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먼저 떠난 3박 4일 여행(8)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닌

by 정환정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오후 2시쯤 제주공항에 도착하는 날. 나는 미리 공항에 나가 있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나 혼자 다른 무언가를 해볼까 싶었지만, 오고 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어떻게 해도 빠듯한 데다 짐까지 딸려 있으니 공항이 제일 편하겠다 판단했다. 오전의 남는 시간은 어제 방문한 한의원에서 보내기로 했다.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침 치료의 효과가 상당하다는 건 2, 3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의 경험으로 골수에 새겨넣은 바 있다.

나 혼자 제주에 있던 마지막 날 오전. 아침은 맥모닝으로 해결하고 곧바로 한의원으로 향했다. 원장과 직원들은 반갑게 맞아줬다. 나 역시 편안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어제와 같은 프로토콜의 치료를 받았다. 확실히 어깨가 더 가벼워졌다. 사흘 정도만 더 침을 맞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캐리어를 잠깐 한의원에 부탁한 후 근처 순대국집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깔끔한 외관과 달리 꼬릿한 향과 쩍쩍 달라붙는 국물이 매력적인 곳이었다.

버스에 올라 캐리어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섰다. 공항까지는 길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흔들림 역시 적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공항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저 구경이었다. 입국장을 통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사람을 구경하고 전망대에 가서 활주로를 오르내리는 비행기들을 구경했다. 그 비행기들의 사진들을 찍기도 했다.

IMG_0747.jpg 오랜만에 방문한 '창이 큰 제주호텔'에 아이들은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나 역시 아이들의 그런 모습이 반가웠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공항에서 배회하다 아내와 아이들을 만났다. 혼자 머문 제주에서의 3박 4일이 마무리되던 시점이었다. 첫날엔 숙소에서 짐을 풀었고, 이튿날엔 온종일 걸으며 통증에 시달렸다. 사흘째에는 한의원과 정형외과에서 하루를 보냈으며 마지막 날 오전은, 전날 찾았던 한의원과 생경한 순대국으로 마무리됐다.

무척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3박 4일이었지만, 내게는 오랜만에 천천히 흐르는 시간들이었다. 물론 가족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던 건 아니었지만, 혼자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다. 특히 아팠을 때 그러했다.

통증은 많은 것을 알려준다. 움직여야 할 때와 멈추어야 할 때를 명확히 경고한다. 멈추었을 때 해야 할 일, 움직임일 때의 속도와 방향도 통증의 가르침 속에 담겨 있다. 아내와 아이들 없이 나흘이나 먼저 제주에 가 있는 기간의 절반 이상은 아픈 다리와 함께 지내야 했지만, 그래서 편안하기도 했다. 목표와 목적이 명료해지는 시간들이었으니까. 다시 가족의 일원이 된 나는, 덕분에 나머지 닷새 동안의 제주 여행을 아쉬움 없이 즐길 수 있었다.

언젠가는 이런 식의 여행을 경험해 보라는 제안을 아내에게 전하기도 했다. 물론 아빠보다 무겁고 끈적할 수밖에 없는 ‘엄마의 책임’ 때문에 제약이 많지만, 그럼에도 꼭 아내가 이런 일정의 여행을 떠나길 바란다. 혼자 있다는 홀가분함과 더불어 발생하는 가족에 대한 죄책감이나 불안 비슷한 감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니까. 너무 아프지만 않다면, 나에게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꽤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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