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먼저 떠난 3박 4일 여행(7)

정형외과에서 보낸 마지막 오후

by 정환정

다리는 어제보다 나아졌다. 걷는 데에 불편함이야 여전했지만 그래도 발을 끌고 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덕분에 정형외과에는 식은땀을 흘리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진료를 받기 위해 최소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하는 우리 동네 정형외과와는 달리 그곳엔 대기 환자가 한 명도 없었다. 덕분에 초진 접수 후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원장실에서의 호출이 울렸다.

아마 오십대 후반 정도 돼 보이는 원장은 내 증상과 통증 발생 시점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는 골반 양쪽을 주먹으로 툭툭 때리며 반응을 살폈다. 난 원장의 주먹이 양쪽 골반에 닿을 때마다 움찔거리며 “아, 아파요”라고 신음했다. 원장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염좌네요, 골반 염좌”라며 내게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골반이 삔 거예요. 뭐, 갑자기 많이 걷거나 갑작스런 움직임이 있어서.”

염좌가 무슨 말인지 모르지는 않지만, 골반도 염좌가 발생할 수 있는 부위라는 건 처음 알았다. 신기해하는 내게 원장은 “빨리 나으려면 체외충격파도 방법”이라 넌지시 제안했고 나는 “여행자보험으로 처리할 예정”이라 답했다. 원장은 “어이구 그럼 괜찮아요”라고 하며 급히 차트에 뭔가를 기록하고는 물리치료실 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어느 지역을 가도 정형외과 물리치료실의 풍경은 비슷하다. 공간의 구조에 따라 침대가 일렬로 배치되었는지 미로 같은 동선을 만들고 있는지의 차이만 있을 뿐. 또 하나, 원장의 처치에도 차이가 발생하긴 한다. 고령층이 많이 찾는 곳에서는 원장이 특히 살갑다. 각종 주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환자와 접촉 횟수와 시간도 많고 그러다 보니 사소한 대화도 늘어난다. 낮은 목소리로 은밀하게 치료실 모두와 공유하게 되는 이야기들. 하지만 병원을 나서면 알코올처럼 휘발되는 목소리들.

매일 같이 오픈런이 이어지는 우리 동네 정형외과의 경우, 침대에 누워 찜질과 물리치료를 끝낸 환자에게 원장이 주사를 놓거나 전기침을 꽂으며 “하나님, 우리 어머니(혹은 아버지) 얼른 낫게 해주시옵소서”라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기도를 하기도 한다. 진심과 영업의 비중이 어느 정도로 섞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치를 받는 고령의 환자들은 “아이구구”하며 좋아하는 게 얇은 커튼 서너 장 너머로도 확연히 느껴질 정도다.


DSC09570.jpg 10년 전, 큰 녀석과의 첫 제주 여행을 앞두고 발생했던 아킬레스건염을 우리 동네 정형외과에서는 단 하루만에 치료하는 '기적'을 행하기도 했다.


제주의 정형외과는 그런 의식이 없었다. 덕분에 긴 수건에 싸여 내 양쪽 골반에 달라붙어 있는 핫팩과 함께 그저 조용한 한때를 보낼 수 있었는데, 서너 칸 옆에서 문득 띠디디딕, 하는 소리와 함께 으으으, 하는 신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 번도 직접 경험한 적은 없지만 그 고통에 대한 묘사는 여러 차례 읽은 바 있는 체외충격파 소리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니까, 환부에 대해 몸 밖에서 충격을 줘 혈류의 속도를 높임으로써 회복을 빠르게 하는 치료법. 다시 말해 일부러 아프게 만든다는 건데, 침술과 크게 다를 게 없지 않나 싶은 치료법이기도 했다. 아무튼 아픈 데를 더 아프게 하니 얼마나 아플까.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기계음과 신음 대신, 생전 처음 가입한 국내 여행용 여행자보험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이번 제주 여행에 앞서 여행자보험에 가입했다. 제주에서의 계획을 세우며 평소보다 오래 걷게 되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과 함께 떠오른 게 여행자보험이었다. 나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언제 어떤 사고를 당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근력은 여전히 비슷할지 몰라도, 나는 전보다 확연히 둔해졌다. 그래서 72세 이후의 사고사는 자연사나 다름없다는 크리스 락의 스탠딩 개그를 내 얘기처럼 받아들이게 됐다.

일반적인 물리치료를 받고 병원을 나섰다. 치료실로 들어서기 전 주사를 맞은 덕분인지, 처방받은 소염진통제 덕분인지 저녁 무렵부터 내 다리는 “어제 문제가 있었다”는 흔적 정도만 남은 상태가 됐다. 여전히 거북함은 남아 있지만 그래도 움직이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저녁은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버거킹 쿠폰으로 먹었다. 노트북으로 이런저런 작업들을 할까 싶었지만, 버거킹엔 콘센트가 구비돼 있지 않았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들고 온 구형 노트북의 배터리 타임은 길지 않았기에 조금 끄적이고 조금 놀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걸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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