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넘어 그 어딘가

by 임제이

삶은 무엇인가. 이 오래된 질문 앞에서 언제나 멈춰 선다.
누군가는 말한다. “삶에는 본래적인 의미가 없다. 다만 현재를 잘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무의미를 견디며 살아내는 순간마다 오히려 의미가 피어난다.
의미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행위 속에서 잠시 반짝이는 빛과 같다.

누군가의 정의를 빌려 삶을 설명하지 않는다. 의미를 논하는 일은 언어의 장막 속에서 끝없이 미끄러진다.
하지만 지금, 숨 쉬고 사유하는 행위 자체가 언어보다 더 깊은 차원의 ‘있음’이다.
그 ‘있음’의 감각은 철저히 개인적이며, 어떤 외부의 평가로도 번역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남편은 사라졌다. 여전히 같은 공간에 있지만, 그의 존재는 더 이상 이 세계와 교차하지 않는다.
대화는 사라졌고, 그는 음식과 집을 제공함으로써 책임을 다했다고 믿는다.
그는 자신의 방으로 숨어들고, 그 안에서 ‘의무’의 세계를 살아간다.
점점 더 투명해진 그의 존재 위로, 시간만이 무심히 흘러간다.

그가 세워준 울타리 안은 물리적으로 안전하지만, 정신의 공간은 점점 좁아진다.
언어는 벽에 부딪히고, 침묵이 공기처럼 퍼진다.
그러나 그 벽 앞에서 알게 된다.
진정한 자유는 타인의 온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고독을 견디는 힘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의미가 무너진 자리에서 ‘배움’이라는 이름의 작은 등불을 다시 켠다.
외로움은 결핍이 아니라 사유의 공간이 된다.


삶에는 빠져 있는 것들이 많다.
육체의 열기, 친밀한 대화, 따스한 교감.
그 부재들은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감정의 온도이지만, 그것들이 사라져도 존재는 파괴되지 않는다.
결핍은 오히려 명료함을 낳는다.

집은 서서히 무너졌고, 이제는 작은 방 하나가 남았다.
차가운 공간 속에서도 더 이상 냉기가 흐르지 않는다.
이 벽은 좁지만, 사유는 오히려 넓어졌다.
‘함께 있음’이 사라진 자리에서 ‘온전히 있음’이 자란다.

사랑이란 타인과의 융합이 아니라, 각자의 고독을 인정한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 일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 가능성마저 삶의 중심이 아니다.
누군가의 시선에 기대지 않고도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삶의 의미란 거대한 개념 속에 숨어 있는 단순한 감각일지도 모른다.
밥을 짓고, 길을 걷고, 잠시 파도를 바라보는 일.
그 순간마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몸을 통과한다. 그것이면 족하다.

삶은 의미 없기에 오히려 자유롭다.
누군가의 기준으로부터 해방된 무의미 속에서, 의미는 매 순간 새로 만들어진다.
의미란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며, 완성된 문장이 아니라 쉼표 사이의 숨이다.

그래서 오늘도 묻는다.
“삶은 무엇인가.”
그리고 대답한다.
“그저 이렇게 살아 있는 것, 무너진 집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존재. 그것이 곧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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