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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은도 Feb 20. 2022

상사병 자가치료

운동하는 상사병자

그 당시 난 지독한 상사병에 시달렸다. 하지만 내 마음을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이혼했고, 앞서 말했듯 헬스장도 더는 나갈 수 없었다. 전 남편과 같이 다니던 곳을 버젓이 혼자 다닐 만큼 철판이 두껍지도 못하고, 이미 이사 관계로 이제는 헬스장에 나오지 못할 거라고도 말해 놓았다. 즉, 난 다시는 트레이너를 볼 수 없단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난 정말 웃기는 사람이다. 트레이너를 짝사랑해서 이혼해 놓고 그를 다시 볼 수 없는 환경으로 날 몰아넣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난 당시 그렇게 되길 원했다.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괴로워서 제발 PT도 하루빨리 끝나길 원했다. 그러면서도 남은 수업 하나하나를 보석처럼 마음에 심었다.   

   

PT가 끝나고 일주일 정도 남은 헬스장 기한 동안 일부러 그가 없는 시간대로 피해서 운동했다. 그리고 내 락커에 짐을 빼는 마지막 날까지도 그에게 인사 없이 헬스장을 나왔다. 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지독히 슬프면서도 지독히 자유로웠다.     


당시 내 상사병은 중중중증. 내가 그때 했던 생각들을 돌이켜 보면 그 감성의 정도가 가히 80~90년대의 그것 이상이다. 

그가 있어서 이 서울이라는 도시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같은 서울 땅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만약 이혼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지 못하고 그래서 사랑받지 못하고 평생 혼자 늙어 죽는다고 해도 괜찮다고 되뇌곤 했다. 그가 내게 준 운동이 있으니까. 운동을 지속함으로 그를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정말이지 감성 치사량이다. 내가 생각해도 소름이 돋을 지경인데, 그런데도 그 당시엔 진지하게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게 남은 건 운동뿐. 다니던 곳보다 약간 더 떨어진 헬스장에 새로 등록하고 그가 가르쳐 준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몸으로 익혔다. 배웠던 기구들과 다른 기구라 몸이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전 헬스장의 기구들이 그리웠다. 눈시울을 붉히며 운동했다.     

근육이 내게 남은 그의 흔적인 양 한치도 사라지지 않도록. 내 체력으로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운동하다 보니 몸이 괜찮을 리가 없다. 수시로 근육이 뭉치고 놀라 한의원에서 자주 침을 맞았다. 그러면서도 언제 몸이 풀려 다시 운동할 수 있는지를 우선으로 한의사님께 물어봤다. 의사선생님은 어이없어했다.   

  

다시 PT 수업시간으로 돌아가 있었던 일을 하나 이야기 하고 싶다.    

  

“아…. 잘 들 수 있을까. 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트레이너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나를 벤치 프레스 기구 앞으로 데려가 우선 빈봉, 그러니까 양옆에 무게 원판을 하나도 안 끼우고 빈봉부터 들어보자고 제안했다.    

 

“빈봉이라고 무시하면 안 돼요. 이 빈봉만 해도 20kg에요.”  

   

이렇게 나를 준비시키며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설명과 시범을 선보였다. 나도 뒤이어 벤치에 누워 설명대로 빈봉을 들어보려 했다. 하지만 좀 들썩이기만 할 뿐 잘 들리지 않았다. 

그때 트레이너는 내게 고개를 숙이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스쿼트나 데드 리프트 배웠죠? 벤치도 똑같아요. 다른 운동들처럼 전신 운동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 ‘아!’하는 깨달음이 번개처럼 스쳐 갔다. 그리고 즉시 온몸에 힘을 줬다. 벤치에 누워있는 내 다리, 엉덩이, 배, 온몸을 딱딱하게 만들었다. 내 근육들이 팽창하는 소리가 ‘수슈숙’하고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홀린 듯이 빈봉을 꽉 쥐었다. 숨을 가득 들이마셔 배에 가두고 팔을 힘차게 밀었다. ‘번쩍’ 빈봉이 들렸다.     

 

가슴속이 자신감으로 차올랐다. 비록 빈봉이지만 난 평생 한 번도 운동을 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항상 나 자신이 너무 약하고 저질 체력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 생각들이 신체적 도전을 제한해 왔다. ‘난 어차피 운동 잘 못 하니까’라고 생각해왔으니.

그런 내가 이걸 들었다. 나도 무거운 걸 들 수 있는 사람이다. 난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트레이너는 운동하는 내내 나를 북돋아 주었다. 신체적 능력에 항상 주눅 들어 있던 내게 새로운 관점을 선사했다. 내가 원래 약한 것이 아니라, 몸을 단련하지 않았기에 약했다. 그는 나를 신동이라 부르며 치켜세웠다. 30대 후반에 신동. 그 농담에 웃으면서도 내심 뿌듯했다. 처음으로 나 스스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나 자신이 믿음직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운동으로 얻은 건 향상된 체력이 다는 아니다. 더 소중한 것. 자신을 단련하고 스스로를 믿는 것. 난 트레이너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는 내게 선생님, 그는 나의 사부님이다.     


내가 트레이너를 짝사랑하게 된 것, 그리고 이혼까지 하게 된 것. 이 모든 것들을 다른 이들이 이해해 줄 거로 생각지 않는다. 그러길 바라는 것도 우습다. 하지만 이 글이 내 나름의 변명이자 내 마음의 해설이다.      

운동을 접하고 난, 나 스스로가 거의 다시 태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난 새사람이다. 그러니까 이건 내 안의 새 사람이 품은 마음이다. 난 이 새 사람 쪽으로 더 움직여 보길 선택한 거다. 

비난받을 수도 있지만 난 새로운 내가 더 행복해서.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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