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이 생겼다

나만의 공간을 확보할 것

by 책읽는제이

내 방이 생겼다

- 내 공간을 확보할 것


내 공간에 100권의 책이 있다면 100권만큼 생각이 커지고 1,000권의 책이 있다면 1,000권만큼의 세상이 내 것이 된다. 생각이 크고 세상이 넓어져야 비로소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다. 아무 자극도 받지 않는 상황에서는 나를 위한 그 어떤 대안도 낼 수 없다.

-김미경의 마흔 수업, 김미경 지음-


스무살이 되던 그 해 봄, 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다. 방 3개짜리 좁은 빌라에서 복작복작 살던 우리 가족은 드디어 방 4개짜리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부모님의 안방을 제외하고도 우리 삼 남매에게는 공평하게 방이 하나씩이 주어졌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넓은 방을 차지했다. 더 이상 동생이랑 서로 책상을 쓰겠다며 싸우지 않아도 됐다. 이불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느라 힘을 쓸 필요도 없었다. 내 방안에 모든 것은 오롯이 나의 것이었다. 문을 닫고 나면 그곳은 나만의 세상이었다.




침대에 누워서 자기 전까지 티브이를 보는 남편 때문에 잠들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아이들의 거실공부를 위해서 70인치짜리 티브이를 안방으로 옮기자고 우겼던 건 바로 나였다. 거실에서 방으로 쫓겨나듯 양보를 해 준 남편에게 일찍 TV전원을 끄는 것까지 바라기는 미안했다. 뒤척이는 나를 위해 남편이 볼륨을 줄여주지만 눈을 감고있어도 세어들어오는 불빛은 어쩔 수가 없다.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고 거실로 나가 소파에 앉아 책을 펼쳤다.


쇼핑몰을 시작하면서 거실에 있는 딸들 책상 사이에 내 컴퓨터 책상을 마련했다. 아이들이 공부를 할 때면 나도 그곳에 앉아 일을 했다. 이 집에서 주방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내 공간이 생긴 날이었다. 아이들 가운데 앉아있으니 공부를 봐주기도 편했다. 그곳에 앉아 돈도 벌었고 지금의 꿈도 찾았다. 하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씩 생기다 보니 갖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그중에 가장 욕심이 나는 건 내 방이다. 혼자 있고 싶을 때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내 방이 필요했다.


부부침실이 한 개, 나머지 두 개의 방은 딸들이 하나씩 쓰고 있다. 눈치게임이 시작됐다. 어떻게 내 방을 만들 수 있을까? 주방 옆의 팬트리를 방으로 개조를 하자니 일이 너무 커진다. 안방 베란다는 여름에 덥고 겨울에 너무 춥다. 아이들이 "엄마는 주방이 엄마방이잖아~~ㅋㅋㅋ"라며 깔깔 웃는다.

'이걸 어쩌지, 미안하지만 너희들이 양보를 좀 해줘야겠어.'


아직도 엄마가 재워주길 바라는 딸들에게 너희 둘이서 함께 잠을 자는 건 어떨지 물었다. 둘이서 함께 자면 밤에 무섭지도 않고 어쩌다가 엄마가 재워주는 날에는 셋이 함께라서 너무 좋지 않겠냐며 설득을 했다. 달콤한 말 뒤에 큰 그림을 그렸다. 아마도 딸들은 엄마의 꿍꿍이를 꿈에도 몰랐을 거다.


결과는 오케이. 딸들의 침대 두 개를 방 하나에 몰아넣고 옷장은 옆 방으로 옮겼다. 그리고 옷장들이 있는 방 창가 쪽으로 내 책상과 책장을 배치했다. 아이들 옷장이 함께하는 반쪽짜리 내방이지만 스무 살 그때 처음 내방이 생겼을 때만큼이나 신이 났다. 이곳에서는 왠지 글이 술술 잘 써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집안일을 모두 끝낸 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타서 내 방으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았다. 그 어떤 사무실이 부럽지 않다. 드디어 나만의 서재가 생겼다.


사람은 공간을 닮아간다


아이들에게는 상당한 금액을 투자하면서도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뭐 하나 사는 것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바로 나였고 남편이었고 우리들의 부모님이었다. 아이들이 이다음에 멋진 어른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어릴 때부터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 주지만 나는 모든 것을 양보하고도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꿈은 이뤄지기를 바라면서 부모는 성장하기를 포기한 것 같았다. 나를 위해 준비하던 것은 노후를 위한 연금보험뿐이었다. 내 인생 어디에도 인생의 2막을 위한 계획은 없었다. 오늘만 살았고 아이들을 위해 살았다.


아이들이 우스갯소리로 '엄마의 방은 주방'이라고 했던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주방에서 보내거나 집안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하며 집안일을 했다. 할 일이 없을 때에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어졌다. 그렇게 누워서 핸드폰을 손에 쥐고 온라인 세상 속을 구경하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밥 할 시간이 코앞에 다가와서야 마지못해 몸을 일으키고 주방으로 향했다.


'김미경의 마흔 수업'이라는 책에서는 돈도 시간도 공간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감을 갖자'라고 말하는 것은 공허한 소리에 불과하다며 나만의 공간을 꼭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있는 사람은 '눕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같은 책을 읽어도 책상에서 읽느냐 누워서 읽느냐에 따라 남는 게 달라진다. 공간은 내가 누구라는 정체성을 만들어 주고 사람은 점점 공간을 닮아간다.


나는 아이들만큼이나 성장하고 싶다. 청소하고 밥 하는 엄마가 아닌 꿈을 이루어가는 한 사람이고 싶다.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꼭 필요했다. 조금 더 욕심을 내어 내 방을 갖기를 원했다. 하지만 꼭 '방'이 아니어도 좋다. 거실 한쪽에 책상을 두더라도, 방 구석에 작은 테이블을 놓더라도 내 꿈을 써내려 갈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라면 어디든 괜찮다. 엄마의 꿈은 내 책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나는 내 정체성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