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은도 Feb 07. 2022

이혼의 결정타

이혼이란 단어가 내게로 온날

이 이야기까진 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나의 아킬레스건이자, 생각만으로도 숨어버리고 싶은 부끄러움이다. 

하지만 최대한 솔직히 글을 써보기로 한 결심에 가까워지기 위해 이 흑역사를 주섬 주섬 가슴 깊숙이 서 꺼내어 본다.      


남편과 사는 6년 동안 그가 없는 내 인생이 어떨까 상상한 적은 더러 있었지만, 이혼이란 내 선택지에 전혀 없었다. 나의 뇌에 그 가능성을 1%라도 떠올린 적이 없다. 그는 나의 하나의 뿌리 같은 존재였다. 그 뿌리가 뽑히면 난 말라죽을 것 같았고, 그렇기에 그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가 없으면 난 혼자라고.     


하지만 전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내게 일종의 ‘마모’를 선사했다. 나의 그것은 내가 원하던 것들, 내가 이상적이라 믿었던 결혼 생활이란 모델에서 많은 부분이 닳고 깎인 끝에 굴러가고 있던 굴렁쇠였다. 그에게 품었던 불만을 세세히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건 나의 말일뿐이다. 내게 아무리 내 이야기가 전부일지라도. 

‘나에 대해 솔직 하자’ 이지 불만에 솔직해지는 시간은 아니니까.     


어쨌든 난 뭔가를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에겐 미안하지만, 당시 진짜 그런 마음이었다. 무서운 일이다. 내 곁의 소중한 이가 나로 인해 뭔가를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참 무섭기 그지없는데, 역시 진실이라는 칼이 이렇게 날카롭다. 게다가 너무 먼 단어였던 이혼을 나의 일로 만들게 된 계기 역시 참 기막히게 잔인하다. 전 남편에겐 절대 이 글을 보여줄 수 없을 것이다. 비록 그가 내게 친구로 남았다 하더라도.  

    

우린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헬스장에 가기 전까지는……

전 남편은 당시 몸과 어울리지 않는 사이즈의 배를 소유하고 있었다. 몸은 보통 체격인데 배만 볼록 나와서 내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당신 배가 들어가야 내 배가 나올 거야.”였다.     


당시 나는 두 번의 시험관을 마치고 세 번째 시험관을 하기 위해 잠시 쉬고 있던 시기였다. 마침 다니던 회사도 나와 재택으로 새로운 직장을 얻은 터라 시간도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는 헬스장에서 PT를 받아보고 싶다고 했다. 큰돈이었지만 큰마음먹고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운동을 배우면 내게도 좀 가르쳐 주겠지 싶어 나는 일반회원으로 등록했다.

하지만 운동을 마친 그를 끌어다 이 기구 좀 알려달라고 하니,     


“에이~ 자기는 이런 운동 못 해~ 다쳐. 다쳐.”     


이러면서 웃고 지나갔다. 난 뭔가 부끄러워져서 더는 우기지 못하고 속만 부글부글 끓이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 운동을 하는데 트레이너가 이렇게 운동하면 다친다며 지나가다 이것저것 알려줬다. 그게 영업이었다면 성공적. 왜냐면 남편에 이어 한 달 뒤 나까지 PT 등록했으니까. 


날 위해서 한 번에 그렇게 큰돈을 쓴 적이 없었다. 노트북 같은 걸 산 적은 있지만 그건 순전히 일하는 용도였고, 정말 처음이었네. 

힘이 세지고 싶었다. 트레이너에게도 그렇게 말했었다. 근육 하나 없이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힘세지고 싶다고.     


그렇게 시작한 운동은 미치도록 좋았다. 다른 말은 넣을 수 없다. 말 그대로 미쳤었으니까.

너무 좋아서 PT 시간 외에도 뒷산에 올라 운동하기도 했는데, 산을 비탈을 따라 이어진 계단을 오르며 영화 ‘ROCKY’의 OST인 ‘Gonna Fly Now’를 들을 정도였다. “빠바밤~ 빠바밤~” 당시의 나는 영화 속 록키에게 완전히 이입하여 계단을 다 오르곤 산을 내려다보며 만세까지 할 정도였다.      


그렇게 운동에 무섭게 빠져들었다. 전에 없던 생기가 돌고,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PT를 마치고 돌아와 펑펑 울었다. 너무 행복해서. 이렇게 날 위한 시간을 가지다니, 그게 이다지도 행복한 것이라니……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그 기쁨은 점점 묘하게 변질돼 갔다. 운동이 좋고 행복하다 보니, 그 시간을 같이하는 이가 좋았던 걸까. 어느새 난 트레이너를 떠올리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딱! 떴는데, 글쎄 처음 생각나는 사람이 트레이너……!! 

그 당혹스러움. 낭패라는 말은 이런 순간을 위해 존재했나 보다.  

   

수업을 받고 오면 꼭 울었다. 아니 그 시간 외에도 울었다. 눈물이 절로 절절 흘렀다. 너무 행복하고 또 너무 괴로워서. 내가 드디어 미친 것 같았다. 온종일 안절부절못하고 잠도 오지 않았다. 아침이면 일찍 눈이 떠졌다. 내가 내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됐다.    

  

난 언제나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진심으로 이상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난 자신 있었거든, 아무한테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

전 회사에서 같이 근무하던 언니가 교회에서 목사님을 짝사랑하게 된 상황을 옆에서 전해 듣게 됐다. 그 언니는 물론 결혼한 사람이고. 그 마음을 풀어놓지는 않았지만, 언니는 열병을 앓듯 그 마음을 앓고 지나갔다. 언니를 보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정말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다른 사람이 좋아지지? 마음을 그냥 초장부터 접으면 그만 아닌가? 난 결혼하고 한 번도 그런 적 없는데. 

    

난 신앙 없는 사람이지만 언니가 믿는 대로 정말 신이 있다면 아마도 내 오만을 벌하고 싶었던 걸까. 

이제는 내가 지독한 사랑병에 걸려서 끙끙 앓게 됐다. 역시 인생은 지독한 블랙 코미디다. 그저 남편 배가 나와 함께 찾았던 헬스장에서 이런 결말이 어떻게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이 마음을 안고 더는 남편 옆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한번 터진 내 마음은 무너진 둑이 물을 쏟듯 콸콸 흘러넘쳤다. 트레이너에게 절대 사적인 연락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냥 나 혼자, 내 마음이 그랬다. PT가 끝날 때쯤 집 계약도 만료될 시점이었고, 트레이너에겐 PT가 끝나는 대로 이사할 거라고도 말했다. 그래서 헬스장을 나올 수 없을 거라고.      


결과적으로 남편만 이사 나가고 난 그대로 그 집에 남게 됐다. 정말로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해버렸거든. 그때의 미친 내 가요.      


그리고 당연히 헬스장도 나갈 수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혼하던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