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이 리모컨을 찾느라 바쁜 세상

CES

by 국화

CES를 아시나.
매년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하이테크놀로지의 집합지이자, 글로벌 CEO들이 모이는 곳.

나는 그곳에 한 번도 초대받은 적이 없다. (받을 리가 없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상이 있다.
부스 안이 아니라, 그냥 그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인텔리해 보이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허세다. 하지만 무해한 허세다.

2026년 1월에 열린 CES의 주제는 Physical AI였다.
몸을 가진 AI, 물리 세계에 개입하는 인공지능.


상무님들 수업에서 빠질 수 없는 단골 키워드다.

AI 이야기는 대개 익숙한 방향으로 흐른다.
편리해진 삶, 사라질 일자리, 산업혁명 때도 했던 그 고민들.
그러다 휴대폰 사업부에 계신 한 상무님과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이 상무님은 전혀 다른 지점을 짚었다.

“문제는요, 어디에 쓰느냐입니다.”

AI가 가전처럼 일상 속으로 들어오면,
수많은 사용자의 요구가 한꺼번에 쏟아진다.

그 결과, 수많은 예외 상황과 사소한 불만을 해결하느라
가장 뛰어난 인력들이 투입된다.

상무님 표현을 빌리면,
천재들이 집안일을 대신 고민하고 있는 셈 이다.

기술적으로 보면 의미 있다.
하지만 과연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도 그럴까.
상무님은 고개를 저었다.

“AI는요, 모두를 만족시키는 가전보다
정말 필요한 곳에 집중될 때 훨씬 큰 변화를 만듭니다.”

노인, 장애인, 도움이 필요한 지역, 의료 현장.
이런 영역은 시장이 크지 않고, 요구도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 상업적으로는 늘 뒤로 밀린다.
하지만 바로 그런 곳이야말로
AI가 들어갈 때 삶의 질이 ‘조금’이 아니라
완전히 달라지는 영역이다.


몇 해 전, 한국의 한 물리학 박사가
‘배변 상태를 분석하는 센서’로 이그노벨상을 받은 적이 있다.
카메라로 색, 형태, 농도 등을 분석해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기술이었다.
기술만 보면 분명 혁신이다.

이 기술이 모든 가정의 화장실에 설치된다면,
건강보다 먼저 프라이버시 문제가 터질 것이다.

그래서 그 기술은 병원이나 요양시설처럼
필요가 분명한 공간에만 쓰이는 쪽이 옳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기능을 늘리는 대신, 목적을 좁히는 선택.
그 집중이 오히려 혁신을 만든다는 논리였다.



반대로, 대중적인 영역에만 집중하면
너무 많은 사용자, 너무 많은 취향,
그리고 너무 많은 에러를 감당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기술은 정교해질지 몰라도,
변화는 작아진다.

“크게 바뀔 필요 없는 영역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TV 채널을 바꾸고 싶은데 리모컨이 없다.
우리는 그 순간, TV 앞으로 걸어가 버튼을 누르면 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대신 소파 밑을 뒤지고, 쿠션을 들추고,
끝내 채널을 바꾸지 못한 채 시간을 써버린다.
조금 불편한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문제조차 아닌 일에 매달리는 셈이다.

“왜 리모컨을 못 찾는가”,
“어떻게 하면 소비자가 더 쉽게 채널을 바꿀 수 있는가”.
그리고 결국, 천재들이 모여
이 바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Physical AI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어디에 몰입할 것인가다.


나는 아직 로봇청소기도, AI 스피커도 없다.
TV도 없다.
혼자 살고, 머리카락은 내가 치우면 되고, 아직은 불편하지 않다.
조금 느린 대신, 덜 노출된 삶을 선택했다.


언젠가 CES에 초대받거나, 근처 어슬렁거릴 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