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도 가지치기가 되나요?

인간관계에 집착하지 말 것

by 책읽는제이

인맥도 가지치기가 되나요?

- 인간관계에 집착하지 말 것


행복해지는 세 가지 방법. 첫 번째, 스스로 아낌없이 사랑해 주기. 두 번째, 혼자만을 시간 누리며 잃어버린 시간 되찾기. 세 번째, 인간관계에 있어 미니멀 라이프를 당장 실천하기. 이 세 가지를 아우르는 것은 나 자신을 어여삐 여기며 무한한 애정을 쏟는 것이다.

-관계를 정리하는 중입니다, 이평 지음 -


얼마 전부터 카카오톡 메신저에 친구 생일을 알려주는 알림이 떠있다. 너무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던 친구라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메시지를 보냈다.


"생일 축하해! 아이가 많이 컸네. 보고 싶다. 행복한 생일 보내~"


오랜만이라는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언제 만나자는 약속을 하기가 어려웠다. 다음에 기회 되면 얼굴 한번 보자로 마무리하기를 수차례.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지킬 수 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없던 건 아니다. 예전에는 밤새도록 서로의 고민을 나누었던 사이였다. 결혼을 하고 사는 곳도 멀어지면서 사이가 점점 소원해졌.



친정에 갔는데 엄마가 아이를 봐주신다면서 친구 좀 만나라고 하신다. 당장 만날 수 있는 친구를 수소문해 지갑만 들고 급하게 나갔다. 두 시간도 채 안 됐는데 핸드폰 벨이 울린다. 가슴이 철렁했다. 나의 예감은 빗나가질 않았다. 작은 딸이 쉬지 않고 우는데 도저히 달래지지가 않는다며 당황해하시는 엄마의 목소리였다. 친구에게는 너무 미안했지만 다시 친정으로 돌아가야 했다. 땀까지 흘리며 숨넘어가게 울고 있는 둘째 딸과 덩달아 엉엉 울고 있던 큰 딸까지. 한 시간 넘도록 두 아이에게 시달렸을 엄마한테 너무 죄송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토닥이자 금세 울음을 그친다. 이렇게 어린애들을 둘이나 떼놓고 놀겠다며 나갔으니. 내가 참 꿈이 야무졌구나 싶었다.


미혼인 친구는 나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음만 먹으면 서울 한번 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고.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했다. 우리의 대화는 스무고개를 하는 것 같았다. 말이 길어질수록 나는 엄살쟁이가 된다. 이야기가 점점 이상하게 흘러간다. "그래, 많이 힘들겠네~" 결국 이 말이 나오고야 만다. '네가 뭘 안다고 다 아는 척이야!'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이 입안에 맴돈다.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고였다.

가끔 메시지로 생사확인만 하며 살던 친구와는 더 이상 나눌 이야기가 없었다.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잘 지내고 있구나'하며 안부를 가늠하다 문득 친구의 삶이 궁금해졌다. 얼마 전에는 미국에 다녀온 것 같더니 이번에는 제주도에 가있나 보다. 애 낳고 사는 건 걔나 나나 똑같은데. 다른 점이라고는 걔는 딸이 하나고 나는 둘이라는 거. 남편이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알고 보니 금수저였나. 멋진 풍경이 사진을 가득 채운다. 웃고있는 친구가 화면을 뚫고 나와 나에게 한마디 할 것만 같다. '너 지금 내가 부럽니?'


나도 행복하게 잘 산다고 자랑 좀 해볼까 싶어서 SNS를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사진을 찍어서 올렸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그만뒀다. 나의 하루는 사진으로 남길만한 게 없었다. 자랑하고 싶은 것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도 없다. 다른 사람의 사진만 넋 놓고 구경하다가 내가 가장 별 볼일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심란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간신히 유지되던 인간관계가 가지치기되듯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우리의 우정은 변하지 않을 줄 알았다.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만나기가 힘들어졌고 살아가는 모양새가 달라진 만큼 서로의 삶이 이해되질 않았다. 인연을 이어가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멀어졌음을 확인했다.


30년 넘도록 유지하기 위해 애썼던 나의 인간관계는 연락처 목록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때는 만나야 하는 사람이 넘치고 챙겨야 할 경조사도 쌓여있었다. 치열하게 어울리며 죽고 못살던 사이도 시간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이제는 안부를 묻기에도 어색한 사람들과 연락처가 바뀐 건지 알 수 없는 사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한 동안 고민을 하다가 큰맘 먹고 핸드폰 번호를 바꿨다. 이제는 스크롤 몇 번이면 끝나는 단출한 목록만이 남았다. 가까워지기 위해 애쓰기보다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임을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나와 그들의 상황이 그러했던 거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모든 관계에는 수명이 있고 그것이 얼마나 길고 짧은지 예측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게 내 인생의 페이지는 한 장 더 넘어갔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생각보다 힘이 든다. 붙잡으려 애쓴다고 해서 억지로 이어갈 수 없고 이어가지 못하면서 붙잡고만 있는 것은 더욱 의미가 없다.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두려고 한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으면 오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많은 사람이 떠나갔지만 좋은 사람도 나타났다. 지금의 내 모습으로도 괜찮은 사람이 있었다.


사람은 저마다 감당할 수 있는 인간관계의 양이 있다. 많은 사람들을 가볍게 만나거나, 소수의 사람을 깊게 사귀거나. 어떤 관계가 좋고 나쁘고 정답은 없다. 중요한 건 스스로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존재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인간관계가 다 떨어져 나가서 외롭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은 여전히 내 곁에 있었다.

맘을 알아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내 인생은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