”. 수사관이라기에 경찰인 줄 알았지만, 그는 검찰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른 아침부터 검찰에서 나에게 왜 전화가 왔는지 모르지만, 검찰이라는 말에 잠이 확 달아났다. 그 후로 수사관은 다짜고짜 내게 화를 냈다.


“김재용 씨, 맞으시죠? 91년 10월 24일 생. 지금 본인 계좌가 불법적인 일에 도용되었던 사실이 확인되어 전화드립니다”. 그 수사관은 내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와 주 거래은행의 계좌 번호 등 모든 정보를 토씨하나 안 틀리고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실제로 내가 했든 안 했든 내 명의 계좌가 사용되었으니 처벌을 받는다는 협박부터, 계좌나 은행에서 인터넷 뱅킹을 위해 발급받은 보안카드를 핸드폰에 카메라로 저장해 두면 어떡하냐는 면박과 당장 법원에 출두하라고 압박하는 등 그는 나를 범죄자 취급하며 마구 겁박했다. 나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무서웠고, 자칫 범죄자가 될까 두려웠다.

© 2023. 영화사 미지. All right reserved.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에서 이나미(천우희)가 집에 가는 버스에서 스마트 폰을 떨어 뜨리고, 이 사실을 모른 그녀는 채 집으로 간다. 떨어진 스마트 폰을 주운 우준영(임시완)은 스마트 폰에 저장된 번호로 전화가 오자, 한 두 번 해본 일이 아닌 것처럼 아무 거리낌 없이 음성 변조를 해서 스마트 폰 주인의 정보들을 조금씩 알아낸다. 심지어 이나미 앞에 나타나는 대범함까지 보이는 데, 작정하고 상대를 속이는 우준영이 연쇄 살인마라는 것을 알아차릴 리 없다.


자칭 이대성 수사관이라는 사람은 내게 자신이 시키는 데로 적극 협조해야지만 내가 범죄자가 아님을 증명하고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내게 요구하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스마트 폰이 꺼지면 안 된다는 것, 그렇게 계속해서 충전을 하며 통화상태를 항상 유지하라고 말했다. 이쯤 되니까 나는 신종 보이스 피싱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확인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스마트 폰이 감시되고 있을 수 있다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하지 못하게 했고, 혹시나 다른 사람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한다면 수사에 대한 비밀을 공개한 것으로 간주하여 나를 처벌하겠다고 했다.


나는 집에 혼자 있었고, 더군다나 감시되고 있을 수 있다고 하니까 전화나 각종 SNS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검색해 볼 수가 없었다. 당장 눈앞에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수사관이 보내준 범죄 사실과 관련한 기소를 적시한 공문뿐이었다. 내 눈과 귀, 입에 제약이 생겼다. 따라서 내 계좌가 실제로 도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함정 수사 한다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고, 나는 그의 말에 따라 최대한도까지 대출을 받았다. 대출을 받으면서도 혹시나 일이 잘못될 까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대출을 받고 내 통장에 돈이 입금되는 것을 확인한 시간은 오후 4시가 넘었다.

© 2023. 영화사 미지. All right reserved.

우준영은 이나미의 스마트 폰을 해킹해 얻은 정보로 이나미의 취미와 사람들과의 관계, 직업, 삶의 패턴 등을 조사하고 분석한다. 얻은 정보를 조합하여 본인은 이나미와 좋은 관계를 만들고, 이나미는 주변 사람들과의 신뢰를 잃도록 조작한다. 심지어 우준영은 이나미 앞에 나타나서 가장 친한 친구와의 관계를 이간질한다. 결국 가장 친한 친구뿐 아니라 아버지까지 관계를 단절하고서야 우준영은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6시간을 그 수사관에게 혼도 나고, 위로도 받으며 점점 그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그는 오랜 시간 통화하며, 요동치는 내 감정을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에 적절히 이용했다. 지나고서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치밀하게 짜인 범죄자의 각본에 신명 나게 놀아났다. 내게 각종 협박을 통해 겁을 먹게 만들고서 협조만 잘한다면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찾도록 도와주겠다며 나를 달랬다. 내가 그를 점점 신뢰하기 시작하자 수사관은 그제야 본인의 최종 목적을 이야기했다. 다음날 약속한 시간에 검찰에서 보낸 수사관과 함께 출금하고, 그 돈을 자신의 수사관에게 전달하라고 했다. 마침내 통화를 끊고서야 조심스레 해당 검찰청에 전화를 했고 보이스 피싱임을 알았다.

보이스 피싱은 절대로 허술하지 않다.

주변 지인들은 나의 보이스 피싱 경험을 듣고 걱정과 놀람, 위로와 한탄의 말들을 쏟아냈다. "너처럼 이성적인 사람이…".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 돌아보면 이상한 것 투성이었지만, 만약 같은 상황이 다시 반복된다고 해도 처음부터 보이스 피싱임을 확신하고 그 수사관에게 호되게 할 자신이 전혀 없다. 그 수사관이라 자칭했던 범죄자는 내 모든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고, 나는 보복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보복의 위험을 떠나서 작정하고 속이려 드는 사람을 단번에 간파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생각이 든다.


내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 스마트 폰을 잊어버린 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겠지만, 내 개인정보가 어디서 유출되는 지도 모르는 상황에 위험은 스마트 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 메일과 같이 내 직접적인 개인정보뿐 아니라, 나를 유혹하는 수많은 가짜뉴스처럼 간접적인 정보들에 대한 위험도 공존한다. 사실 모든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계책이라던지, 대응할 수 있는 해결책은 내게 없다. 하지만 영화에서의 스마트폰 해킹과 내가 당했던 보이스 피싱에서는 공통점이 두 가지 존재했다. 하나는 상대가 어떻게 해서든지 나를 속이고자 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피해자의 사회적 관계망을 망가뜨린 다는 것이다. 상대가 나를 속이고자 하는 것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으니 다른 하나에 집중해야 피해를 그나마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해킹을 당하거나 보이스 피싱을 당하더라도, 그 과정 중에 의심이 가는 상황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주변에 알리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피해 당사자이기에 두려움과 공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내 주변의 인물은 나보다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대응과 고민이 가능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나를 안심시키고,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마 범죄자들은 피해자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관계망들을 끊어내려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범죄에 대한 대비책으로서만 사회적 관계망을 쌓아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사회적 관계망은 범죄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 2023. 영화사 미지. All right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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