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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화 Nov 15. 2024

(소설)로맨스

제10화_ 한 발 더. 이번엔 진짜 한 걸음 더.

(소설)로맨스

제10화_ 한 발 더. 이번엔 진짜 한 걸음 더.

2019년 2월 22일.

남자는 정신없이 바쁘다. 명절에도 출장 다녀오고, 회사는 남자를 쉴 틈 없이 굴린다. 주재원으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해서 정리할 것도 산더미 같은데, 업무는 점점 더 많아졌다. 여자를 만날 시간이나 있을까? 그녀도 바쁜 사람인데.

그래도, 혹시나 만나게 될 거란 기대에 출장길에서 화장품을 사왔다. 


못 전하면 다른 사람에게 주면 되지 뭐. 


맨날 야근에, 회식까지. 

남자는 나이를 먹어가는 자신을 느낀다. 1년 전 쓰러진 일을 계기로 건강에 더 신경 쓰고 있지만, 회사는 그의 사정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자는 왜 연락이 없을까? 설마 만나기로 한 걸 잊은 건 아니겠지? 남자는 기다린다. 그리고 또 기다린다. 시간만 흘러간다.


바쁘다. 바빠.


여자는 가족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머릿속에 온통 남자 생각뿐이다. 그가 떠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얼굴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2월이 끝나가고, 3월도 얼마 남지 않은 시점. 결국, 조심스레 남자에게 먼저 카톡을 보낸다.


여자: 바쁘시죠?
남자: 여행 잘 다녀오셨어요?
 오늘 시간 어떠세요?


거두절미, 오늘 보자는 말에 여자는 피식 웃는다.
 '역시 기다리고 있었구나.'


여자: 아하? 몇 시에 퇴근하세요?
남자: 요즘 나갈 준비 중이라~ 일찍 끝나요. 어디가 편하세요?
여자: 저는 7시 반에 퇴근인데...
남자: 저도 그쯤 끝나요~ 울 쌤 맛있는 거 사드려야 하는데 ^^
여자: 이번엔 제가 사드릴게요. 장소를 정하시죠?
남자: No, no. 제가 한국 오래 비우니까 대접해야죠. 제가 그쪽으로 갈까요? 끝나고 기차 타고 내려가면 되니까요.
여자: 그럼 제가 기차역에서 픽업할게요.

남자: okay, 테슬라 처음 타보네요~
여자: 내가 아니라 차가 보고 싶으신 거군요?
남자: Nope~ 진짜 쌤이 보고 싶음 ^^


둘 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남자는 일찍 끝나기는 커녕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게다가 이날은 회식이 잡혀 있었다. 남자 때문에 마련된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도중에 나갈 작정이다. 기차도 입석으로 예약했다. 그래도 괜찮다. 이번이 아니면 진짜 4년 뒤에나 볼 수 있으니.

여자는 원래 퇴근이 9시다. 그러나 동료에게 일을 부탁하고 서둘러 나왔다. 옷을 갈아입고 화장도 다시 해야 한다. 바쁘다. 하지만 마음을 먹었다.


이번에는 꼭, 한 걸음 더.


기차역에 도착한 여자는 한 걸음씩 다가오는 남자의 모습을 담기 위해 눈을 고정시킨다.

블랙박스 화면에 담긴다.

그 순간, 그의 걸음과 표정, 그리고 뛰고 있는 자신의 심장이 모두 하나로 녹아 든다.


 이 모든 장면을 선명히 기억하고 싶어, 여자는 차 안에서 남자를 바라보며 '여자의 눈'이라는 비공식 카메라로 그의 모습을 또 하나의 기록으로 남긴다.


차에 탄 남자가 놀리듯 말한다.

"우와 차 좋다! . . . 오늘은 차보다 쌤 보는 게 더 기대됐어요."
 여자는 웃으며 핸들을 돌린다. "그렇게 말하니 믿어 줄게요."


 

전사랑.


그들은 오래된 전집에서 여자가 좋아하는 막걸리와 전을 시켰다.

“여기, 모듬전이랑, 막걸리. . .음. . . . 지평으로 하나 주세요.”

 남자는 2년 동안 겪은 삶을 털어놓았다. 회사에 안정된 자리를 버리고 도전 끝에 얻은 해외 근무 기회, 그리고 다사다난했던 일상.
 여자는 대학원을 마치고 여전히 바쁘게 지내면서도, 첼로라는 새로운 취미로 삶을 즐기고 있었다.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두 사람. 그러나 그 차이는 오히려 서로를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했다.

술잔이 오가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여자는 한 병 더 주문하면서 빨대로 마셔야 맛있다며 빨대를 찾았다.

이런 술 주정이 귀엽다.

남자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온 남자는 손에 빨대를 들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이거 ( 요거트를 보이며 )  사 왔어요."

여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웃음이 터졌다.

"이런 거 하나에 이렇게 진심이신가요?"
 "쌤 좋아하시는 거니까. 나, 진지해요. “


술기운에 서로 솔직했다.
 "우리 평생 이렇게 봐요. 일 년에 한 번이든, 몇 년에 한 번이든. 늘 이렇게 로맨틱하게."
 "평생 볼 수 있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에요."

“나, 이제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싶은데, “

남자는 여자를 조심스레 부른다.
 "그대."
 "그대로, 그대로 하세요."


그날의 키스는 우연이 아니었다. 충동적인 것도 아니고,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8년 만의 첫 키스.
 남자는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여전히 여자의 향기를 느끼며 생각한다.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마음이 커지면 어쩌지?'


여자는 키스 후 남자를 바라보며 걱정했다.
 '이 남자, 나에게 완전히 빠졌구나. 떠나는 사람이 이렇게 나를 그리워하면 어쩌지?'

하지만 여자는 알았다. 그날, 그 순간은 이미 마음 깊숙이 간직될 추억이 될 거라는 것을.


몰랐다, 아픔이 될 거라는 것을. . .



2019.02 26 _  인천공항에서

"카톡~"

그대가 선물 준 스타벅스 못찾아서 못 마시고 갑니다. ㅜㅠ

몸 건강히 잘 있고 꼭놀러오세요^^ 보고싶을거임. .. 놀러오시기로 했으니까 꼭 오셔야 함... .



[ 여자의 애정운: 자신의 연인 이외에 접근 하는 이성이 생긴다.  마음이 많이 흔들리겠으나 현재의 연인을 두고 한눈을 팔면 후회할 일이 있을 것이니 마음을 확고히 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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