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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희 Oct 01. 2023

익숙함의 편안함

울 아빠는 여행이 아니면 다른 사람 집에서 자고 오는 법이 없다. 어렸던 우리 남매가 자고 가고 싶다고 더 놀고 싶다고 아무리 떼를 써도 반드시 집에 돌아가 주무셨다. 정확한 상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더 놀지 못해 서운했던 그때의 감정이 여전히 선명하다.


이제 나도 어른이 되어 결혼도 하고 내 집을 마련하니 아빠의 그 심정이 이해된다. 나는 애들 방에서도 불편해서 자기 싫고 화가 나는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길 즐기지 않던 아빠는 얼마나 남의 집에서 자는 게 싫으셨을까.


우리 아빠를 닮고 나를 닮은 둘째는 명절 내내 힘들어했다. 눕지 않으면, 밝으면, 무언가 보고 있으면 자지 못하는 나의 분신. 낯선 공간에서 스트레스받는 나의 작은 사람. 가족들과 언니 오빠와 즐겁게 놀고 맛있게 먹었음에도 낮잠도 밤잠도 자지 못하고 우유도 한입 마시지 않았다.


그랬던 아이가 집에 오니 우유도 한 컵 쭉쭉 들이키고 눈이 똘망똘망하다. 오는 길에 차에서 40분가량 잔 게 다인데, 방긋방긋 웃으며 편안한 표정으로 걸어 다닌다. 급하게 준비하고 출발하느라 엉망인 집이지만 행복해 보인다.


익숙함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특별할 것 없고 재밌는 것 없을지라도 편안한 것.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설레지 않지만 행복한 것.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 새로운 이벤트를 찾아다니기 전에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소한 편안함에 감사하며 살자. 돌아갈 안식처, 항상 똑같은 지루한 곳이 있을 때 새로운 자극도 설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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