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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갈순덕 Sep 02. 2024

세상 달콤한 두 남자를 자랑해요_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해 겨울, 우진이가 태어났다.

결혼하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생겨서 좋았다. 세 며느리 중 유일하게 장단 맞추며 술 한잔 하는 나를 아버지도 예뻐해 주셨다. 어느 날, 아버지가 췌장암 진단을 받으셨고 어머니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병간호에 매달렸다. 이듬해 아버지는 결혼하고 3년이 되도록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를 두고 어머니께 말씀하셨다.     

 “둘째네는 애도 안 낳고 저렇게 산대? 자기가 신경 좀 써.”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들겠지. 나는 유명하다는 약방에서 쓰디쓴 한약을 지어먹었다.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도 받았다. 그리고 다행히 큰 고생하지 않고 임신을 했다(비싼 한약보다 산부인과 주사 한방의 효과가 컸다. 나는 양약이 맞나 보다 싶었다). 아버지 덕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해 겨울, 우진이가 태어났다.     


 우진이는 시가의 마지막 손주이자 외가의 둘째 손주로 태어났다. 대야할머니는 바쁘고, 뽀글할머니는 유난히 예민한 첫 손주를 더 신경 썼다. 우진이를 양육하는 일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신랑도 하루 종일 회사에 나가니 나와 우진이는 단둘이 시간을 보냈다.      


 아침잠이 많던 나는 간데없고 매일 밤 우진이가 뒤척이는 작은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리는 기적을 체험했다. 답답한 마음에 이고 지고 싸매고 잠시 외출이라도 한 날은 우진이가 저녁부터 새벽까지 내내 보챘다. 그런 날은 우진이도 힘들고 나는 나대로 고단했다. 그래서 바깥출입 없이 종일 집에만 있었다.     


 우진이 첫 돌을 며칠 앞두고 나는 복직했다. ‘출근이 이렇게 기쁜 일인가’ 설렜던 것도 잠시 아이를 등원시키고 출근하는 일은 마음고생의 시작이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우진이는 가장 먼저 등원하고 제일 늦게 하원했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늘 무거웠다.      


 어린이집을 오가는 그 길, 차 안에서 둘이서 종알종알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했는지 모른다.

 “오늘 엄마가 말이야, 사무실에서... ”

 “엄마가 진짜 바빴는데 막 전화가 여기저기서 오고, 그런데 또 사무실에 아무도 없는 거야! 참 나..”

 우진이는 내 말에 재잘재잘 대꾸해주고, ‘엄마, 힘들었겠다’ 고 장단을 맞춰주었다. 우진이와 나만 아는 비밀도 그렇게 하나씩 늘어갔다.      


 우진이는 소리에 예민해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거나 시끄러운 곳을 힘들어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그런 곳을 멀리했다. 아이 하나 건사하는 것도 힘든데, 나는 분주하고 소란스러운 곳은 생각만으로도 버거웠다. 그렇게 우진이는 엄마인 내 취향에 맞게 정적인 아이로 자랐다.      


 정적이지만 엄마의 감정을 읽어줄 수 있는 아이. 우진이는 세상 달콤한 남자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한 번씩 사무실 앞에 와서 전화를 한다.

“엄마, 밖으로 잠깐 나와봐”

 들릴락말락한 목소리에 나가보면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하나 들고 서 있다.      

"엄마, 밖으로 잠깐 나와봐" 하고 건넨 커피_세상 달콤한 녀석



 어느 날 불현듯,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도 표현은 달랐지만 내게 참 자상했다. 둘째 며느리가 졸라대니 생전 다른 자식들을 위해 한 번도 한적 없다는 해루질도 반나절을 넘게 하셨다.

 “엄마 가져다 드려. 다른 애들한테는 말하지 말고.”

 동서들 몰래 친정에 가져가라고 태어나서 처음 본 주먹 만한 홍합을 한가득 챙겨주신 적도 있었다.  

    

 우진이가 꼭 아버지처럼 달콤하다. 아버지가 나를 계속 챙겨주고 싶어서, 우리 우진이를 보내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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