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먼저 떠난 3박 4일 여행(6)

고칠 수 없는 것, 고치려 하는 것

by 정환정

정다운 말투로 제주사투리를 섞어 쓰던 젊은 원장은, 아픈 어깨보다 가라앉은 오른쪽 눈꺼풀에 더 관심이 많았다. 스물일곱이던가 여덟이던 해에 걸린 중증근무력증이 여전히 내 몸에 머물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증거. 신경과에서 진단하는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이기에 한의원에서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지만, 사람을 멀쩡해 보이도록 만들어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을 게다.

중증근무력증이 어떤 것인지 20년 경력의 환자로부터 설명을 들은 원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어렵네요”라고 한숨을 쉬고는 어깨의 안부를 물었다. 습관성탈구에 대해서는 35년 경력의 환자가 되어 원장에게 그동안의 경과와 최근의 변화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원장은, 이번엔 고개를 끄덕이며 “근육을 키우는 게 좋습니다”라고 조언했다.

나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라 답하며 고개를 끄덕인 후 원장이 안내한 침구실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누울 침대에는 갈아입을 헐렁한 바지가 놓여 있었다. 다리 아프다는 얘기는 안 했는데? 잠깐 멈칫하는 사이 직원이 와 설명했다. 이곳 원장은 환부에 침을 놓지 않고 팔다리에 침을 놓는다는 얘기였다. 아아 그런 곳이 있지. 내심 아쉽기도 했다. 아픈 데에 침이 들어가며 전해지는 어떤 쾌감 같은 것을 기대했으니까.

그런 아쉬움은 족히 열다섯 개는 됨직한 유리 부항으로 해소됐다. 이십 분의 물리치료 이후, 맑게 달그락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오는 트롤리 소리가 반가웠다. 종종 플라스틱 부항을 사용하는 곳이 있지만 그 흡착력은 유리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다만 관리에 어려움이 따르다 보니 플라스틱 부항에 대한 선호가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 내가 어깨를 드러내놓고 엎드려 있는 한의원에서는 유리 부항을 사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알코올 불꽃으로 진공을 만들어 내 날갯죽지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세상에 이 오소독스라니!

좋은 한의원을 선택했다는 안도감에 온몸이 이완되는 느낌이 들었다. 오른쪽 팔다리에 침을 놓는 원장의 손길도 세심하고 정성스러웠다. 침 하나를 놓을 때마다 내 상태를 묻는 모습에서 어쩐지 안도감이 생겼다. 여행지에서의 하루를 치료에 사용하기로 한 결정이 옳았다는 새삼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침을 꽂은 채 이십 분을 누워 있었다. 무척 편했다. 여행까지 와서 병원에 누워 있는 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아니냐고? 그게 일반적인 생각임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돈 들여 시간 들여 낯선 곳에 왔으면 하나라도 더 즐겁고 아름다운 경험을 해야겠다 생각하는 게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낯선 병원에서의 치료 역시 여행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건 오랜 출장 경험에 기인한다. 일 때문에 이곳저곳을 많이 다녀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목적지 혹은 예정보다 일찍 끝난 업무로 인해 시간이 비었을 때 할 수 있는 몇 가지 선택 중 하나는 한의원에 누워 있는 일이다. 특히 장거리 운전을 많이 하는 사람은 누구든 어깨와 허리에 고질병을 안고 있기 마련이다. 1만5천 원 내외의 비용으로 1시간 안팎 동안 찜질, 저주파 마사지, 침, 부항으로 이어지는 코스로 그 고질병을 돌보면, 돌아가는 길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 마련이다.


Screenshot 2026-02-18 at 15-28-33 Instagram.png 6170.4km. 한창 출장을 많이 다니던 때의 한 달 주행거리다.


그런 이유로, 나는 전국의 많은 한의원 침대에 누워 많은 한의사들의 손길에 몸을 맡겨왔다. 낯선 침대에 가만히 누워 그 지역 토박이로 추정되는 오랜 단골과 한의사 사이의 이런저런 대화를 경청하기도 했다. 농사를 좀 줄여야 한다는 타박이나 자식들 일에 너무 신경 써서 그런다는 안타까운 진단을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된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런 순간들이 내심 좋았다. 생경하지만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그 지역의 커뮤니티 속으로 녹아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환자를 대하는 한의사들의 화법이나 한의원 분위기가 지역마다 다른 것도 재미있었다. 특히 시가 아닌 군 단위 한의원인 경우는 더더욱 그러했다. 가끔은 환자의 사적 영역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진찰·치료 공간을 경험하게 될 때도 있지만, 그들이 나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크게 불편하지 않다.

침을 모두 뽑고 나니 몸이 나른해졌다. 온전치 못한 다리로 내내 걸었던 다음날이었으니 당연한 일. 하지만 아직 본론이 남았다. 그 온전치 못한 다리의 상태를 살펴야 했다. 이상하게 중국 젊은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인근 중국집에서 쟁반짜장과 사천탕수육을 1만4천원에 사먹은 후 이번엔 정형외과를 찾아 나섰다. 물론 걸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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