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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Feb 14. 2018

청춘영화? 웃음과 판타지로 그 이상을 말하는 영화

- <족구왕> 리뷰

2014. 11 미디어생각 

http://www.ismedia.or.kr/usr/bbs/BbsMain.do?smenuNo=2040300&ntt_id=16716



<족구왕> 포스터


파아란 하늘 위로 헬리콥터가 시끄럽게 지나가고 푸르른 나뭇잎 위로 물방울이 흘러내린다. 그리고 뜨거운 태양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즐겁게 족구를 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때, 주인공 만섭(안재홍)의 전역 소식이 들려온다. "홍만섭 병장님, 전역 신고하시랍니다. 지금 안 하시면 전역 안 된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만섭은 전역하는 것을 기뻐하기보다 한창 불붙은 족구를 멈춰야 하는 것이, 더 이상 군대에서 족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더욱 아쉬운 표정이다. 도대체 만섭에게 족구가 뭐길래, 전역조차도 기쁘지 않은 것일까.


우문기 감독의 첫 장편영화인 <족구왕>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청춘(靑春)'.

하지만 <족구왕>을 단순히 '청춘영화'로 규정짓기에는 모자람이 있다. 족구라는 특이한 스포츠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나 일본 만화에서 봤음직한 유머코드, 만섭이 미래에서 왔다는 설정 등의 판타지적인 요소는 이 영화를 특별한 위치에 놓이게 한다.


어찌 보면 이 영화를 어느 하나의 단어로 규정짓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청춘'이라는 말을 정의 내리는 것에 대한 곤란함과 닮아있다. 그러니까 막연히 좋은 말인 것처럼 느껴지는 청춘이라는 말이 어느 하나로 정의되지 못하고 때로는 텅 빈 말이 되거나 때로는 수많은 잉여를 동반한 단어가 되는 것처럼 <족구왕>도 한편으로는 단순한 스포츠 코미디 영화 같으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의 모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심각한 영화 같기도 한 것이다. 


영화는 만섭을 중심으로 또래 대학생들의 여러 모습들을 족구를 매개로 보여준다. 누가 봐도 복학생(!)인 만섭은 돌아온 캠퍼스에 족구장이 테니스장으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같은 과 창호(강봉성), 미래(황미영)와 함께 족구장 건립 서명 운동을 벌인다. 그 와중에 학자금 대출 이자 때문에 은행에선 계속해서 독촉 전화가 오고, 기숙사 룸메이트 선배는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하라”며 미래를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기꺼이 포기하라고 말한다. 한편, 만섭이 첫눈에 반한 캠퍼스 퀸카 안나(황승언)는 “여자들이 족구하는 남자를 제일 싫어한다”며 연애하고 싶으면 족구를 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남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는 전직 축구 국가대표 강민(정우식)은 만섭과의 족구 시합에서 3:0으로 패하고는 질투심과 좌절감에 휩싸인다.  


대학이 더 이상 '배움의 상아탑'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사관학교'이자 마치 기업처럼 경제적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곳이 된 지는 오래다. 학자금 대출과 아르바이트, 스펙 쌓기에 치이는 학생들에게 캠퍼스의 낭만은 부모님이 돈이 많아야만 누릴 수 있는 사치일 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만섭의 대책 없는 '족구사랑'은 다소 현실성이 떨어져 보이기까지 한다.



사실 <족구왕>은 판타지로 느껴질 만큼 비현실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이는 영화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을, 조금은 과장된 인물과 상황 설정 때문일 터다. '총장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총장과 그를 조종하는 이사장 동생인 '학생처장'의 설정도 그러하고, 붉은 티와 모자를 쓰고 자발적으로 학교 순찰을 도는 해병대 출신 학생들의 모습도 그러하다. 또한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 부분, 영화 <소림축구> 혹은 '축구왕 슛돌이'를 연상케 하는, 땅을 뚫을 듯한 만섭의 족구 실력이나 만섭으로 인해 갑자기 학교에 불어 닥친 족구열풍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이런 설정들은 영화에 재미를 더하기 위한 장치라고 해두자. 사실상 이보다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은행 이자를 갚지 못해 결국 학기 등록이 취소된 후에도 "맡은 건 제가 마무리해야지 말입니다"라며 학교 아르바이트로 하던 자판기 관리를 대가 없이 계속한다거나, 주변에서 공무원 준비를 하든 말든 자신은 연애를 하고 싶다며 학교 퀸카인 안나에게 용감히 고백을 한다거나 하는 만섭의 끝없는 성실함과 용감함 같은 것들이다. 작은 것까지도 경쟁해야 하는 지금의 대학 현실에서 만섭은 정말이지 미래에서 온 사람일 법한 인물처럼 느껴진다.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고 말하는 만섭의 말이 안나에게 호감을 사기 위한 거짓말처럼 느껴지다가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낙천적인 만섭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영화의 마지막, 벤츠를 탄 그가 유유히 어디론가 떠나 (아마도) 미래로 이동하듯이 번쩍하는 불빛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이 꽤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족구왕>의 이런 과장과 판타지적인 요소는 지금의 현실을 꼬집는 풍자이자 메타포라는 점에서 우리의 모습을 다시금 보게 한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다른 이의 시선을 의식하고 사는 걸까? 연애도, 놀이도, 즐거움도 모두 미래를 위해 혹은 다른 이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기꺼이 헌납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살기 위한 해답인 것일까? 영화는 만섭을 통해 조금씩 변화해 가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그러니까 이들이 남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를 조심스레 내어보는 과정을 코믹하고 유쾌하게 그려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글프기까지 한 현실이지만, 이 영화의 미덕은 그러한 현실을 냉소하거나 자조하지 않고 오히려 낙관하고 웃으며 넘어서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덕이 <족구왕>을 '청춘영화'라는 규정을 넘어 더욱 유쾌하고 자유분방한 영화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자유분방함은 감독 자신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청춘'의 핵심이자 그의 삶의 태도이기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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