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대교 횡단이 목숨까지 걸어야 할 일이야?

여전히 생생한 세 친구의 십수 년 전 여행 에피소드

by 재갈순덕

대학 졸업 후 방문교사를 시작한 H. 일사천리로 하얀색 중고 아반떼를 샀다.


“히야, 죽이네, 죽여.”

“엄청 싸게 샀어! 멋지지 않냐?”


생김새는 얌전한데 소리가 상당히 과하다. 당장이라도 내달릴 것만 같은 굉음을 내는 녀석.


“그런데, 소리가 왜 이래. 경주용으로 나온겨? 우와앙! 그 뭐냐, 마후라? 그게 터진 거 아냐?”

“마후라? 몰라, 뭐 어쩔 거야! 괜찮아!”

“우와앙! 우왕! 야야야, 웅이 어때? 이름 붙여주자!”


우리는 H의 중고 아반떼를 ‘웅이’라고 불렀다. 웅이 덕분에 멀리까지 드라이브도 가고, 밤늦게까지 놀아도 안전하게 귀가하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세차 조공은 당연했다.


경기도에 있는 놀이공원 사파리에 백 호랑이를 볼 수 있다는 뉴스를 보고 우리의 마음이 들썩거렸다. 장거리 운전이 부담스러웠지만

‘웅이는 건재해.’

‘이번 기회에 경기도까지 뚫어봐, 웅이맘.’

‘힘들면 돌아가면서 운전하자’

열심히 H에게 펌프질을 하며 부추겼다. 최종 멤버는 H와 L과 나, 우리는 사파리도 가고 온수가 나오는 유수풀도 갔다가 공원 옆 통나무펜션에서 자고 오기로 했다.


우리는 짐보다 훨씬 많은 간식 보따리와 ‘전국 고속도로 지도’를 한 장 챙겨 출발했다(웅이는 내비게이션을 탑재하지 못했다). H는 열심히 운전했고, L은 조수석에서 지도를 보고 그대로 육성으로 옮겼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 앞뒤좌우를 살펴주며 중간중간 간식을 챙겼다(돌이켜보니 내가 졸라 바빴었네). 먹을게 떨어지면 쉬 예민해지니까.


웅이는 그날 처음으로 서해대교를 건넜다. 덤프트럭이며 승합차며 멋들어진 녀석들 사이에서 웅이는 주눅 들지 않고 맹렬히 달렸다.

‘우와앙’


우리는 계획대로 백 호랑이도 만져보고 사진도 찍었다(싸이월드 비밀번호를 몰라 그 사진을 당최 찾을 수 없다는 게 함정). 차 안에서 내내 욕을 했지만 같이 오지 못한 J를 위한 선물도 사고 웅이의 노고를 치하하며 맥주파티도 즐겼다.


이튿날, 군산으로 내려오는 길. 올라올 때는 괜찮더니 날씨가 궂고 진눈깨비까지 내렸다.

“천천히 가자.”

“그래그래, 오늘 안에만 도착하면 되지. 휴게소도 들르고 천천히 내려가자.”

쫄았지만 휴게소 간식 메뉴를 상기하며 한껏 억텐을 터트렸다.


직장에서 겪은 억울한 일, 최근 소개팅이 왜 그 모양이었는지, 어제부터 이어진 수다삼매경을 이어가는데 정작 챙겼어야 할 웅이 간식이 간당간당하다. ‘왜 출발할 때 생각 못했지.’ 급반성 끝에 휴게소보다 주유소를 먼저 들르기로 했다.


“남안성 IC. 이게 제일 가깝네. 이정표 보이면 빠져나가자.”


지도를 뚫어지게 보던 L이 말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정표가 보였고 우리는 나들목을 지난 뒤 금세 주유소를 만났다. 기름을 가득 채우고 나니 다시 텐션이 올라갔고, ‘이건 뭐 일사천리구만.’ 상기된 기분에 저절로 주접이 나왔다.


다시 고속도로를 타려는데 이정표가 나오질 않는다. 들어선 길 그대로 돌아가는데 가도 가도 찾을 수가 없다. 우리는 주유소로 돌아왔다. 사장님이 알려준 대로 이번에는 더 천천히 움직였다. ‘어라, 뭐지.’ 차 안은 고요했고 우리는 남안성 IC 늪에 빠졌다. 가다 멈추고 돌고 돌기를 서너 번쯤 반복하고 나서야 고속도로 입구를 찾았다. 그때서야 우리는 무용담을 늘어놓듯 수다를 재개했다. 그리고 창문을 내려 차 안 가득 잠식했던 침묵을 내보냈다.


더 커진 빗방울과 함께 우리는 다시 서해대교를 탔다. 영화에서 본 뉴욕에 있는 다리 같다고 실컷 재잘거리는데 옆으로 덤프트럭 한 대가 빠르게 지나갔다. 엄청난 흙탕물이 웅이 안면 강타.


“이런 씨ㅂ!”


이구동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워셔액으로 흙탕물을 닦아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깨끗해져야 할 앞 유리가 계속 멀겋다.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닦아도 닦아도 그대로다. 아니 점점 더 뿌옇다. 속도가 점점 줄어들고 우리 말수도 적어졌다.


트럭이 지나가면서 대체 뭘 뿌린 건지, 그냥 흙탕물이면 이러지 않을 텐데. 하는 수 없이 H는 창문을 내려 고개를 빼고 운전했고, L은 창문을 내리고 긴 팔을 뻗어 앞 유리 바깥을 직접 닦았다. 나는 그 둘을 살폈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던 중 발견했다.


‘행담도휴게소’


부랴부랴 휴게소에 내려갔다. 주유소에 들러 워셔액도 보충하고 물티슈를 사서 앞 유리를 한참 닦았다. 앞이 선명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숨을 돌렸다. 겉옷도 입지 않은 채 한참을 밖에서 있었는데도 전혀 춥지 않았다. 안심이 되고 나니 웃음이 터졌다. 오줌을 지리기 직전까지 한참 웃었다.


군산으로 내려오는 내내 우리는 실컷 욕했다. 웅이가 덤프트럭에게 받은 모욕과 수모를 참을 수 없어서. 한참 동안 떠들다 L이 말했다.


“아까 내가 창 밖을 뭐로 닦은 줄 알아? 이거야 이거. 하하하”


L이 내민 손에 광채가 났다.

우리의 귀인은 바로, ‘즐거운 여행 되세요. 남안성 IC 주유소’가 인쇄된 여행용 티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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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이요) 출중한 미모를 겸비하고 글빨로 압살하는 #배지영 작가님으로 부터 첨삭지도 받아 완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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