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켓을 걷다1

저희 집을 소개합니다

by 윤진

지금 동남아는 우기입니다

이 시기에 휴양지로의 여행을 선택한 사람들은

대부분 고급스러운 호텔을 선호하죠

여유롭게 쉬고 싶은 숙소에서

폭풍우를 예상한 개미떼가

집안으로 이사를 온다거나

욕실에서 빗물을 재활용한 듯한

흙탕물이 나온다거나

침대 위로 비가 새면 큰일 이니까요


하지만

푸켓은 성공한 휴양지로서 웬만한 호텔에선 우려하는 일이 생기지 않아요

저는 제 친구들이

전망이 더 좋거나

해변까지 거리가 더 가깝다는 이유로

또는 조식 식단이 훌륭하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돈을 지불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막상 가보면

베란다를 내다보고 있을 시간은 많지 않고

거리를 걸으면서 보고 먹고 이야기하는 것이 여행의 진미이며

호텔 문만 열고 나가면 갖가지 먹을 것들이 덮쳐오는 곳이 바로 푸켓이니까요


아고다를 통해 예약한 호텔입니다

우리 여행은 싼 게 컨셉이라

비싼 호텔에선 묶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동반한 여행에

불편을 감수하면서 지낼 생각도 없죠

지내는 동안 평균 8만5천원 정도로

적당한 아침식사를 무료로 제공받으면서 지낸 집입니다



푸켓의 후덥지근한 날씨에 어울리는

인테리어라 할 수는 없습니다만


아늑합니다.


저 어두운 조명은 만국 공통이죠

호텔의 조명은 몇 와트 이하로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거나

잠만 자고 나가는 것을 선호하는 악덕업주들이 이렇게 만든 게 아닐까

늘 생각하곤 합니다



작은 방엔 싱글베드가 두 개 있고



안방엔 킹이던가 퀸이던가 암튼

대한민국의 평균 사이즈인 남 녀 둘이 자고도

남는 사이즈의 침대가 있습니다

침대커버를 들추어 보니 다소 낡은 티가 나네요

그동안의 숱한 밤들을 버텨오느라 힘들었을 테죠



지난밤

마지막으로 화장실 불을 누가 안 끄고 나왔는가를 추궁하기에 안성맞춤인 소파 배열이네요

태국의 상징인 코끼리 부조도 인상적이에요



이건 제로 게임하기 좋겠어요

태국 맥주와 길거리 튀김 안주 한 사발 하기도 그럭저럭 괜찮구요



매우 클래식한 냉장고 폰이 반갑네요

감성을 깨워주는

이 조명과 종이와 펜의 조화를 보세요.

국제평화조약에 사인이라도 하고 싶어 지네요.


이딴 건 있을 필요 없는데요

호텔에 쓸데없이 냄비와 프라이팬,

갖은 용기라니...

전 한 끼도 안 하고 사 먹을 욕심으로 여기 왔단 말이에요



비용절감을 위해선지 말 그대로 지구를 위해선지

요즈음 호텔에선 1회용 대신 이런 용기에 용액을 채우는 방식의 어메니티가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쩝...

남은 것을 챙겨뒀다 유용하게 쓰곤 했는데 아쉽군요



다음 날 아침

거실에서 본 발코니입니다


답배 한대 생각나신다구요



어젯밤 우리와 밤을 보내며 모든 것을 훔쳐봤음이 분명한 도마뱀이

납작 엎드려 능글맞은 웃음을 짓고 있네요

저 녀석을 잡아다 손바닥 위에 얹어

무엇을 보았느냐고 꼬리를 잡아 족칠까 하다가 너무 귀여워 봐주기로 합니다


도마뱀이 귀엽다는 저의 반응에 아이들은

같은 종류의 동물을 보듯 저를 바라봅니다

개구리는 징그러워하고

도마뱀은 무서워하는 이유는

악어와의 닮음 새에 있지 않을까요


커피 생각이 간절해지면서 마구 남편을 깨워서

1층 로비에 있던 야외식당으로 내려갑니다

호텔은 조식이 생명이죠


태국 음식 몇 가지와 오믈렛 빵 과일 시리얼 음료가 준비된 단출한 메뉴였지만

매일 밥상을 차리던 아녀자가 행복함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어요

커피를 부탁하니 이렇게 예쁘게 가져다주네요



수영장이 식당 바로 옆에 있어서

대식가인 세 아이들의 마음이 방방 떠버렸어요

본전 생각에 열심히 퍼 나른 접시들을

훈련병 급식 먹듯 급히 해치워버리고



입수~~

하자마자 둘째가 뭘 잘못했는지 첫째한테 목이 졸리는 중이에요


한켠에는 제법 익사이팅한 워터슬라이드가 있습니다



셋째가 무서워 할까봐 늘 옆에 지켜서고 있다가 안아주는 첫째 딸입니다

채은이를 돌보는 건 엄마 일이야.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는...

옆의 기름기 흐르는 저 아저씨는 세 자매에게 참으로 친절하셨던 중국인이구요



선글라스를 끼고 앉아 비키니를 구경하고 있을지 모를 남편의 뒤쪽으로

넓은 헤져드를 사이에 두고 골프장이 있습니다

좀 불안해 보이죠

막 머리를 올리던 시절의 저를 생각해보면

공이 저 사람의 머리를 가격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는데요




새 조차도 사색에 잠기는 이곳에서

전 잡다한 글을 쓰며

세 잔의 커피를 마셨습니다


연이은 저의 요구에도 여전한 그들의 미소.

그것을 대할 때마다 딜레마에 빠집니다

과연 팁을 줘야 하는가

쌩까야 하는가


그들의 임금체계가 팁을 고려해서

낮게 책정이 되어 있다면 주는 것이 맞고

그것과는 상관없이 적당한 수준이라면

안 줘도 상관이 없겠죠

또한 호텔에서 정산할 때 서비스 차지가 따로 되어 있어도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그들의 서비스에 대한 보답을 한 거니까요


그래서 안 주고 그냥 일어섭니다


호텔의 곳곳을 걸어보려고요


물놀이에 지친 아이들이 잠시 들를만한

구색을 갖춘 놀이방이 있습니다

30분만 있어도 고등어 구이가 될 만한 땡볕에 모래놀이터가 있네요

비가 오면 유용하겠습니다



자전거를 빌려준대요



이 지역 주변을 무료로 운영하는 셔틀입니다



이 것을 타고 인근 마을이나 방타오 해변에 나가볼 수 있습니다


3시간 째 아이들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네요

바다에 나가야 되는데 시내를 걸어봐야 되는데...

많은 계획들을 미뤄두고

저도 같이 뛰어들어 물놀이를 합니다



6개월 된 둘째를 데리고 온..

그러나 아줌마라 부르기엔 미안시럽게 앳띤 얼굴의 러시아 여인입니다

파라솔 아래에서 당당히 젖가슴을 내놓고 모유수유를 하던 모습이 참 예뻤드랬죠


내 몸을 내어 자식에게 주는 일이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며

그 모습 또한 충분히 감동적인 장면인데

아이가 칭얼대면 서둘러 숨을 곳을 찾고

찾지 못한 때엔 아이를 어르다 다그치곤 했던 저의 26살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저도 저랬어야 했는데요...


양측 모두

안녕하세요 이거 얼마예요

수준의 생존 영어 인지라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

같은 엄마로서 수시로 눈빛과 미소를 나누었죠


안녕하세요?

저는 어린아이 둘을 키우고 있어요

저는 두 딸을 키우면서 첫째 딸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고 있답니다

우리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거죠

그럼요 우리가 잘 키우면

다음 세상이 더 좋아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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