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은 유부초밥

서로를 인정해 줄 것

by 책읽는제이

홀로 남은 유부초밥

- 서로를 인정해 줄 것


두 사람은 드넓은 바다 위 두 섬처럼 함께 살아요. 태풍이 불면 함께 바람에 휩쓸리고 해 질 녘 노을에도 같이 물들지요. 하지만 두 섬의 모양은 서로 달라서 자기만의 화산, 자신만의 폭포, 자기만의 계곡을 가지고 있답니다.

- 두 사람,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지음 -


결혼하기 전, 6년을 만난 남자친구가 있다. 스물여섯의 어느 가을날,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던 그를 우연히 만났다. 이상형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던 사람인데 이상하리만큼 그에게 스며들었다. 원래 이렇게 착한 건지 나한테 뭐 숨기는 건 없는지 의심을 하면서도 자꾸만 생각났다.


우리는 대화가 너무 잘 통했다. 좋아하는 것도 비슷했다. 손재주가 좋아서 망가진 물건도 뚝딱 잘 고치고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도 말만 하면 금방 해결해 줬다. 수 없이 많은 밤을 전화 통화로 지새웠고 만나면 헤어지기 싫어서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버리기도 했다.


그를 사랑했다. 지금도 잊지 못해 그리워하고 있다. 하지만 다시는 만날 수가 없다. 내 기억에만 있을 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내 남편'으로 다시 태어났다.


"내 전 남친을 돌려줘라 이 남편놈아!"




우리는 만난 지 딱 6년째 되는 날 결혼식을 올렸다. 헤어지지 않고 결혼까지 골인했다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결혼을 하면 서로 맞춰가는 기간 동안 많이들 싸운다던데 우리는 달랐다. 연애할 때보다 싸우는 횟수가 줄었고 함께 있으니 마음도 안정이 됐다. 남편이 퇴근을 하면 식탁에 마주 앉아서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저녁을 먹었다. 여전히 우리는 연애 중이었다.


둘째를 임신했을 무렵부터 남편이 바빠졌다. 이른 아침에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오기 일쑤였다. 내가 자고 있을 때 나갔다가 잠든 이후에 들어오는 바람에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날도 많았다. 이럴 거면 회사에서 재워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왔다 갔다 운전하느라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웠다.


남편의 퇴근은 기약이 없었다. 밤 11시가 넘어야 집에 돌아왔고 여차하면 자정을 넘겼다. 1시에 들어와도 2시에 들어와도 다음날 7시면 다시 집을 나섰다. 도대체 그 회사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노동부에 신고할 거라고 흥분을 하다가도 내 남편이 누구인지 들통날까 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어느 때보다 남편이 필요했던 시기였는데 나는 늘 혼자였다.


큰 아이가 처음 입원을 했을 때에도 남편은 휴가를 낼 수 없었다. 다행히 친정 엄마가 둘째를 돌봐주러 와주셨지만 두 번째 입원을 했을 때는 도움을 바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발만 동동 구르다가 어쩔 수 없이 6개월 된 둘째까지 데리고 병원 생활을 시작했다.


둘째가 자꾸 침대 가장자리로 기어갔다. 바닥으로 떨어질 뻔해서 기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국 수건을 엮어서 둘째를 침대에 묶어 놓고는 큰 아이를 돌보기로 했다. 찰나의 시간 동안 아이는 또 기어갔다. 수건에 매달린 채 바닥으로 떨어지기 직전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의 허리춤에 묶어놓은 수건은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둘째를 안고 있으면 샘이 난 첫째가 방에 가서 아기띠를 하나 더 가지고 나왔다. 첫째까지 등에 업고서야 모든 게 공평해진 듯 잠잠해진다. 둘째는 언니에게 치여 엄마에게 마음껏 안겨있지 못했고 너무 빨리 언니가 되어버린 첫째는 늘 사랑이 고팠다. 남편은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번 주말에는 회사에 가지 않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남편을 회사에 빼앗겼다.


저녁으로 유부초밥을 만들었던 날. "아빠 오면 드리자~" 하고 남편몫을 식탁위에 올려두 잠에 들었다. 그날도 남편은 새벽까지 퇴근을 하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을 때 흐트러진 이부자리가 밤 사이 남편이 왔다갔음을 알려주었다. 식탁 위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유부초밥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유부초밥 하나 집어먹을 여유가 없었던 내 남편.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도 왜 그렇게 서운한 게 많았을까. 가장의 무게를, 육아의 고충을 서로 모르는 게 아니었는데.


이해를 하기도 받기도 버거운 날들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던 건 아이들이 자다 울면 남편이 깨지 않도록 안고 나가서 토닥였던 거. 그게 전부였던 것 같다. 남편도 내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들어오고 나갔을 텐데. 피곤이 풀리기도 전에 다시 몸을 일으켜야 하는 고단한 하루를 알면서도 살가운 표현 한번 못해줬다. 그게 지금까지도 너무 후회가 된다.

그 이후로도 우리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껏 같이 살고 있는 건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것. 그리고 그게 정말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 까닭이 아닐까. 미간을 찡그리던 남편의 얼굴에서 무거워 보이는 어깨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많이 거칠어진 남편의 손을 보았다. 남편도 하고 싶은 게 많았던 청년이었음이 기억났다. 카고바지를 좋아했던 스물여섯의 그 남자는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우리 가족을 책임져야 했다. 이 사람 덕분에 우리 가족이 오늘 하루도 잘 살았구나.

12년을 같이 살다 보니 이제는 미울 때보다 짠할 때가 더 많다. 자면서 기침을 콜록콜록하면 그게 왜 그렇게 불쌍한지. 이다음에 늙으면 나 말고 누가 챙겨주나 싶어서 졸혼을 꿈꾸다가도 마음을 접게 된다.


몇 년 전 남편은 직장을 옮겼다. 퇴근이 빨라서 여유로운 시간이 많아졌다. 그동안 못 놀았던 한을 풀려는 건지 골프와 수영, 낚시까지 즐기는 취미 부자로 살고 있다. 무언가를 바랄 때는 서운한 마음이 한도 끝도 없었는 데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우리에게는 서로의 노력을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했다. 무언가 큰걸 해주려고 하기보다 말 한마디 다정하게 건네는 게 더 중요했다. 전에는 핸드폰에 남편을 '남의 편'이라고 저장을 했었다. 저 사람은 원래 남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살자 뭐 그런 마음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얼마 뒤에 다시 그 이름을 바꿨다. 바로 '내 편'이라고. "자기는 내 편이지?" 하면서 내가 먼저 아껴주면 남편도 그 마음을 느끼지 않을까?


이렇게 말해놓고 내일 또 싸울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맞다. 얼마 전에 남편이 그랬다. 나 없이는 못 산다고.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진심이라고 믿고 책임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내 남편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아빠이기도 하니까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맞긴 하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사람인 걸.

이렇게 미운 정 고운 정 쌓이면서 함께 나이 들어가는 건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