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늙고 싶어

힘듦을 참지 말 것

by 책읽는제이

빨리 늙고 싶어

- 힘듦을 참지 말 것


슬픔 안에 푹 빠져보는 것도 난 우울함을 다스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다 보면 이만하면 됐다, 그만 올라가자 하는 순간이 오더라고

- 너에게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유귀선 지음 -


평소에는 대화를 잘 하지 않는 남편이지만 그날만큼은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아이들 문제로 고민이 있는데 상의할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코로나 때부터 친구를 안 만난 지도 2년은 된 것 같다. 갑자기 고민이 있다며 전화를 걸기에도 좀 그랬다.


그날 하필이면 저녁으로 생선을 구웠다. 남편은 살을 발라서 아이들 밥 위에 올려주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내가 진지하게 말을 하고 있는데도 아이들과 농담을 하느라 내 쪽을 쳐다보지 않는다. 내 이야기는 남편 귀에 닿기도 전에 아이들 웃음소리에 파묻혀 사라져 버렸다.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난 누구랑 얘기해야 돼! 넌 아빠 아니야?!"


소리를 지르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남편은 황급히 나를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큰 소리에 놀란 아이들이 싸우지 말라고 달려왔다. 남편은 안 싸울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얘기만 하고 금방 나간다면서 아이들을 달래고는 내 앞에 와서 앉았다.


"별일도 아닌 거 가지고 왜 이렇게 화를 내? 내가 뭘 어쨌다고?" 오히려 더 화를 낸다.

"넌 그게 문제야!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문제라고!"


속마음을 말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 말에 놀란 남편은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의 우울증은 코로나와 함께 찾아왔다. 어쩌면 훨씬 그전부터 내 몸속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기회는 이때다 하고 나를 덮쳐왔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집에 들어올 때부터 시큰둥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면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느라 나오지 않았다. 공감을 얻고 싶어 꺼낸 이야기에는 내 탓을 했다. 대화를 할수록 한숨이 나왔다. 남편도 회사 일이 힘들어서 예민했던 시기다. 그 마음을 이해 못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서운했다. 가시 돋친 말들이 자꾸 나를 찔렀다. 서로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결혼을 했는데 누구 하나 없어져야 끝날 다툼이 계속됐다.


육아를 전혀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에 관한 건 대부분 나 혼자 알아서 했다. 그 시기쯤 엄마표 공부도 시작을 했고 아이들에게만 집중을 했다. 나에게 부족한 부분은 책을 통해서 배워나갔고 책 읽는 엄마를 보면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로 자랐다.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힘들었던 건 아니다. 지금 돌이켜봐도 아이들과 붙어 지내던 시간은 너무 소중했다.


다만 가장 가까운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면서 점점 무력함을 느꼈던 것 같다. 누구도 만나지 않다 보니 갈수록 사람을 만나는 것에도 거부감이 생겼다. 나에게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이 가까이 계셔도 내 속을 말하지 못했다. 이런 일로 걱정을 끼쳐드릴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코로나는 잠잠해졌다. 남편은 매일 저녁 운동을 가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학교에 가고 피아노와 태권도를 배우면서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다들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늘 혼자였고 아이들을 돌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이혼하자!'소리가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당장 이 집에서 나간대도 별 다른 방법이 없다.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자고 일어나서 눈 뜰 때마다 6개월씩 지나가 있기를 바랐다. 빨리 늙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다 끝났으면 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것 따위를 바라는 것 밖에 없었다. 창밖을 보며 멍하게 앉아있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시간이 지나도 가슴속의 답답함은 해소가 되질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아이들의 책상과 소파의 위치를 바꿨다. 책이 가득 꽂혀있던 책장에서 책을 모조리 꺼내고 먼지를 털어냈다. 며칠 가지 않아서 식탁과 침대의 위치도 바꿨다. 집안을 둘러보면 여전히 못마땅한 것들 투성이었다. 한 번씩 싹 뒤집고 정리를 하면 그날은 속이 조금 후련했다.


남편은 퇴근을 하면 오늘도 달라져있는 집 구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 친구들도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집이 또 바뀌었네!"라며 신기해했다. "책상을 이 쪽으로 옮기는 게 집중력에 좋을 것 같아서", "소파를 여기에 두니까 집이 더 넓어 보이는 것 같지 않아?" 날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내가 한 일에 합리화를 시켰다. 집안을 정리하는 것처럼 내 마음도 차곡차곡 정리되길 바랐던 걸까..


남편이 다 같이 갈 곳이 있다면서 준비를 재촉한다. 따라간 곳은 볼링장이었다. '볼링장은 뭐 하러 가..'라고 말했지만 첫 게임부터 시원하게 스트라이크를 날렸다. 아이들이 깜짝 놀라 엄마 멋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엄마 옛날에 볼링 진짜 잘 쳤어~"


남편이 슬그머니 카운터로 가더니 볼링 강습이 있는지 물어본다. 코로나가 완전히 끝났던 게 아니라서 아직 강습은 없다고 했다. 그날 이후 남편은 나에게 골프도 가르쳐주고 자전거도 사주면서 나를 바깥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 애를 썼다. 절대 내 마음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이기적이라고 욕을 했다. '네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어'보여주고 싶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외박을 하기로 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호캉스를 계획했다. 아이들을 두고 나가는 게 영 마음에 걸려서 날짜를 정하고도 자꾸만 고민이 됐다. 우여곡절 끝에 10년 만에 첫 외박이 성사가 됐다. 모처럼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 나갔더니 귀에서 윙윙 소리가 나는 것 같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대화에 집중이 잘 되지 않고 눈앞도 흐려졌다.


친구들은 그런 내 행동에 당황스러운 기색 없이 그럴 수 있지 라며 별일아닌듯 말해줬다. 내가 스스로를 유난스럽다고 여길까 봐 애쓰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젠 다 괜찮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등을 쓰다듬어주는 듯했다. 손만 뻗으면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내 주위에 있었는데. 나는 그걸 왜 모른척하고 살아왔을까?


내 속마음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건 위로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상태를 설명하는 것도 귀찮고 모든 게 번거로웠다. 별일 없이 잘 지내는지 묻는 엄마의 안부전화도 싫었다. 혼자 있지만 더욱 혼자 있고 싶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건지, 얼마나 나를 더 고립시키는 행동인지를 한참 뒤늦게서야 알게 된 거다.


계속 마음을 감추고 살았다면 여전히 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리고 있었을까. 그대로 가라앉고 싶어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이후로도 한참을 더 헤매긴 했지만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일들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는 애써 마음을 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누군가에게 기대어도 좋다. 내가 다른 사람을 돌보기도 하듯이 반대로 나에게도 보살핌이 필요한 순간이 생긴 것뿐이다. 기쁨이 지속되지 않듯 그 힘듦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믿어야 한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갈 테니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