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라면 잠수탈 이유가 없잖아
“로또 됐어요?”
고심하던 끝에 연락 없는 선배에게 톡으로 던진 질문이다.
헤어지는 것도 괜찮으니까 이유만 알려달라는 말에도 조용하더니, 이 질문에는 “아니”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그건 아니구나. 그래. 이젠 진짜 연락하지 말아야지. 이러고선 이틀 뒤에 자려고 눕다가 또 갑자기 열받아서.
“왜예요?”
이렇게 한마디 톡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그에게 내가 화 잔뜩 나 있는 듯해서 연락 못했다고 답이 왔다. 아니, 통화가 돼야 잔뜩 화나 있는 걸 표현이라도 하지. 살아있냐고, 잠수 타냐고, 괜찮으니까 괜찮은 상태인지 말해달라고 하는데 장보고 있다는 한마디 하고, 헤어지자는 거냐는 내 물음에도 답 않더니, 화나 있는 것 같아서 연락을 못했다는 건 어떻게 된 방정식일까.
오래 살다 보니 사람과 사람은 서로 전혀 다른 세계라 사고체계가 완전히 달라 서로 이해 못 할 경우가 있긴 하다. 그렇게 따져보면 선배는 내가 접하지 못한 사고 체계를 새롭게 경험케 해 준 생명체다. 그래 이런 사람도 있구나. 그래. 그으래. 나도 누군가에겐 그런 경이로운 생명체겠지. 그래.
그에게 거의 일주일을 이렇다 할 연락을 못 받고 잠수 이별은 직감했던 나는 주저 없이 소개팅 어플을 켰었다. 선배에게로 가는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연락 없는 사람에게 구질구질하게 연락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렇게 소개팅 앱을 하다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째서 이렇게 바로 돌아서서 다른 이를 찾을 수 있는 걸까. 다 이해는 가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다. 뭔가 이상하게만 느껴진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아무래도 관계 중독인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 사람 자체에 빠졌던 거라면, 상심해서 안절부절못하고 전화를 열 통이고 스무 통이고 했겠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붙잡고 아쉽고...
나를 사랑해주는 선배의 마음에 빠졌나 보다. 내가 또 그랬나 보다. 그런데 앞으로 또 그럴 것 만 같다. 내가 무섭다.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건 왜 이리 중요할까. 젠장.
그 사이 앱을 통해 만난 새로운 사람과 대화하는 와중에 이런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 왜 2년이나 누군가를 안 사귀었는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어요. 다가온 사람이 없던 건 아닌데, 마음에 안 들어서 안 사귀었어요. 마음에 드는 사람 찾는 게 쉬우면 연애도 쉽겠죠. 그러니 연애가 어려운 거겠죠.”
내 마음 한쪽이 짠해진다. 내가 먼저 좋아해 다가가 사귄 적이 없다. 상대방이 먼저 다가와서 맘을 표현해야 사귀곤 했다. 진짜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부끄러워 도망치기 바쁘고.
관계에 중독되기보단, 어느 한 사람에게 중독되고 싶다. 물론 그 편이 훨씬 고통스럽지만 그게 맞는 것 같다. 그게 이상하게 바른길 같다고 여겨진다.
선배가 잠수 타고 5일 정도 지나니 초반의 애타는 마음도 서서히 잠잠해지기에 괜찮은 줄 알았지. 생각보다 빨리 잊힐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던 밤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별다른 징조 없이 주르륵 누워있던 나의 관자놀이를 흘러 나를 놀라게.
그러면서 생각했다. 얼마 전 친구와 이런 이야길 했다. 이 순간, 이 시간, 이 장소는 하나의 좌표가 되어 영원히 존재할 것만 같고, 그렇다면 먼 훗날에 과학이 발달한 외계인이 좌표를 찍고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살았던, 내가 존재했던 이 시간들에. 평소 우주와 과학에 관심이 많은 친구는 인생의 시간과 장소의 좌표를 모아 보면 빵 모양처럼 생길 거라 일러줬었다.
그렇다면 난 이 빵을 최대한 다채롭게 꾸며보고 싶다. 이 시간엔 선배와 함께했고, 저시 간엔 어쩌면 '아무개'나 '거시기'와 함께할지 모른다. 다양한 토핑이 들어간 빵을 구워보고 싶다는 생각.
눈물은 곧 멎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