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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현 Mar 29. 2020

계단이 있는 집

도심 속 테라스하우스

날씨가 좋다.

우리 집은 곳곳이 하늘과 닿아 있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건축주가 베란다를 하늘을 볼 수 있게 확장을 해 놓았다.

일교차가 심한 날은 창가에 맺힌 물기를 닦아줘야 한다. 하지만 나는 온 집의 창이 좋다. 창이 많다는 것은 빛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하지만 요즘은 창이 많은 집을 찾을 수 없다.


우리는 어디든 살고 있다. 그리고 고민하고 있다.

어디에 살아야 할까?

어떤 집에 살아야 할까?

어떤 집을 사야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까?

어떤 집에 살아야 돈이 될까?

어떤 집에 살아야 행복할까?


살고 있는 우리는 항상 고민한다. 대한민국의 집값은 비싸다. 그중에서 서울은 더 비싸다. 쉽게 집을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고민한다. 집이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이번 코로나 사태 때문에 집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집 밖으로 못 나가게 될 줄이야. 모든 것이 해결이 가능한 집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을 집에서 해결해야 하는 요즘 나는 우리 집에 매일매일 감사한다.



결혼 전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내가 서울에 집을 산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결혼하고도 서울에 집을 살 생각은 못했다. 나와 오빠에게 집이란 아파트였고, 2016년 우리가 결혼할 당시에도 집값은 엄청났다.


내 어린 시절의 집은 앵두나무와 대추나무 그리고 감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쇠로 된 문을 끼익 열고 들어가기 전에 대문 위로 붉은색 덩굴장미가 피어있었다. 옥상에 올라가 연두색 대추를 따서 말렸고 달콤한 앵두를 먹기 위해 몰려든 곤충들과 함께 살았다. 툭툭 떨어져 마당을 지저분하게 하는 감도 일상이었다. 그게 내 기억의 집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우리는 아파트에 입주했다. 대전이 개발되던 때였다. 처음 본 욕조에서 동생들과 하루 종일 놀곤 했다. 편리하고 깻끗했다. 나는 그 아파트에서 10년을 넘게 살았다. 친정식구들은 아직 그곳에 산다. 하지만 내가 어린 시절 집이라고 떠올리는 순간의 집은 앵두나무와 대추나무, 감나무가 있는 집이다. 온 동네를 뛰어다니고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 다 알던 시절의 그리움인 걸까. 알 수는 없다. 그래도 나는 꽃이 있고 초록이 있는 공간이 늘 좋았다. 우리 엄마는 그때를 생각하면 청소하기 싫었다고 한다. 나에겐 그저 그리운 기억이다.



첫 번째 신혼집은 작은 빌라였다.

26살 서울에 올라와 자취를 시작한 나였다. 원룸 빌라가 뷰가 있을 리 없었다. 서울살이 내내 밖이 보이는 집에 대한 열망이 컸다.



안방에서 커다란 감나무를 볼 수 있는 빌라였다.

누워서 새소리를 듣곤 했다. 나무를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일 년을 더 보내면서 이곳은 더 이상 지낼 수 없을 만큼 좁아졌다. 둘이 살기엔 적당하였으나 셋이 살기엔 비좁았다. 아마도 나의 마음이 답답해 더 그리 느껴졌으리라.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했다. 37살의 출산은 나를 우울하게 했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답답했다. 집 근처의 공원이 아니었다면 그때를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전세 2년 만기가 되기 전에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오빠는 이사를 준비했다.


두 번째 집은 거실에 큰 창을 보고 그다음 날 계약했다. 사실 첫 번째 집도 보자마자 계약했었다 ㅋ 지금 집도 아침에 보고 저녁에 다시 보고 계약금 넣고 계약했다 ㅋ

오빠랑 나는 평소 우리가 원하는 삶에 대한 대화를 많이 한다. 우리 오빠는 그다지 원하는 게 없는 사람이지만 우리가 사이좋게 지금처럼 사랑하며 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행복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다. 현명하다.


