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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Oct 27. 2019

바르셀로나엔 함께 가야겠어.



우린 언제부턴가 따로 여행을 합니다.

한동안 독수리 5형제처럼 함께 날아다니다

10년이 넘자 서로 원하는 장소도 패턴도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일정은 늘 어긋나

일 년 내내 서로의 계획을 참견하느라 바쁜 부부입니다.



어쩌다가 눈이 맞아 이번에는 함께 프랑스와 스페인을 여행하기로 했습니다.

가족 모두가 떠나게 되었는데도 캐리어는 달랑 하나.

배낭은 두세 개.

그 나라 국기와 가장 비슷한 색의 옷을 고르는 저와

접었을 때  가장 작아지는 옷을 선택하는 그분.



잠자리는 편안한지가 가장 중요한 저와

쓸만한 주방이 있는지를 항상 따지는 그분.

의견이 충돌하지만 시간 들여 조율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대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고

그는 저와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르셀로나로 날아간 날은

볼만하다고 소문난 토마토 축제와

피라 타레가 페스티벌, 메르세 페스티벌을 교묘하게 피해 간 일정이었습니다.

1년에 한 번씩 스페인의 투기와 낭비벽을 볼 수 있는 토마토 축제가 며칠 전이었답니다.

고국으로 돌아가고 일주 후에는

화려한 불꽃쇼가 펼쳐진답니다.


하지만 아쉽지 않습니다.



관광객이 가장 적을 시기라

이렇게 명당자리 차지하고 한가하게 둘러볼 수 있으니

토마토 철 지나고 불꽃놀이 못해 봤어

이때 오길 정말 잘했다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려 봅니다.


스페인에 5일을 머물면서

바르셀로나에만 줄곧 있다 온 이유는

이 작은 집이 참으로 맘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끔 그라나다 마드리드 세비아의 후기를 보면 맘이 동요하면서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나중에 또 가면 되니까요.

그때 바르셀로나도 또 만나게 될 거니까요.


해리포터에서나 볼 듯 한 거대한 열쇠를 넣고 돌리니

정면에서 바라보고 웃는 햇빛.



나무 사이로 로미오가 고개를 내밀 것 같은 좁은 창문에

이층 집이지만 아담해서 청색 신호등을 기다리는 미남들과 시선이 자주 마주칩니다.

감사합니다.


서늘한 공기가 내려오면

야외벤치에서 벌어지는 야유회.

수다스럽고 이쁘고 골초인 백인 여성들이

음식을 잔뜩 시켜 놓은 채 수다를 떨고

가우디가 만든 배경으로 버스커들이 화음을 습니다.



버스를 타고 10분만 나가면 보케리아 시장.

전 세계의 시장상인들을 불러 모아

'이것이 바로 디스플레이다'를 보여주고 싶었던.






비옥한 토지에서 햇빛 충만히 받고 자란 과일주스는 단돈 1000원입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얻은 가장 값진 깨달음은

아무리 물가가 사악한 곳을 가도 시장에서만큼은

삼천 원으로 한 끼 식사가 가능하더라는 것.

그래서 저는 랜드마크에서 사진 찍기보다

시장에서 밥사먹기를 주임무로 삼습니다.



가우디 한 사람이 스페인 전체를 먹여 살리는지

버스를 타고 가다 내리면 모두가 가우디가 이룬 명소였습니다.


그의 집은 서민의 예배당이거나



동화 속 헨젤과 그레텔이었다가



무시무시한 해골 집이었다가



순백의 모래사장이기도 했습니다.





60%밖에 완공되지 않은 이 성당은 하루 1억씩 모은답니다.

성경구절을 그대로 담고 있는 외관의 사드도 놀라웠지만.


내부로 들어오니 오후 4시 30분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빛.





창문마다, 시간마다 다른 파장이 내부를 꽉 들어차게 연주하고 있는 묵직한 공간.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저는

2만 6천 원을 냈습니다.


주말에 빕스가서 아침 겸 점심 겸 저녁을 해결하고 나올 돈이었지만

아깝진 않더라... 고 말합니다.

그래야 문화인 같으니까요.



같은 방향을 보고 사진 찍기 여념 없는 사람 구경이 가장 재미있었고

시종일관 가우디에게 존경과 찬사와 감탄을 보내는 대화에 뭉클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공손히 올려다보는 위대한 풍경을 뒤로하고

성당의 탑이 서서히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자란 할아버지들은 정구를 치시고



장차 완공될 작품을 지켜볼 아이들은 숨바꼭질을 합니다.



이 평화로운 풍경 가운데,

저에게는 부담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지만

특히 바르셀로나에선 많이 볼 수 있었던...

대낮에도 둘만 사는 세상처럼 부둥켜안고

서로에게만 충실하던 선남선녀 덕분에

동네 한 바퀴만 슬렁슬렁 걸어도 마음이 달달해지던 곳.

오호라... 이래서 다들 정열, 정열... 그러는구나.




다들 참 열심히 하고들 산다...

우리도 여기서 나고 자랐다면 저랬을까?

남의 나라 정서까지 싸들고 올 수 없어서 아쉬웠어요.



세월만큼 은은해진 우리 부부는

테라스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서

프리즘 같은 성당의 불빛과

달빛을 섞어 맞으며



어제 끊었던 술을

오늘 또 몇 잔이나 마셨는지 모릅니다.


앞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곳을

얼마나 오랫동안 걸어 다닐 수 있을 런지요.


낮게, 천천히 함께 지낸 도시들을 떠올려보며

그냥 마주 보고 웃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겁니다.


서로를 응원해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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