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하고 미안해 하지 않을것이다.
워킹맘의 다짐
감기가 나은지 얼마 안 되었는데 어젯밤에 기침을 조금 하더니, 아침부터 콧물이 줄줄이다. 오전에 일정이 있어 병원에 갔다 등원시키려고 아침 일찍 나섰는데, 코맹맹이 소리 나는 아이가 안쓰러워 그냥 집에서 데리고 있기로 했다. 출근할 때에는 아이가 아파도 열나는 거 아니면 가정보육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인데, 휴직하고 마침 남편도 집에 있는 날이니 아이를 케어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집에 어린 아기가 있어 걱정되기도 하고 어쨌든 시간은 보내야 하니 집에 가기 전에 볼일 보러 함께 가고, 빵집도 가고, 꽃집 구경하다가 할아버지한테 꽃선물도 받고, 마트에 가서 오랜만에 놀잇감도 샀다.
뚝딱아, 어린이집 안 간 대신 집에 가서 낮잠을 꼭 자야 해, 감기에 걸렸으니 푹 쉬어야 금방 나을 수 있어. 집에 가면 꼭 자는 거야? 단단히 약속했으니 아이를 믿고 차에서 재우지 않고 집으로 올라왔다. 맛있게 점심 먹고 놀잇감 조금 가지고 놀더니 정말로 잔다. 감기 때문인지 세 시간 넘게 낮잠을 자서 등원시키지 않길 잘했다 생각했다.
콧물 좀 빼주고 싶은데 불편한지 겁을 먹고 흘러나온 콧물만 겨우 빼낸다. 아기 때처럼 억지로 잡고 할 수는 없어서 욕조에 따뜻한 물 받아두고 목욕시키며 코를 풀어줬다. 재미있게 놀다가 평소보다 한 시간쯤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를 잘 돌봐주었으니 뿌듯해야 하는데 워킹맘으로서는 꿈꿀 수 없는 하루를 보내고 나니 이상하게 기분이 안 좋다. 일하는 엄마로서 아이에게 미안해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타입인데, 오늘따라 영 마음이 쓰인다. 심지어 남편이 교대근무해서 보통의 맞벌이 부부보다는 아픈 아이를 집에서 돌볼 수 있는 날이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엄마’가 해주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도 지나치게 미안해하지 않기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일하는 엄마로서의 장점도 있겠지, 아이가 클수록 경제적인 지원도 잘해줄 수 있을 것이고 여성으로서의 롤모델도 될 수 있겠지. 운이 좋게도 모성보호제도가 잘 되어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에 최선을 다해주면 되겠지.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자라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 일에 최선인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겠지.
이제 막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막상 복직하고 나면 직장을 포기하고 싶어 질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일하는 엄마로서 해주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많이 미안해하지 않기로 또다시 다짐한다. 혹시나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아이들을 잘 케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길 바란다. 이 짐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남편하고 나눠져야 하는 짐이다.
나중에 아이들이 자랐을 때, 엄마의 청춘엔 너희들이 가득했지만, 그럼에도 또 엄마만의 삶으로 빛이 났어, 하고 이야기하고 싶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 육아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고 있지만, 또 그 짐은 남편과 나누고, 남는 시간은 나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쓸 것이다. 스스로 행복하고 오롯이 인정받는 그런 엄마가 되어야지. 그러니까 나는 최선을 다하고 미안해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