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장래희망
- 꿈을 잃지 말 것
모든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역사가 있다. 평소에는 구름과 파도에 가려져 깊이도 높이도 가늠할 수 없지만 모든 삶에는 본디 제 모습을 드러내는 찰나의 순간이 있다.
-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 , 김병수 지음 -
"엄마는 꿈이 뭐야?"
둘째 아이가 불쑥 질문을 한다.
"엄마는 지아 잘 키우는 게 꿈이지"
"아니~ 그거 말고 엄마는 이다음에 뭐가 되고 싶냐고~~"
당장 저녁에 어떤 반찬을 만들어야 하나 고민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내 꿈이 뭐냐고? "엄마는 너희들 다 크고 나면 세계여행 다니는 게 꿈이야~" 뜬금없는 아이의 질문에 엉뚱한 소리를 하며 슬쩍 넘어갔다. 솔직히 말하면 내 꿈은 로또 당첨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다닌다. '내 꿈?' 일단 좋아하는 것부터 생각해 보자. 살림이나 요리가 취미는 아니다. 가끔씩 동네 친구들이랑 커피를 마시거나 냉장고가 비어갈 때쯤 마트에 가서 세일상품 득템하는 걸 좋아하긴 한다. 공짜로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정보들을 검색하거나 도서관에서 초등학생 추천도서를 자주 빌려온다.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에 가는 것도 좋아한다. 이것도 취미라면 취미인가?
딱히 잘하는 건 없는 것 같다. 다이어트도 요요와 싸우느라 10년째 현재 진행형이다. 매일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서 남편의 아침밥은 꼬박꼬박 잘 챙긴다. 아침밥은 보약이라 절대 시리얼로 양보할 수는 없다. 지각하는 걸 싫어해서 아이들도 일찌감치 등교를 시킨다. 주부로서 어느 정도 소질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설거지를 하려다가 식기세척기를 바라보며 '오늘은 한번 돌려볼까?' 고민을 하다가도 이 정도 그릇을 돌리기에는 전기세가 아깝다는 결론을 내리며 고무장갑을 꺼내든다. 알뜰함까지 갖추고 있는 게 확실하다.
어렸을 때는 꿈이 많았다. 따뜻했던 6학년 때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이다음에 꼭 선생님이 돼야지' 했다. 반에서 연극을 할 때면 대본 쓰는 건 내 담당이었고 별명은 문학소녀였다, 그림을 잘 그려서 교실을 꾸미는 미화부장도 했고 피아노콩쿠르에서 두 번이나 상을 받았을 때에는 피아니스트도 되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예술 쪽이 적성에 맞았나 싶다. 하지만 적성과는 거리가 먼 전공과 직업을 선택했고 어릴 적 꿈과는 상관없는 일을 하면서 살았다.
결혼을 하면서 남편이 살고 있던 평택으로 내려갔다. 서울까지 출퇴근을 하다가 한 달 만에 그만뒀다. 결혼 5개월 만에 첫째 아이를 임신했고 2년 뒤에는 둘째가 생겼다. 아이는 낳지 않고 강아지를 키우며 살겠다고 했었는데 딸을 둘이나 낳았다. 알콩달콩 연애하듯 살고 싶었지만 바쁜 남편 덕분에 독박육아가 이젠 너무 익숙하다. 결혼을 한지도 벌써 12년이 넘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전업 주부로 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커피숍 아르바이트라도 해볼까 싶어 알바천국을 뒤지다가 나이제한 문구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내 인생은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많은 여자들이 결혼을 하면 아내와 엄마로서의 삶이 곧 자신의 정체성이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나조차 관심 없다. 어디 가서 내 이름을 써야 할 일이 있을 때에는 습관처럼 아이들의 이름을 먼저 썼다가 두줄로 죽죽 긋고 그 옆에 다시 썼다. 10년 이상을 누구 엄마로 불린 적이 더 많았는데 내 이름을 까먹지 않고 있는 것도 용한 게 아닌가 싶다.
다시 일을 하고 싶지만 살림만 하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직장과 육아, 살림까지 병행하는 친구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기가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들의 삶은 정말이지 녹록지 않다. 한 번도 엄마가 꿈인적은 없었다. 40대는 인생의 황금기인 줄 알았다. 현실은 매일같이 어질러진 집을 치우며 이번 달 생활비가 구멍 나지 않게 계산기를 두드리는 내 모습. 아이를 잘 키우는 게 소명이 됐고 내 꿈이 지워진 자리에는 아이의 꿈이 자라났다.
가장 힘든 건 내가 무가치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남편은 나가서 돈 버느라 힘들었고 아이들도 열심히 공부하느라 고생하는데 나는 아무런 말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내 존재가 당연해지고 돌아오는 말 한마디 없어도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생각했다. 내가 정리하지 않으면 물건들이 갈 곳을 잃고 방바닥을 굴러다녔다. 여기저기 벗어놓은 양말을 주으러 다니다보면 과자 부스러기가 발바닥에 들러붙었다. 몇 시간만 손을 놓고 있어도 집안꼴은 엉망이 됐다.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집'이 나의 하루를 말해주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혹시라도 하루종일 '집에 있는', '집에서 쉬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요란스럽게 청소기를 돌리고 서랍을 뒤집어 정리를 했다.
시간이 갈수록 '내 인생은 고작 이게 다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마음이 짙어질수록 누군가 나의 노력을 알아주길 바랐다. 잘하고 있다는 인정의 말이 듣고 싶었다. 그 마음이 충족되지 않으면 스스로를 괴롭혔다. 누가 공격하지 않아도 괜히 혼자 상처받았고 한바탕 앓고서야 직성이 풀렸다.
여자가 결혼을 하면 가족을 위해 사는 게 행복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집에서 살림만 하며 사는 건 복 받은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할 수 있는 일을 살림과 육아로 한정 짓고 가끔 친구들과 브런치를 먹으러 다니는 게 진짜 행복인 줄 아는 것 같았다. "애들 잘 크는데 뭐가 걱정이야~ 욕심부리지 말고 편하게 살아"라는 말은 나를 배려하는 말 같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참고 살아야 한다는 말과 같다. 물론 지난 시간들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음이 틀림없다. 다만 주어진 역할에 너무 몰두를 하다 보니 나를 잊고 지냈을 뿐이다. 틀에 가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책임져야 하는 게 많아졌다고 움츠러들 이유는 없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보다 앞으로는 달라질 거라는 믿음이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내 상황을 바꿀 수는 없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사실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래도 한번 삐그덕 거린 이 기회를 한때의 방황이라며 그냥 지나치고 싶지는 않다. 정말 변화하고 싶다면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한다. 과거를 인정하고 현실을 마주 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건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마흔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불혹이 아니다. 나의 인생 전체를 바라보며 흔들리는 두 번째 사춘기를 겪는 나이다. 10대처럼 철없는 사춘기는 아니겠지만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다시 한번 도전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지?'
하고 싶던 일들을 찾아 하나씩 적어본다. 내 꿈을 궁금해하는 아이들에게 이제는 대답을 해주고 싶다.
"사실은 엄마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