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즈음 선배의 회사는 더욱 일이 꼬여가기 시작했다. 현장 설비 업무에 생긴 문제를 본사에서 제대로 지원해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해결해줄 만한 사람이 없다고 했다. 책임자는 사장과 친분이 있는 낙하산이고 일 처리가 엉망이라는 것이다. 결국 선배는 다시 본사로 내려가 당분간 일을 보게 됐다.
경기도 현장에서 일을 할 땐 주말마다 만날 수 있었고, 시간이 되는 날엔 평일에도 잠시 올라올 수 있었지만 당분간 그걸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못 오는 거예요?”
“응 주말에도 당분간 계속 출근해야 할 것 같아.”
“음… 그러면 내가 갈게요!”
“어? 진짜?”
“네. 그동안 선배가 왔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갈게요.”
“음…”
“왜요? 내가 가는 게 불편해요?”
“아니, 나야 좋지. 그런데 오늘도 늦게 끝날 테고, 내일도 출근하러 가봐야 해. 네가 와도 같이 놀아줄 시간이 없으니까.”
“그래도 괜찮아요! 갈게요!”
그래서 금요일 저녁 기차에 올라타고 낯선 역에서 내렸다. 처음 가보는 낯선 지역. 모든 것이 낯선 풍경에서 낯익은 선배의 차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선물한 외투와 스웨터를 입고 나를 반기는 얼굴이 기분 좋았다.
선배는 동네 사람만 알만한 칼국수 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지역 맛집. 그리곤 선배의 단골 옛날 통닭집에서 닭을 사 숙소에 왔다. 오랜만에 낯선 곳에서 만나는 기분은 또 색달랐지만 내일이면 선배는 출근해야 하고 잠깐의 만남으로 만족하고 집에 돌아가기엔 너무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지금 있는 선배가 사는 동네 외에 회사가 있는 차로 한 시간 거리가 떨어진 곳까지 가야 하고 거기서 당분간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선배 나 선배 일하는 곳에 같이 가면 안 돼요? 오늘 딱 하루만 더 같이 있어요.”
“나 출근하면 너 혼자 있어야 하는데?”
“괜찮아요. 애도 아니고 혼자서도 잘 놀 수 있어요.”
결국 우리는 함께 일하는 곳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아침 6시부터 여는 붕어빵 집이 있어서 붕어빵을 아침 삼아 물고.
선배가 출근하고 혼자 있는 시간에 동네 탐방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완전 시골인 줄 알았는데 검색해 보니 근처에 맛집 거리가 있는 것이다. 역시나 조금 걸어갔더니 큰길 양쪽으로 각종 식당들이 늘어선 것이 보였다. 관광지 느낌이 나는 것이 주위에 나 말고도 이곳이 초행인 것 같은 사람 무리들이 어느 식당을 갈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당시 나의 입맛은 샌드위치나 파스타 같은 것을 외치고 있었기에 좀 더 주변을 돌아 맛집 거리를 벗어났더니 브런치 카페가 있었다. 작은 옛날 가옥을 리모델링한 것이라 천장도 낮고 작은 방이 나눠진 구조였는데 예쁘게 복고풍으로 꾸며져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샌드위치도 입맛에 맞고 낯선 곳에 대한 자신감이 고조된 김에 근처 커다란 국립 수목원이 있다고 하여 그곳으로 가 보기로 하였다.
택시를 타고 수목원에 가 한참을 구경했다. 각종 식물과 동물, 물고기들이 다양하고 역시 규모가 커서 다 돌아봤더니 어느새 선배의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 잘 있어? 나 이제 곧 퇴근이야. 뭐 하고 있었어?”
선배에게 내가 얼마나 혼자서 잘 놀고 있었는지 자랑스럽게 말했고 선배는 내가 그 정도까지 잘 놀고 있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그리고 수목원 폐장 시간에 맞춰 나가자 선배가 마침 도착했다.
다행히 다음날엔 늦게 출근해도 된다고 해서 우린 근처 마트에서 각종 먹거리를 잔뜩 사 들고 가 놀았고 다음날 선배는 지방에 온 김에 이성당 빵을 꼭 사가야 한다며 나를 데려갔다.
빵집 줄은 엄청나게 길었다. 혼자서라면 절대 기다리지 않고, 누군가와 동행했더라도 웬만하면 기다리지 않는 성미 지만, 선배가 워낙 먹어봐야 한다며 고집하길래 한번 기다려 보았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고 선배는 각종 빵을 종류별로 한가득 사서 들려주었다.
“냉동실에 넣고 배고플 때마다 꺼내 먹어. 이런 건 원래 한번 살 때 잔뜩 사는 거야.”
그리고 주변에 옛날 기차선로에 꾸며진 관광지를 구경하곤 아쉬움 속에 헤어져 서울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너무 즐겁고 알차게 잘 놀다 와서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겨울이었지만 볕이 좋아 놀기도 좋았다.
곧 설 명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난 그때 함께 이곳저곳 구경했던 기억을 좋게 간직하고 있었다. 올 명절에는 집에 가기 싫다. 이렇게 선배랑 여행 다니면 어떨까. 난 곧바로 선배에게 전화해 의견을 물어봤다.
“어, 글쎄 좀 생각해보고 말해줄게 회사 일도 바쁘고 명절에도 일해야 할지 몰라서.”
설 명절이 삼일, 그리고 이틀 앞으로 다가와도 선배는 확실히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게다가 어머님이 제사 음식 만든다고 장 보는 것을 돕느라 바쁘 다고도 하고, 통화가 잘 안 됐다.
결국 안 되는구나 생각하고 난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선배가 계속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상했다. 그래도 하루에 한 번 이상 계속 통화를 해 왔는데, 갑자기 통화가 전혀 안 되고 카톡을 보내도 확인 자체를 안 했다. 이렇게 이틀이 지나고 삼일 째가 되자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거다 싶어 너무 걱정됐다.
선배가 얼마나 치명적인 업무 시간에 시달리는지 알고 있었기에 갑자기 과로로 쓰러진 게 아닐까 하는 상상까지 하게 됐고 내 상상은 점점 더 안 좋은 쪽으로 가지를 뻗어 나가 고만 있었다. 평소 안색이 검더니 결국 일이 터진 건가 싶고 발만 동동.
그 당시의 시간은 몇 분, 아니 몇 초마저도 참 괴롭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