두 번째 집은 꽤 좋았다. 고도제한이 있는 이 동네에서 제일 높은 곳이었고, 상가주택이라 아래층이 사무실이었다. 층간소음의 문제가 없었다. 평수도 실평수가 24평이라 넓었다. 하지만 집주인이.... 할말하않 -_- 졸부님이신 건물주 (200억 넘음)님은 맨날 거짓말과 이랬다 저랬다를 일삼는 정말 상식 이하의 사람이었다. 그즈음 (2018년-2019년) 우린 진지하게 매매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집주인이 열 받게 할 때마다 나는 집을 보러 다녔다. 요즘 아파트의 집값을 결정하는 요인은 교통 + 학군이다. 공원 근처를 포기할 수 없는 나는 같은 구의 괜찮다는 아파트들을 보러 다녔다. 초중고가 참 가까웠다. 하지만 좁고 낡았다. 무엇보다 뷰가 전혀 없었다. 뷰가 좋은 곳에 살다 보니 뷰가 없는 곳은 고려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일 년이 또 지나갔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동네를 사랑한다. 서울에 올라온 날부터 지금까지 주욱 지내고 있다. 공원이 있는 곳이다. 공원과 사계절을 지내다 보니 자연이 없는 곳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매매의 대상도 늘 이 동네였다. 그러다 지금의 집을 봤다.

역세권 (이라고 나는 주장 ㅋ 도보 10분 이내)이며 주차도 일렬로 가능하다. 지하주차장이라 비를 맞지 않는다. 그리고 테라스가 있는 복층이었다. 위아래가 뚫려있는 복층의 난방비 단점을 알고 있기에 분리된 공감이 매력적이었다.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지만 그때는 그냥 반했다. 물론 매매 당시에도 저런 장단점은 충분히 고려하고 매매했다.



집을 보던 날 이 모습을 봤다. 이 햇살 안에서 우리 가족이 행복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보고 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나 이 집 사고 싶어”

“응”


그게 다였다. 저녁에 다시 집을 보러 갔다. 오빠 보라고 간 거였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선우 따라다니느라 기억이 안 났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계약 했어? 하고 나중에 물었다.


오죽 잘 골랐겠어? 그리고 사고 싶으면 사야 하는 사람이잖아.


그렇게 우리는 우리 집을 갖게 되었다.

코로나로 유폐되어있는 요즘이다. 사람들은 아파트를 산다. 그게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도 역시 아파트를 최우선으로 고려했었다. 그리고 우리 집을 만났다. 우리 집에 이사하고 와서 마음이 불안했다. 매일매일 이 집에서 사는 것이 행복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일에는 이유가 있었다. 돈이 되지 않을 나의 선택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오빠에게 그런 마음을 이야기를 했다. 오빠는 우리가 집값이 매일 올라가는 아파트를 샀어도 다른 집을 봤을 거라고 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했다. 나중을 위한 투자보다 지금 행복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오빠도 그게 좋다고 했다. 노후나 재테크에 대한 부분이 걱정이라면 오빠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평범한 직장인인 오빠가 우리의 노후를 단숨에 해결할 방법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오빠의 말에는 힘이 있다. 오빠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마음에 안정을 찾았다. 어쩌면 지금 우리 집이 좋은 게 아니라 우리 가족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좋은 곳일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의 집이기에 더 좋은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 집은 참 좋다. 이사하기 전 완벽하게 깔끔한 모습도 좋았다. 하지만 여기저기 정돈되지 않은 우리의 흔적이 있는 지금이 더 좋다. 내가 2019년 블랙프라이데이에 주문해서 2020년 3월 23일 받은 나의 조명이 좋다. 처음으로 양재동까지 혼자 운전해서 사고 낑낑대고 집까지 가져온 올리브 나무가 좋다. 조그만 꽃이 다글다글 열렸던 올리브나무는 지금은 꽃이 지고 열매가 열렸다. 우리가 결혼하고 두 번째 신혼집으로 이사했을 때 아버님이 사주신 8인용 고무나무 식탁이 좋다. 너무 갖고 싶었던 크림색 스텐모어 스피커도 좋다. 옛날 사람이라 그 스피커에서 나오는 성시경 목소리가 좋다. 선우와 함께 1월 2일 동대문까지 가서 고른 하얀 리넨 커튼도 좋다. 이 집의 모든 것이 내가 고른 것이다. 화장실 타일 하나,  계단의 소재 하나도 내가 골랐다. 방문 손잡이도 페인트 색상도 내가 골랐다. 토분도 내가 골랐고 그 안에 심긴 장미도, 라벤더도 내가 골랐다. 예쁜 꽃들이 자라는 테라스도 내가 골랐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곳곳에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행복한 일이다. 모든 것이 나의 심쿵 포인트다. 나는 평생 나의 취향을 만들고 확인하며 살았고 이 집은 내 취향 그 자체이다. 따뜻하게 해가 드는 집. 아이가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이 있는 집. 도심 속이지만 테라스가 있는 집. 공원이 가까운 집.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 그게 우리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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