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 타조, 그리고 나

2017년 베트남, 다이남 동물원에서

by 전은도

제이야. 믿을 수 있니?

언젠가 사이비 종교 전단지에서 봤던 그림.

그림에선 사람들이 사자와 호랑이의 등에 기대서 에덴동산(물론 에덴동산을 보진 못했기에 단정할 순 없어) 같은 곳에서 구세주의 말씀을 경청하는 광경이었지만. 그것이 내 눈앞에 약간은 허접하게 펼쳐지고 있는 거야. 왜냐면 이건 기린이거든.

하지만 난 기린만으로 충분해. 정말이야. 기린의 볼에 손을 대면 커다란 볼 근육의 질감, 따뜻함.

그 볼 근육이 내 온몸의 근육에서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합친 것보다 셀 거야. 그렇게 생동감 넘치는 강한 생명체가 내가 주는 풀을 받아먹는다니.


난 정말 천국의 일면을 순간 엿본 거야.

모든 생물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그 불가능한 관념의 찰나 같은 거 말이야.

녀석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와 뺨을 내주었을 때, 오랜만에 내가 진심으로 웃고 있는 걸 느꼈어. 순수하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기쁨 말이야.

생경한 기쁨에 나도 모르게 눈치채 버린 거지. 나 자신의 행복을. 그게 순간에 몰입하지 못한 증거라고 한다면 글쎄... 어쨌든 중요한 건 진짜 기뻐서 올라오는 웃음소리는 마치 새가 지저귀는 것과 비슷하다는 거야.

난 지저귀고 있었어.

그날 내가 그런 일을 겪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지만, 이런 행운은 상상하지 못할 때에만 허락된 것인지...

타조의 등을 타게 되다니... 베트남의 그 이상한 동물원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그런 서비스를 제공해 줬어. 마치 세상은 원래 이렇다는 듯 말이야.


제이야 난 일전에 네게 동물원에 갇힌 고릴라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어.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불행해 보였던 상자 안에 갇힌 그 검고 거대한 녀석. 하지만 내 마음이 간사해서 베트남의 타조에겐 불행의 그늘을 못 읽었나 봐. 돌이켜 보면 미안해. 광야를 달리고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대신 날 등에 태웠으니까.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아무렇지도 않게 타조 등에 타보겠냐고 물어봤어. 난 사실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어. 그 대답은 거의 외침이었지. 너무 타보고 싶었거든. 그리고 드디어 타조의 등에 내려앉게 되었을 때, 타조에게 비루한 인간의 언어로 최대한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어.


"미안해 타조야. 조금만 탈게"


그리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살금, 등 위에 안착하는 거야.


타조가 갑자기 빠른 속도로 달리기라도 한다면 난 땅에 떨어질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타조는 매우 정중했어. 천천히 한발 한발 차분히 함께 우리를 한 바퀴 돌았지. 그 사뿐하고 우아한 걸음걸이라니. 발레리나의 등을 홀린 듯이 쓰다듬을 수밖에 없었어.

"고마워. 와 정말 고마워."


이렇게 연거푸 말하면서.

감사했어. 진심으로. 이상하게도 굉장히 내밀한 느낌이었어. 타조와의 은밀한 교감. 믿지 않아도 좋아. 인간이란 뭐든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하는 동물이잖아. 달이 나를 보고 웃는다는 표현도 거리낌 없이 쓰는 뻔뻔한 것들이잖아.

약간 길티 플레져 같은 거야. 그래서 이 이야기를 조용히 간직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여기지. 동물원의 동물들이 가엾다고 여기면서 한편으로는 그곳에서 신나 뛰어다니는 이야기라니. 이렇게 조금만 눈을 감으면 세상은 즐거움과 환희로 가득 차게 되는 거야. 동물학대라는 죄책감을 접어둔다면 타조를 타고 행복해질 수 있지.


역시 난 심지가 굳지도 정의롭지도 못한 사람이야. 하지만 그날을 후회하냐고 물어본다면, 아니. 후회하진 않아. 하지만 행복한 기억과 죄책감이 공존하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지.

부탁해 제이야. 날 위해 한쪽 눈만 살짝 감아줘. 난 너의 감은 눈 뒤에 숨어 조금만 더 행복해할게.



[베트남 출장에서 동물원에 갔던 일을 편지 형식으로 써 봤어요. 저에겐 꽤나 대단한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