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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정 Jul 31. 2017

일인분 여행

_들어가는 글

5, 3살이 된 두 아들과 함께 3박 4일 동안 제주도에 머물기 위해 짐을 싸던 날이었다아이들을 먼저 재우고 아내와 나는 대략 한 시간에 걸쳐 아이들의 옷가지와 장난감들심지어 자기 전에 읽어야 하는 그림책들까지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정작 우리 부부가 갈아입을 옷들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지퍼를 닫아보니 28인치 캐리어는 한눈에 봐도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이건 말이 안 돼.”


무겁게 서 있는 캐리어를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나 혼자 반 년 동안 유럽과 아프리카를 돌아다닐 때 갖고 다니던 것보다 더 큰 짐가방이 만들어진다는 건아무리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그때의 난 60L짜리 배낭 하나와 카메라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그걸로 반 년을 살 수 있었는데 이제는 3박 4일에 28인치 캐리어가 필요하게 됐다



아내 역시 우뚝 서 있는 캐리어를 보며 한숨을 내쉬기는 마찬가지였다여행 뿐 아니라 명절이나 집안 대소사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서울의 양가 부모님을 찾아뵙기 위해 먼 길을 떠날 때마다 어떻게든 짐을 줄이기 위해 나보다 더 노력했던 사람이 바로 아내였다.


사실 우리는 둘 다 혼자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당연히 짐도 적었다어디든 배낭이면 그걸로 끝이었다캐리어라는 신식 물건은 결혼과 함께 내 인생에 등장했을 뿐이었다만약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난 남편으로서의 책임감과 부모가 된 심정과 캐리어의 편리함을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몰랐으면 더 가볍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들을 알아버리게 된 것이다젠장.     


난 혼자 떠나는 게 좋다결혼 8년차의 남편이자 두 아들을 둔 아빠의 고백 치고는 이기적으로 들리겠지만원래 여행이란 게 그렇잖은가다른 사람 좋으라고 떠나는 게 아니라 온전히 나의 만족을 위한 일이니까그러니까 난 내 옆에 아무도 없는 여행이 좋다

혼자 떠나면그깟 바퀴 달린 가방에 대해 자기도 모르게 고마워하지 않아도 되고 다섯 살짜리 동행자의 변비에 예민해지지 않아도 무방하며 다음날 일정 따위 신경 쓰지 않고 과음을 해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정말이다


무엇보다 가볍게 움직일 수 있다세상에 28인치 캐리어 따위가 다 뭐란 말인가두어 번 갈아입을 옷이 들어갈 배낭만 있으면 언제든 일주일 쯤 떠날 준비는 끝난 거다얼마나 좋은 시대인가책이고 지도고 아무 필요 없다그저 전화기 한 대만 있으면 되니까 짐을 정말 많이 줄일 수 있다큰 애 그림책과 작은 애 기저귀 따위는 필요도 없는 그런 여행이란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반드시 혼자 여행을 떠나야 하며그래야 인생을 알 수 있다는 복학생 선배가 할 법한 강요를 하려함은 아니다동행자가 있었던 첫 여행인 신혼여행을 시작으로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 역시 꽤 재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kg짜리 배낭을 앞뒤로 맨 것처럼 피곤하긴 하지만낯선 곳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건내가 여행을 다니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고백하거니와그건 중복에서 말복 사이에만 생각나는 콩국수 같은 별미’ 정도일 뿐이지 내 취향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그래서 누구에게나 혼자 여행을 떠나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싶지는 않다여행은 음식과 같아서남들이 아무리 좋다 해도 내 입맛에 별로면 큰 가치가 없는 법이니까.


무엇보다혼자 가는 여행은 조심해야 하는 부분도 많고 신경 써야 하는 것들도 적지 않다세상이 흉흉하다는 말이 사무칠 정도의 시대다 보니 여성 여행자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그리고 무엇보다 혼자라는 무료함과 그 뒤를 따르는 외로움그 뒤에서 번호표를 뽑아들고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고립감 같은 것은 종종 사람을 참 많이도 우울하게 하니까     


특히 밥을 먹을 때면 우울감은 증폭된다혼자라는 것도 서러운데 '혼자니까 안 받아준다'는 음식점을 만나게 되면 무슨 부귀영화를 보자고 혼자 이러고 있나 싶은 맘도 생긴다그러니 혼자 여행을 하며 간난고초 끝에 마주하게 되는 일인분의 밥상에는 혼자라는 글자가 밥 속에 섞여 있거나 국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기도 하다거슬리기도 하고 씹어 삼키기도 애매한 그것하지만자꾸 먹다 보면 그 씁쓸하면서도 짭짤한 맛이 괜찮아진다



젓가락도 안 가는데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기본반찬 없이그저 따뜻한 밥에 뜨거운 국물 그리고 그것만 있어도 그만이겠다 싶은 순간도 있다외롭기 싫어 맘이 내키지 않는 누군가와 동행을 하는 게 아니라그다지 예쁘거나 멋지진 않지만 어쨌든 꾸역꾸역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나에게 집중하고 싶다는 맘이 들 때도 있다     


이 연재가 그런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되길 바란다이제 막 처음 한 사람만을 위한일인분 여행을 하려는 누군가를 위한 책이다 보니 우선은 유명한 곳 위주로 추천 여행지를 추렸다경험이 좀 더 쌓이다 보면 어떤 방법으로 움직이는 게 좋을지 무엇을 하는 게 나을지 가늠이 되겠지만그건 말 그대로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니 우선은 입문용 여행을 떠나는 데에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아울러 아직 완전한 준비가 되진 않았지만비단 결혼과 육아 때문만이 아니라어느 순간 불어나버린 삶과 생활의 무게와 부피 때문에 힘에 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가능하다면 지금 당장아주 잠시만이라도 혼자가 될 수 있는 계기이자 변명의 역할을 이 책이 해주면 더 할 나위 없이 고마운 일이겠다.     


음식과 식당을 고르는 데에는 여행지의 특색을 담고 있는지가 기준이 되었다워낙 프랜차이즈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데다 사람들의 입맛까지 빠른 속도로 표준화가 진행되고 있어 특색이 있는 여행지의 음식을 찾는 일은 점점 쉽지 않은 탐험이 되고 있다그럼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집들은 존재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식성과 입맛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기에 내가 추천하는 메뉴가 모두의 입맛에 맞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다만맛에 대한 묘사를 최대한 자세하게 할 작정이다그것을 보고 자신의 기호에 비추어 도전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럼 이제 다음 페이지부터 시작되는 메뉴를 잘 살펴보아주길 바란다여럿이 즐겨도 좋지만 혼자라면 더 좋은 것들로 채워 넣었다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말고그저 마음이 가는 것을 고르면 된다. ‘나의 선택이 가장 존중받는 여정의 시작이다부디즐겁고 맛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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