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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제이 May 01. 2019

기다림의 미학

커피 장인, 바리스타


다섯 번째,

신나는 날



어느 평범한 주말 우리는 서해 바다를 보 가자 무작정 강릉으로 떠났다. 는 여느 때처럼 달리는 차 안에서 맛집을 검색하기 바빴고, 어디 가서 뭘 먹을지 어디를 구경할지 1박 2일 동안 처음 가는 강릉을 열정 탐험하겠다는 기대감으로 잔뜩 풀어있었다. 검색 중 유독 눈에 띈 커피숍을 발견했고 그곳은 아니나 다를까 이미 'SNS 갬성 카페'로 꽤 정평이 나 있는 곳이었다. 커피 한잔을 마시려고 몇 시간 줄을 섰다는 후기를 읽으며, 줄이 긴 곳은 피해 가는 남편에게 오버 섞인 콧소리로 설득을 시작했다.


"'흑임자 라떼'라고 들어봤어?"

"왠지 맛있을 거 같지 않아?"

"한번 맛보면 두 번 먹고 싶은 곳 이래!"


남편은 한껏 상기된 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는지, 커피숍으로 네비를 찍었다. 근처에 유명한 초당 순두부 가게가 많아 초입 진입도 어려웠고, 주차 전쟁을 통과해야 했다. 남편은 나를 커피숍 앞에 내려주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분명 내가 인터넷으로 확인 한 커피숍이 맞는데 가게 앞에 사람이 없다. "여기가 아닌가?" 정문이 어디냐며 혼자 두리번거렸다. 11시에 오픈이라 했고, 난 12시 조금 넘어 도착했는데 아직 오픈을 안 한 건가 싶을 정도로 한산했다.


'SNS 갬성 카페' 기억 속 저장  


때마침 '안내 문구'를 붙이러 나온 직원에게 물었다.

"오픈 한건 가요? 여기서 주문하면 되나요?"

"지금 주문하시면 4시간 기다리셔야 돼요."

직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기 시간이 적힌 안내 종이를 가게 입구에 붙며 대답했다.

"네? 4시간이요?!"


처음 4시간이란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나빴다. 무슨 커피를 더치커피처럼 한 방울씩 내리는 것도 아니고 4시간이나 기다리라고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손님도 없는 거 같은데 괜히 인터넷으로 유명세 탔다고 배짱 장사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주차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괜히 여기까지 오자고 한 내가 미안해 더 투덜거렸다. 남편은 내일 오픈 시간에 맞춰 다시 오자며 날 되려 위로해줬다.




다음 날 카페 오픈 1시간 전쯤 식당으로 가는 길목에 그곳을 지나쳤다. 닫힌 가게 문 앞에 여행 캐리어에 기대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지금 줄을 서면 오픈하자마자 커피를 마실 수 있었겠지만, 배고픔이 더 컸기에 그 줄에 선뜻 낄 용기도, 오픈까지 1시간을 기다릴 자신도 없었다.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느림의 미학, 기다리는 재미 그것이 여행


강릉은 어디를 가든 유명한 곳은 최소 한 시간 대기는 기본이었다. 빵, 꼬막, 순두부, 젤라또까지 우리가 맛보고 싶어 하던 그곳들은 한 시간 이상씩 우리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강릉은 "느림의 미학"이 있는 곳, '기다리는 재미'가 있는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여행은 그렇다. 느려도 괜찮은. 천천히 가도 괜찮은.


아침을 든든히 먹은 우리는 다시 그 커피숍으로 향했다. 하루에 한잔은 꼭 커피를 마셔야 하는 나의 '카페인 중독'을 핑계 삼아, 그리고 강릉에서 마시는 커피라면 그곳이면 좋겠다는 논리 없는 이유로 설득을 했다. 줄이 썩 길지는 않았다. 이곳은 특이하게 먼저 주문을 하고, 계산을 하면 영수증에 커피가 나오는 시간을 적어준다. 어제 내게 '지금 주문하면 4시간이나 걸린다'라고 한 이유가 설명되는 상황이었다. 오픈한 지 한 시간 반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주문이 이루어졌을 테고, 사람들은 이미 영수증과 함께 돌아간 후였기에 한산했던 것이다.  


난 흑임자 라떼 두 잔과 초당 순두부 케잌을 주문했다. 내 커피는 두 시간 후에 준비된다고 했다. 남편과 두 시간가량 안목해변을 거닐었다.


바다 냄새가 좋았다.

파도 소리가 좋았다.

날 이해해주는 '내편'이 옆에 있어서 좋았다.


흑임자 라떼와 초당 순두부 케잌


카페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햇살이 유독 눈부신 날이었다. 앞에 놓인 커피에 알 수 없는 설렘이 가득했다. 커피잔을 들고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 여직원이 내게 왔다. "고객님, 죄송한데 커피를 다시 갖다 드릴게요. 비율이 잘못된 것 같다고 사장님이 다시 만들어 주신대요." 하루하고도 두 시간을 기다렸는데 또 다시 만들어진 커피가 내게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니. 기다렸다. 그리고 맛본 그 커피는 수없이 고민한 사장님의 열정이 담긴 맛이었다. 커피에 흑임자를 넣을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내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맛이었다.


결국,

한잔의 커피도 비율에 정성을 쏟는 청년 사장님의 '열정'이 이곳을 이토록 오고 싶게 만든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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