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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은 Feb 25. 2021

나는 관장형 헬스장에 다닌다.

"환상적인 몸으로 만들어 드릴게"


확신에 가득 찬 헬스장 관장님의 추상적인 호언장담에 이끌려 헬스장을 등록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3주 동안 꾸준히 헬스장에 다니고 있다. 관장님이 내부에 있는 기구들로 운동하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흔히 말하는 운동 루틴을 짜주었는데, 6가지 기구로 30개씩 5세트를 반복하는 루틴이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숫자를 세는 운동이다. 시작부터 마지막 운동까지 내내 열심히 숫자만 센다. 나는 한 번에 더 많은 숫자를 세려고 기를 쓰고 기구를 밀어제낀다. 문과인 나는 숫자에 약해서 그런지 더욱 힘이 드는 것 같다.


기구를 밀어제낄 때마다 옆에서 관장님이 숫자를 세준다. "하나. 둘. 우. 우. 우.... " 첫 숫자만 정확히 들리고 나머지는 알아들을 수 없다. 그래서 속으로 직접 숫자를 세야만 남은 개수를 파악할 수 있고 혼선을 막을 수 있다. 관장님은 내가 움직이는 속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속도로 메트로놈같이 수를 센다. 30개를 모두 채우고 나서도 관장님이 계속 숫자를 세길래 돌아보았더니 다른 곳을 보면서 우우 소리를 내고 있었다.


관장님은 호언장담했던 것과 다르게 딱 3일 동안만 숫자를 세주었고 그 이후에는 운동 루틴이 적힌 문자를 보냈다. 탐탁지 않았던 관장님의 존재감은 빈자리가 돼서야 드러났다. 관장님이 옆에서 숫자를 세줬을 때는 30개까지 기구를 밀어제낄 수 있었는데, 혼자서 하려니까 젖 먹던 힘까지 다해도 고작 20개가 최선이었다. 10개의 격차는 어디서 나온 걸까.


얼마 전,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말고 미워하지 말자는 다짐의 글을 썼다. 그러나 사람마다 발달된 신체부위가 다르고 근육이 발달된 정도도 당연히 다르기 마련인데, 관장님이 운동기구마다 무자비하게 30개 5세트를 외칠 때 바로 관장님을 미워하게 됐다. 힘이 바닥나는 기점인 20개부터는 관장님에 대한 미움이 힘의 원천이 되었다. 아이언맨의 딸이 아이언맨에게 3000만큼 사랑해라고 말한 것처럼, 나도 셀 수 있는 최대의 숫자로 10만큼 관장님을 실컷 미워하고 운동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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