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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희 Oct 04. 2023

네 살과 서른 네 살의 우정

남편이랑 딸들이랑 산책 나간 어느 밤이었다. 오랜만에 킥보드를 탄 딸이 운전에 서툴러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했다. 여러 번 주의를 줬는데 별안간 울음을 터뜨린다.


진정하게 도와주고 설명하고 아빠에게 가서 이야기하라고 시켰다. '아빠 킥보드가 마음대로 안 움직여서 실수로 그런 거예요. 앞으로는 조심할게요.' 아무래도 엄마보단 아빠가 어려운지 몸을 배배 꼬고 쭈뼛거린다. 아빠가 이야기 잘 들어주실거야, 하고 부드럽게 등을 미니 울먹거리며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쪼그려 앉아 아이를 안고 등을 쓰다듬어주며 '그랬구나, 우리 앞으로는 조심해서 타자.'하고 말해준다. 아이의 기분이 금방 좋아져서 즐겁게 산책을 마쳤다.

평범한 일상의 장면인데 보면서 눈물이 찔끔 났다. 우리 아빠도 어린 나를 다정히 용서해 주었으면 좋겠다. 내 맘속엔 아직 성장하지 못한 그 시절의 내가 있다. 어른이 된 내가 내 나이의 아빠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함에도, 어린 내가 문득 나타나 서운하다고 소리친다.


부모와 자식은 혈연관계지만 그것이 친밀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사랑하는 모든 가족이 친한 것은 아니다. 나의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여 모든 시간과 자원과 젊음을 희생해 나를 길러냈으나 내가 서른이 넘어서야 나와 진정 친구가 되었다. 잘못했으면 사과하고, 고마우면 감사하고, 사과했으면 받아주는 그 자그마한 액션이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는 권위 있는 부모가 되고자 하지만 고압적이고 싶지 않다. 우리 아이가 고작 두 살, 네 살에 불과할지라도 한 인간으로서의 자녀를 존중하고, 개인대 개인으로 교류하며 우정을 쌓아가고 싶다. 빠듯한 살림에 일하며 아이 둘 키우는 엄마로서 지치고 힘들어 화내고 소리치는 날들도 있지만 그랬다면 꼭 사과하려 한다. 딸들이 용기 내 사과할 때, 아직 화가 덜 풀렸어도 엄마는 진정할 조금 더 필요하지만 여전히 너를 사랑해 말해주려 한다.


아이들과 동갑내기 친구 같은 격의 없는 사이가 될 순 없을지라도, 서로를 잘 알고,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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