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사랑입니다. 남이 인정하는 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제 어깨를 펴고 이렇게 외쳐보세요. "이게 나다, 그래서 어쩌라고?"
-괜찮은 척 말고 애쓰지도 말고, 홍창진 지음-
벌써 10분 넘게 고민 중이다. 후회가 없도록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만큼이나 어려운 결정이다. 아이들과 남편은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남편이 자꾸 짬뽕도 시킬까? 묻는 걸 보니 얼큰한 국물도 먹고 싶은 모양이다. 결국 짜장면 하나 짬뽕 하나 탕수육까지 시켜서 네 식구가 나눠먹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나는 사실 야채곱창이 먹고 싶었다. 이미 결제는 끝났다. 돌이킬 수 없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매우 뚜렷한 편이었다. 맞고 틀린 것을 가리는 일에 내 의견을 내는 것도 좋아했다. 예전에는 분명히 그랬다. 하지만 자꾸만 선택이 어려워진다. 좋은 게 좋은 거야 라는 말이 이렇게 와닿을 수 없다. 분란은 최대한 피하고 싶고 갈등이 생길 것 같으면 그냥 상대방에게 맞춰주는 게 마음 편하다. 차라리 여러 명이 있을 때가 결정도 빠르다. 다수결의 원칙대로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것을 따라가면 그만이었다.
나이 사십이 넘어서 장래희망이 생겼다는 게 괜히 쑥스러웠다. 민망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애들이나 잘 키우지 무슨 꿈이냐며 사람들이 비웃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 꿈이 작가라는 걸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다. 정말 아이러니했던 것은 모두가 나를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내가 하는 일을 아무도 모르길 바랐다는 것이다.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에도 세차게 흔들렸다.
인생은 B(탄생-Birth)와 D(죽음-Death) 사이의 C(선택-Choice:)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한다. 식사메뉴를 고르는 것부터 진로를 선택하거나 사람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까지. 아무리 작은 일이더라도 최선의 선택을 하길 바란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결과가 생기기를 바라면서 결정을 한다.
긍정적인 경험이 많았던 사람은 스스로의 선택에 자신이 있다. 다른 일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장착되어 있는 것이다. 좋은 결과가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자랑도 하고 "역시 넌 잘할 줄 알았어"라는 긍정적인 피드백들이 오고 간다. 실패를 하더라도 "다음에는 잘해야지 " 쉽게 털고 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부정적인 경험이 많았던 사람은 자신감이 떨어져 있고 생각이 많다. 선택을 망설인다. 한두 번 실패는 '그럴 수 있어'라며 자신을 다독이겠지만 그런 일이 누적되다 보면 실패의 감정이 학습되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게 다 그렇지 뭐'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며 놀라기도 했다.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는데. 금방 포기하는 모습에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어려웠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는 게 익숙한 사람도 선택이 망설여지는 건 마찬가지다. 갑자기 기회가 주어졌을 때 머뭇거린다.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아무거나"라는 말을 뱉어버리기도 한다. 주관이 없어 보이고 남들이 대신 결정해 주길 은근히 바라고 있다. 정말일까? 정말 아무거나 해도 상관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경험은 따로 나누어져 있는 게 아니다. 좋은 일이 생겨도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냥 우연히 겪은 일이 되어버린다. 힘든 일을 있을 때에도 그것에서 배운 점이 있었다면 결코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수 없다. 새로운 꿈을 꾸며 희망이 가득하던 순간에도 남을 의식하던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내 꿈을 숨기는 것을 선택했다. 누가 매일 왜 그리 바쁜 거냐고 물으면 다른 핑계를 대며 둘러댔다. 긍정만 가득해도 모자란 시간에 여기저기 흔들리며 나부끼느라 아까운 시간이 흘러갔다. 모든 것은 내 선택이었다.
선택과 책임의 사이
선택이 어려운 이유는 책임도 내 몫이기 때문이다. 내 결정으로 만들어지는 결과가 두렵다는 건 완벽한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숨어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 중에서는 사실 실패해도 크게 상관없는 일이 더 많다. 무언가 잘못됐다면 다른 방법으로 한번 더 해보면 되는 것이다. 다시 도전한다고 해서 손가락질하는 사람 없다 오히려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안타까울 뿐이다.
선택과 책임, 그리고 자신을 신뢰하는 마음은 서로 맞물려있다. 어느 것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된다. 세 가지가 제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잘 해낼 때 우리의 인생이 원하는 곳으로 굴러간다. 내가 선택해서 결정한 일이 성공했을 때뿐만이 아니라 뜻대로 잘 안 돼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책임지는 모습에서 나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그 마음은 다음에도 나를 믿을 수 있는 자존감이 된다. 자존감은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커다란 힘이다.
가장 먼저 남편과 딸들에게 나의 꿈을 이야기했다. 딸들은 우리 엄마 너무 멋있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다고 했다. 황당해할 줄 알았던 남편은 "하고 싶던 것 다 해봐"라면서 용기를 준다. 동네 친구들도 나랑 너무 잘 어울린다고 이야기해 줬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내 꿈이 '작가'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모두가 나를 응원했다. 내가 잘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만이 남았다. 삽질한 만큼 곧 내 땅이 된다고 했던가, 열심히 삽질하고 실패하고 결국은 꿈을 이룰 것이다. 내가 한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 않겠다.
지난 주말 저녁, 배달어플을 뒤적이며 어떤 걸 시킬까 고민을 하다가 '야채곱창볶음'을 주문했다. 평소 같으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당연한 듯 시켰겠지만 이번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골랐다. 물론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안 매운 음식도 함께 시켰다. 아이들은 엄마 마음대로 음식을 주문한 게 이상한가 보다. 큰딸은 맛있겠다고 자기도 먹어보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작은 딸은 자기가 선택하지 못해서 억울해 보였다. 이번에는 엄마가 고른 것도 같이 한번 먹어보자!
인생에는 완벽한 답이란 없었다. 항상 행복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힘든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의 나도 내가 맞고 지금의 나도 내가 맞다. 어느 한순간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 모든 시간이 모여서 나를 만들었 다는 걸 잘 안다. 앞으로도 순간순간을 잘 살아내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내 선택에 책임을 지면서. 그렇게 오늘도 나답게 살아간다. 내 삶의 정답은 바로 내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