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그냥 스쳐지나 보내던 일상의 생각과 경험을 기록하면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비로소 내 삶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메모습관의 힘, 신정철 지음-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아무리 읽으려 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책장을 덮고 가만히 앉아있다가 다른 책이라도 읽어야 할 것 같아 다시 서가를 뒤적였다. 오래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 이때는 미처 몰랐다. 이 책이 내 마음을 그토록 요동치게 만들 줄은. 뼈맞았다는 기분이 바로 이런 느낌일까?
블로그를 시작했다. 광고글을 올리느라 망가진 블로그 말고 다른 아이디로 새로 만들었다. 그러다 잘 되면 체험단 같은 것도 하고 싶었다. 블로그만 잘해도 돈을 벌 수 있다는데. 많은 고객들을 상대해야 하는 쇼핑몰 운영보다 어쩌면 이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여차하면 쇼핑몰을 폐업하고 블로그에 전념할 각오까지 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글을 써야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마땅히 쓸 이야기가 없었다.
나에게 글쓰기란 다이어리에 아이들에 대한 고민을 끄적였던 게 전부다. 당연히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정보가 있을 리 없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맛집 리뷰나 제품 후기 같은 소소한 일상 글밖에 없었다. 빈 화면을 바라보며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어느 유튜버가 메모하는 습관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며 메모 관련 책을 한 권 추천해 줬다. 하지만 그 책은 나에게 와닿지 않았다. 한 페이지도 읽어 내려가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다른 책을 뒤적였고 그렇게 운명의 책과 마주했다.
몇 장을 넘겼을까. 뜻하지 않은 문장에서 정신이 번쩍들었다. "타인에 대해 우월한 것처럼 행동하는 모든 사람들의 배후에는 열등감이 숨겨져 있다" 알프레드 아들러의 말이었다.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블로그가 하고 싶지?'
'돈이 벌고 싶었어'
'왜 자꾸 돈이 벌고 싶을까?'
'뭔가 보상을 받는 일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
'왜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 들지?'
'지금의 내가 싫어'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정말 열심히 산다고들 했다. 그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았다. 난 애들도 잘 키우고 살림도 잘하고 책도 많이 읽는다. 쇼핑몰도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 하면서 너희보다 열심히 살고 있어' 은연중에 그렇게 우월한 것. 처. 럼. 행동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여전히 자존감은 바닥을 헤맸다. '그때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공부를 더 많이 했더라면?',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과거의 일들이 후회가 되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답답한 마음에 집을 뛰쳐나가도 마땅히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는 내 처지가 슬프고 가여웠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열등감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지만 모두 다 들켜버렸다.
내가 만든 것이 없는 삶
유튜브나 SNS 속의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재밌고 느낌표의 연속이었다. 내가 살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그들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그 순간은 나도 함께 웃고 있지만 결국은 더욱 공허해진다. 내 삶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로또 한 장 사지 않으면서 당첨된 사람들을 부러워했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삶이 바뀌길 원했다. '나는 왜 이렇게 웅크리고 살고 있을까' 한심했지만 선뜻 수면 위로 올라가기가 어려웠다. 자존감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벌이면서도 판이 커질까 봐 전전긍긍했다. 항상 제자리걸음이었다. 내 인생에는 어느 날 갑자기 운명이 달라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드라마틱한 일은 TV에나 나오는 이야기일 뿐. 극적인 변화를 겪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변화하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해 온 사람들이었다.
니체는 '그 하룻밤, 그 책 한 권, 그 한 줄이 인생을 바꿀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예전에는 한 줄의 문장이 인생을 바꾼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기 계발서는 잘난 사람들의 자기 자랑쯤으로 여겨져서 읽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필요한 순간 거짓말처럼 다가온 책은 마치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주고받은 듯한 감정을 느끼게 했고 지금 당장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짚어주었다. 사람은 사람과의 만남으로 변화하기도 하지만 책과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다른 때라면 그냥 읽고 지나쳤을지 모르는 한 권의 책, 한 줄의 문장으로 다시 가슴이 뛰었다.
내가 정말 원했던 게 블로그 체험단에 당첨되어 돈을 버는 일이었을까? 처음 얼마동안은 재미를 느끼겠지만 오래가지 않아 만족을 하지 못할게 불 보듯 뻔했다. 내가 바랐던 것은 정체성을 되찾는 일이었다. 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 그리고 내가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는 삶을 되찾고 싶었다.
구석에 구겨진 채 버려져있던 나의 꿈을 다시 펼쳐 들었다. 그리고 글쓰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기록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써보려고 한다. 남기고 싶은 것들은 어떤 형태로든 내 삶에 녹아들어 올 수 있도록. 내가 쓰는 글들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알려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