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은 감정들에 대하여

Ep.3 〈흐르는 사람, 멈춘 사람〉

by 임제이

공항에 내리자 공기는 낮고 눅눅했다.
습기가 목덜미를 타고 흐를 때, 해송은 그것이 반가웠다.
불쾌하지 않았다.
불필요하게 명랑한 한국의 환영 인사보다,
이곳의 무심한 더위가 오히려 정직하다고 느꼈다.

그녀는 거리의 낮은 플라스틱 의자에 시선을 뺏겼다.
진한 커피, 무표정한 사람들,
말이 적고 리듬이 느린 풍경.
그 속에 앉아 있는 자신을 상상했다.
그건 바람이 아니라 필요에 가까웠다.

지호는 시계를 봤다.
계획을 따르려는 눈빛이었다.
해송은 말을 줄였고, 이미 걸음을 옮겼다.
그는 따라왔다.
항상 그렇듯, 침묵은 그녀가 먼저 깼다.

커피는 달았고 썼다.
감정이란 게 꼭 이럴 것 같았다.
정리되지 않은 쓴맛과, 미심쩍은 단맛이 동시에 입 안에 남았다.
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송은 그의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다만, 익숙했다.
그는 늘 말하지 않았고,
그녀는 늘 읽었다.

숙소의 창을 열자, 파다는 소리를 내지 않고 밀려왔다.
해송은 그 조용한 반복에 감정이 풀리는 걸 느꼈다.
그녀는 말했다.
“나, 지금 너무 행복해.”

지호는 반응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지도,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그는 이유를 묻는 사람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왜 기쁜지, 왜 슬픈지를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
해송은 그걸 안다.
그리고 알고 나서, 슬퍼졌다.

그날 밤, 그녀는 맥주를 들고 돌아왔다.
지호는 숫자를 말했다.
예산을 초과했다는 문장이 날아왔다.
그는 돈으로 말을 했다.
해송은 순간을 살고 싶었고,
그는 구조를 지키고 싶었다.
그녀는 지금을 살았고,
그는 이후를 걱정했다.

둘은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다른 시간에 살고 있었다.

바나힐에서 그녀는 멈췄고,
지호는 멈추지 않았다.
해송은 다리의 난간 앞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노란 안개가 구름처럼 깔렸고,
풍경은 허공에 매달린 것처럼 아득했다.

“좀만 더 있다 가자.”

지호는 시계를 봤다.
다음 일정에 늦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응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걸었다.
멀리까지.
지호는 따라오지 않았다.
그 침묵이 이제는 해송을 슬프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멀어졌다.

호이안.
노란 벽, 물 위의 등불, 조용한 강.
해송은 잠시, 그 도시가 자신을 받아줄 것 같다고 느꼈다.
사진을 찍는 지호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침묵 속에 작은 온기가 섞여 있었다.

그녀는 말했다.
“우린 참 많이 다르지?”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않았지만, 그건 동의였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망설이다가 손을 맞잡았다.

등불이 흐르고 있었다.
물결 위로 흔들리며,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풍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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