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가스 사람들은 왜 이렇게 MEAN 해요?

2018년 2월 베가스 잡화쇼에서

by 전은도

"베가스 사람들은 왜 이렇게 MEAN 해요?"

이것은 내가 베가스 도착한 지 이틀 만에 내 입에서 나온 소리다. 그 말을 들은 마이클씨는 움찔했는데 그것은 평소 느긋한 태도를 유지하는 그에게서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만큼 그 한마디가 어딘가를 건드렸었나 보다.


그러고 보면 어느 지역 사람들이 심술궂다고 단정 지어 말하는 건 꽤 차별적이다. 하지만 난 그런 것을 구분할 심적 상태에 있지 않았고 그저 서러움과 야속함으로 똘똘 뭉쳐 이성적인 모습을 잃었었다.

문제는 베가스의 ASD 쇼장을 걸어갈 때 일어났다. 난 아침에 바쁘게 쇼장으로 향하는 인파들에 섞여 걷고 있는데 뒤에서 똑똑히 내 귀에 와 꽂힌 말.

"Koreans are so skinny."

어딘가 모르게 비꼬는 듯한 억양. 그 억양은 정확히 skiny에 강세가 있었다. 여기서 아는 것의 불행이 드러난다. 괜히 어설프게 몇 단어 알아들을 줄 알아가지고는. 몰랐으면 난 기분 좋게 그곳에 머물렀을 텐데.

말랐다는 표현이 칭찬인 우리나라와 달리, skinny는 미국에서 모욕적인 표현에 속한다. 난 이런 걸 왜 또 어디서 주워들어가지고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더 억울한 건 난 일반적 체형이고 절대 마르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결정타는 이것이었다. 쇼장 주변으로 기분 좋게 산책을 나왔는데 그 길거리는 한산한 편이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백인 남자 두명 중 한명이.

"Small eyes and thick brows."

라고 말했고 둘은 킥킥대며 날 지나쳐 갔다. 착각일 수가 없었다. 당시 주변에 다른 사람도 없었고 하필 나는 당시 두꺼운 눈썹 화장에 심취한 시기였고 무쌍의 작은 눈인 것도 맞다. 정말 절망적인 기분이었다. 그래서 "야! 니들은 하얗기만 해가지고 덜 익은 빵 반죽같이 생기다 만 것들이 어디서 지적질이야!"라고 반박해 주지도 못했다. 어차피 욕을 해도 못 알아들었을 텐데. 속 시원히 뱉어줄 것을.


사장님은 출장 중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인종차별은 실제야."

그렇다. 인종차별은 유튜브나 책 같은 곳에 있는 설화가 아니라 정말 실재했던 거다. 시간이 좀 지난 지금은 인종차별이라기보단 그냥 내가 좀 만만하고 웃겨 보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어쨌든 난 인종차별의 실체를 경험했고, 차별적인 것은 그들만이 아니다.

사장님은 흑인들이 물건을 훔쳐 간다고 싫어했고 이사님은 자바(인도)들이 물건값을 다 흐려 놓는다고 증오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는 발언들이다. 그 말로 인해 어떤 인종의 성향이 안 좋게 특정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었다.


20180210_215438.jpg 베가스의 화려함과 그렇지 못했던 내 마음...


그리고 내 마음속에 심어진 그 상처와 증오의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 결국 싹을 틔우고 말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어떤 일이 생겨 이화여대 캠퍼스에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나처럼 그곳이 처음인 듯 둘러보는 외국인이 있었다. 그는 눈썰미 없게도 나에게 다가와 영어로 어떤 강의실로 가는 길을 물었다. 난 때를 기다리던 하이에나 같이 찌푸린 표정으로 비정하게 외쳤다.


"나 영어 못해요!"


외국인은 알겠다는 듯 "오케이. 오케이."라고 하며 두 손을 가슴께로 올리고 진정하라는 듯한 제스처로 그곳을 떠나갔다. 그 무슨 속담이 있었는데. 어디서 뺨 맞고 다른 데서 성질낸다고 그런 속담 말이다. 베가스의 복수를 엉뚱한 사람에게 해 버린 순간이었다.


그리고 난 곧바로 후회했다. 나의 비겁함에 나 스스로도 놀라고 부끄러워졌던 것이다.

그 사건 이후 난 전처럼 외국인들에게 선의와 호기심을 갖진 않았지만, 다시 친절함을 회복하려 노력했다. 사진을 찍으려 분투하는 관광객들에게 먼저 다가가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하는 등의 행위로 그날의 죗값을 갚아보려 나름 행동했다.

베가스에 다시 간다고 상상해 보면 아직도 꺼려진다. 인종차별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나의 비겁함. 그것이 언제나 나의 발목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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