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은도 Feb 12. 2022

표면적 이혼사유

변명적 이혼사유

사실 내가 트레이너를 좋아하게 됐어요. 나 혼자 짝사랑하는 거지만 그래도 당신과 계속 살긴 어려울 정도로 마음이 커요. 


이런 말을 어떻게 하냐고. 너무 잔인하잖아.

난 원래 뭐든지 불쑥불쑥 잘 말하는 편이다. 작정하고 말하지 않으려는 일 빼고는. 전 남편에겐 당연히 더 비밀이라곤 없었다. 뭐든지 미주알고주알, 고주알미주알.

하나 이것 만은…... 헤어진 지 일 년 하고도 수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말 못 했다. 


당시엔 진실이 아닌 표면적 이혼 사유가 그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진정 그를 위한 일이었을까. 오늘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날 위한 마음이 더 컸기에 나온 일종의 변명에 더 가깝다는 결론. 이건 표면적 이혼사유가 아니라, 변명적 이혼사유다.


“오빠, 난 아이도 갖기 어려운 몸이고, 오빠는 아이도 좋아하잖아. 더 좋은 사람 만나서 아이도 갖고 했으면 좋겠어.”


이게 나의 변명이었다. 전 남편에게도 잔인한 변명이고, 나 스스로에게도 다분히 자학적인, 그만큼 욕먹기 싫었나 보다. 아니 난 겁이 많으니까 욕먹기 무서운 쪽에 더 가까울 테지.


아이를 갖는 일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생길 때가 되면 생기겠지 싶었고, 관계를 그리 자주 갖는 것도 아니었고, 사정이 좋지 않았기에 생기면 걱정거리가 더 많았다. 하지만 시누이가 난임에 좋다는 병원을 몇 차례 권하자 왠지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없는 부부의 삶은 잘 모르니까


그렇게 간 병원은 부부들로 북새통이었다. 마치 공장과도 같이 잘 짜인 시스템 속에서 뭘 하던 번호표를 뽑아 들고 기다리는 일을 몇 차례나 반복했다.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간절해 보였다. 이윽고 결과가 나왔다. 자연적으로는 아이를 갖기 어려울 거라고… 원인은 내게 있었다. 


생각지 못하게 눈물이 났다. 이상해. 아이를 간절히 원하던 것도 아니면서. 웃기네 내가. 

생물학적 여자 노릇을 못 한다는 게 이다지도 슬플지 몰랐다. 항상 ‘고자’라는 단어가 들어간 농담에 웃음을 참지 못하던 내 뒤통수에 대고 이런 미래가 펼쳐질 거란 힌트를 주고 싶다. 그 입꼬리 내려라. 내려.


아이를 원한다는 감정은 참 여러 가지 감정이 겹쳐진다. 사랑, 희망, 모성, 내 경우 욕심이었을지. 갖기 어렵다니 욕심난다. 별다른 고민 않고 아이를 가질 수 있는 확률이 더 떨어지기 전에 얼른 시험관을 하기로 결정했다. 병원을 들어갈 때와 전혀 다른 결론을 갖고 그곳을 나섰다. 난 아이를 원한다. 너무 원한다.


시험관 과정은 역시나 괴로움의 연속, 매일 아침마다 스스로 배에 주사를 찔러 넣고, 의사 앞에서 다리를 벌려 수정된 배아를 넣고. 지금은 많이 흐릿해졌지만 그 고단함은 아직도 날 늙게 만드는 기분이다. 그때의 내가 많이 늙어졌던 것처럼.


혹시나 착상에 안 좋을까 안절부절하던 감정은 그에 비해 굉장히 또렷이 남았다. 시험관을 시작하면서부터 머리 염색도 멈췄고 샴푸나 바디 워시도 순한 걸 골라 썼다. 배아를 집어넣는 시술을 하고 난 며칠 후 배탈이 나서 폭풍 같은 설사를 할 때도 나도 모르게 배에 힘이 들어가서 이러면 안 되는데, 안되는데, 하면서 똥을 쌌다. 일을 마친 후에 너무 힘을 줘서 배아가 떨어져 나간 건 아닌지 나 스스로가 너무 밉고 원망스러웠던 기억. 


그땐 재택 일을 하기 전이었고 체력이 약해 매일 아침 2호선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때마다 식은땀을 삐질 삐질 흘렸던 터라 시험관을 하고 나서부턴 무조선 노약자석으로 끼어들어가 한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그러면서도 어르신이 왜 네가 노약자석에 앉아있냐고 뭐라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조마조마하며 맘 편히 앉아있지도 못했다. 그러면서도 무조건 이 자리를 사수할 거란 굳은 결의가 있었다.


한 번은 퇴근할 때 내가 앉은자리 옆에 어린아이가 앉았는데.

“엄마! 엄마도 앉았으면 좋겠다.”

아이 앞에 서 있는 엄마에게 아이는 못내 안쓰러운지 귀엽게도 그런 말을 했다. 보통이라면 자리를 비켜 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너무나 중요했어. ‘아이야, 난 너같이 귀여운 아이를 갖기 위해서 이 자리에 앉아있는 거야.’

하지만 그건 내 마음의 소리일 뿐. 앉아 가는 내내 뭔가 마음이 불편하고 두근거렸다. 그리고 고작 이런 일에 두근거리는 나 자신이 너무 싫고 약하게 느껴졌다. 마음 편히 가져야 착상도 잘 될 텐데… 이렇게.


임산부 배지를 가진 여자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것을 당당히 내걸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심히 대해줄 것을 암시할 수 있다는 게. 나도 착상만 되면 되는데, 나도 그러면 내 뱃속에 있는 배아를 지킬 도구를 얻을 수 있을 텐데. 내 배아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태에 있는지 그래서 얼마나 자리에 앉고 싶고, 내 몸을 아끼고 싶은지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난 무력했다. 작은 배아 하나 자궁에 품지 못하는 나약한 엄마 지원자였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 혼잡한 곳에서 자리에 집착하는 가임기의 여성이 있다면 최대한 너그러워질 것을 부탁하고 싶다. 그들의 뱃속에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배아가 있을 수 있다. 그들은 그 배아를 지킬만한 표식 하나 없다. 작고 동그란 배지 하나 없다. 오늘 아침도 배에 주사를 찔러 넣고 최대한 힘을 덜 주고 변을 보기 위해 애썼을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임신의 축복이 있기를……이런 아픔을 이혼의 변명으로 앞세우고 비련 한 척했던 나지만, 그런 나에게도 하늘에 닿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누구나 아이를 갖고 싶은 사람은 무사히 아이를 가질 수 있길 기원한다. 


남편은 나중엔 아이를 갖지 않아도 좋으니 이혼만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너무 미안했지만 그때의 난 앞으로만 향하는 기차 같았다. 막무가내로 밀고 나갔다. 날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심지어 나 조차도 날 말릴 수 없다. 튀어 나갔다. 


그동안 조용히 살았던 만큼의 반발력으로 더 세게 결혼이란 것에서 탈 결혼이란 세상으로 거세게, 거세게 튀어 나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혼의 결정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