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턴이 뭐 길래
-좋아하는 것을 찾아볼 것
모든 힘은 제가 가진 행복에서 나오고 의욕도 행복해지고 싶다는 열망에서 나와요. 제가 하는 행동은 대부분 그저 내가 행복하기 위함이에요. 다른 사람의 희망이 되기 위해 평생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 달러구트 꿈백화점 2, 이미예지음 -
"옷장에 지금 텍도 안 뗀 옷이 몇 벌인지 알아!"
"알았어 알았어~ 다 입을 거라고~~"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방문을 닫았다. 딸깍 문을 잠그고는 쇼핑백을 바닥에 쏟아본다. 뒤통수가 따갑지만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다. 원래 이러려고 다들 힘들게 일하는 거 아닌가? 옷을 걸치고 거울 앞에 서보니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조심스레 벗어서 옷장에 걸어놓고는 엄마에게 외친다. "엄마~ 오늘 내가 저녁쏠께!"
하고 싶은 것은 일단 하고 본다.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못 먹어도 고! 아빠를 닮았나? 무조건 직진이다. 엄마는 늘 내가 걱정이다. 저렇게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어떻게 살림하고 살 거냐고 근심이 가득하시다. 저축도 하고 있고 보험도 든든하게 준비해 놨는데 괜히 저러신다. 나를 위해 쓰는 게 뭐가 어때서.
"엄마 원래 인생은 즐기면서 사는 거야~"
꿈 이야기냐고? 아니다. 이건 결혼 전 나의 모습이다. 엄마는 내가 남편을 만나고 사람이 됐다고 하신다. 성실하면서도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남편을 만나서 보고 배운 게 많았다. 남편처럼만 살아왔다면 저축한 돈으로 뭘 해도 했을 것 같다. 그 덕분에 외벌이임에도 불구하고 내 집마련도 일찍 성공했다. 남편은 일도 열심히 하면서 사람도 하나 만든 셈이다.
남편이 벌어오면 무조건 저축할 돈부터 떼어놓고 남은 돈으로 살림을 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그럭저럭 살아졌다. 애들 장난감은 동네 맘카페에서 중고로 구매했다. 세일 상품을 득템 하는 재미에 눈을 뜨면서 정상가를 주고 물건을 사는 게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만 담겨 있었고 내 물건은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최대한 사지 않았다. 어린 시절 엄마가 시장에 다녀오실 때 먼 거리를 택시 한번 타지 않고 걸어 다닌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코로나로 집에만 있으면서 나를 위해서는 한 달에 만원도 쓰지 않던 시기가 있다. 우울증 때문에 아무도 만나지 않고 두문불출하고 있었으니, 쓸 일이 없는 건 당연했다. 매일이 지루하고 그날이 그날 같았다. 여전히 혼자였고 하고싶은 게 없었다. 예전 같으면 3박 4일 동안 먹고 싶은 음식도 줄줄이 읊을 자신이 있었지만 남편이 "생일인데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묻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갖고 싶은 거 있냐고 물어봐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모든 욕구가 사라져 버렸다.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마음이 흔들렸다.
개그우먼 김숙의 유튜브 채널이 자꾸 상단에 떠있다. 자기 영상을 좀 봐달라고 꼬시는 듯 매번 나를 유혹한다. 혼자 엄청 재밌게 살고 있는 듯한 영상들이 가득하다. 나도 혼자 살아볼걸. 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동생들은 모두 결혼 전에 독립을 했지만 나는 결혼식 전날까지도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후회되는 마음과 부러운 마음이 교차했다. 캠핑장에서 데리고 온 고양이 영상을 보다가 캠핑 장비 를 소개하는 것까지 보고 있다. 우리 가족도 캠핑을 자주 다닌다. 남편이 가자고 하면 따라가는 거라 사실 장비 구경에는 큰 흥미가 없었다. 근데 뭔가 의리의리 해 보이긴 하다. 역시 연예인이라 스케일이 다르다.
어느 날부터 자꾸 캠핑 랜턴 하나가 눈에 아른거린다. 우리 집 캠핑 장비는 감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때그때 세일하는 제품들을 사모은 거라 색상도 디자인도 가지각색이다. 그런데 거기에다 그 랜턴 하나만 딱 가져다 놓고 싶은 거다. 이상하다. 왜 자꾸 그 랜턴이 생각나는 거지? 며칠을 고민했다. 김숙 님이 갖고 있는 것처럼 비싼 것도 아닌데 그거 하나 지르지를 못하겠다. 보다 못한 남편이 그냥 주문하라고 뭐라고 한다. 거기다 훨씬 더 비싼 랜턴을 턱 하니 주문해서 내 앞에 꺼내놓았다.
"이것도 가져!"
포장을 뜯는데 심장이 쿵쾅거렸다. 실제로 보니 더 예쁘다. 집안을 순식간에 아늑하게 만들어주는 따뜻한 빛을 내뿜고 있다. 식탁 위에 두 개의 랜턴을 올려놓고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가슴이 먹먹하고 목구멍이 울컥했다. 그렇게 한참을 랜턴을 바라봤다. 그냥 갖고 싶었다. 나를 위해 사주고 싶었다. 이까짓 랜턴이 뭐라고 이게 내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 놓다니.
그 뒤로 한 달 동안 매주 캠핑을 다녔다. 텐트 한쪽 구석을 예쁘게 꾸미는데 마음이 설렜다. 랜턴을 감싸는 커버도 사고 우드선반도 샀다. 갖고 싶은 것들이 하나씩 늘어갔다. 이때부터였다. 자꾸 뭔가가 하고 싶고 기대가 생겼던 게. 이른바 '랜턴 사건'의 시작이다.
행복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오로지 내 안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이 분명히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에서 느끼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커리어에서 찾기도 한다. 누가 나에게 "너는 언제 행복해?"라고 묻는 다면 랜턴을 살 때 행복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랜턴을 샀다고 그게 곧 나의 취향이나 행복은 아니다. 다만 내가 나를 위했던 그 순간 내가 행복을 느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만약 잘 모르겠다면 빨간색이 좋은지 파란색이 좋은지, 여름이 좋은지 겨울이 좋은 지부터 시작해도 좋다. 그렇게 서서히 좁혀 나가다 보면 생각지 못한 나의 행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나를 위한 랜턴'에 마음이 흔들렸던 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을 찾은 것과 같았다. 남편이나 아이들을 위하는 일 말고, '나를 위한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어졌다.
그때의 그 랜턴은 내가 가야 할 길을 향해서 환하게 빛을 밝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