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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May 13. 2019

탁발, 그것이 당신에게 의미가 있을 때만.


날마다 두근거리며

해보다 먼저 잠에서 깨던 날들.


떠올리기만 해도

숨이 가빠지던

치앙마이의 새벽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말고,

언젠가

내 호흡이 고르게 돌아오는 날.



Akha ama coffee IN CHIANGMAI


넌 왜 매일 이렇게 일찍 나가니?

호텔 일보다 손님 일정에 참견하는 것을

주 업으로 삼던 스태프의 핀잔.

대답 대신 조용히

스리 소다 사원의 위치를 묻고

종교가 뭔데? 하는 질문엔


난 가톨릭.

주말에 성당은 안 가도

인도차이나에 와서는

꼭 탁밧에 참여하는 이상한 여자야.



항상 그랬습니다.

탁밧을 향하는 길에서는

찬사를 받아 마땅한 풍경 앞에서도

열병 같은 상처가 느껴지곤 했습니다.

늘 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포교활동 중인 종교인들을 대할 때면

눈에 서늘함만 꽉 차는데

왜 자꾸 새벽이면

탁밧으로 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고 싶지 않은데 왜 가느냐

스스로 물은 적도 많지만

스스로 묻다가

그 질문에 내가 갇혀버리는 답답함.



맨발로 서서 스님들을 기다리다

스님들이 앞에 서면

가지고 온 음식을 항아리 안에 넣고

무릎을 꿇습니다.

스님들은 시주한 이를 위해

잠시 동안 불경을 암송합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시인의 노래 같기도

아이의 합창 같기도 한 그 소리가 좋아

듣고 있으면 마음이 가득 차 올랐고

그래서 자꾸만

다음 스님들을 기다렸습니다.




탁밧을 보려 한다 하면

여행 선배들은 늘 미얀마의 만달레이나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을 추천합니다.

긴 탁밧 행렬이 보기 좋긴 하지만

그곳엔 스님들의 노랫소리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속도전으로 진행되기 때문이죠.


   


저는 저 나이 때의 아이들이

얼마나 아침잠이 많고

작은 일에도 투정이 심한지를 알고 있습니다.

새벽녘 일어나 스스로 아침을 벌고

한 번의 식사로 고된 하루를

견디는 삶을 사는 이들이

맨발로 산을 탑니다.

적게는 여덟 살. 많으면 스무 살.


공양을 하느라 신발을 벗은 김에

사원까지 들어가는 스님 대열을   

천천히 맨발로 따라가 봅니다.



자갈도, 가시덤불도, 불개미도

나름의 명분은 있을 것인데

걸음 하나에

상처 하나씩 디디는 묵직함.


막내딸 같은 저들이 매일 걷고

매일 아프고

매일 상처 입는 길.



하루 이런다고 네가 득도해서

좋은 사람이 될 것 같냐?

발만 아프지.

하는 스스로의 비아냥에 상처를 받아


그새 새까매진 발바닥을 대충 털어

얼른 운동화를 다시 신고.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걸었네

걸었다네

혼잣말을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앙마이의 숲은

그 속내의 달콤함이 진했고

그 향에 취해 몇십 분을 그저

걷기만 했습니다.



사원 앞에 다다르니

동자스님만 한 어린이들이

그릇을 들고 있습니다.

스님들이 그 그릇에 시주받은 음식 중

한 끼 분만 두고 모두 덜어 넣습니다.

그렇게 끼니를 챙긴 아이의 머리 위로

큰 스님의 손이 놓이고

짧은 기도가 아이의 머리 위로 내려집니다.

덩달아 한껏 복 받은 마음이 되어

사원을 둘러보다

멀리서 식사를 하러 들어가시는

큰 스님을 뵈었습니다.


여자는 수행 중인 스님과 말을 섞는 것도,

눈을 마주치는 것도 안된다 배워

얼른 합장하며 고개를 숙이니

가까이 오라십니다.


순간 당황하여

사진을 찍은 게 잘못인가

들어오면 안 되는 시간이었나

묵주를 빼고 올걸 그랬나

머리가 막 굴러가고 있을 때.

웨얼 알유 프롬?

말을 거십니다.

세상에나 여자인 제에게...


달려가 앞에서 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을 흉내 낸 미소를 하고

공손히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습니다.

아침은 먹었어요?

못 먹었습니다. 호텔 조식이 7시부터라서요.

혹시 배가 고픈가요?

거짓말하면 벌 받을 것 같아

그렇다고. 하지만 괜찮다고 말씀드렸더니...


공양 그릇에서 찰밥을

한 덩이 짚어 저에게 주십니다.


놀라움과 감격스러움에 어쩔 줄을 몰라

음식을 드릴 때 했던 것처럼

털썩 무릎을 꿇으니


노래 같은

그윽한 그분의 말씀이

제 머리에도 오르고


시간은.


정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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