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고요히 적는다.
작년 늦가을 수북이 쌓인 노란 은행나무 가로수낙엽이
이쁘다 못해 탐스럽다. 다른 때였으면 만추의 풍경을 마음껏 누리며 느긋하게 걸었을 것이다.
그날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미처 대비를 못한 얇은 옷차림에 냉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가기 위해 잰걸음으로 낙엽 위를 걸었다. 노란 융단 같은 푹신한 낙엽 밑에 뭐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그런데 갑자기 몸이 기우뚱해졌다 어~어~하면서 중심을 잡지 못해 결국 꽈당 왼쪽으로 넘어졌다.
일어나 보니 낙엽 밑에 홍시가 있었다. 주위에 감나무는 없다.
누가 길 가다가 홍시를 떨어뜨렸나 보다. 이 정도면 길 가다 새똥을 맞을 확률정도 아닌가?
집에 오니 왼손이 심상치가 않다. 시퍼렇게 멍들고 퉁퉁 붓기시작했다. 엄지 손가락을 통증 때문에 펼 수가 없다.
병원을 가서 사진을 찍어봤다. 다행히 골절상은 아닌데
인대가 늘어났다고 한다. 한 달 정도 보호대를 하고 손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했다.
골절이 아니라 다행이고, 오른손이 아니라 그나마 왼손을 다쳐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한 달 정도면 나을 거라 생각했던 손가락이 석 달 가까이 보호대를 해도 완전히 낫지 않았다.
다른 병원에 가서 사진도 다시 찍어보았다. 결과는 똑같았다.
인대 늘어났는 게 이렇게 오래 낫지 않을 줄 몰랐다.
10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직 무거운 물건을 들 때면 왼쪽 엄지손가락이 불편하다.
상처는 차츰 낫겠지만 마음에 남은 것은 다른 생각이었다.
인생길을 가는 데도 발 밑에 뭐가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겉보기에 평탄해 보이는 길에도, 그 속에 숨어 있는 위험이 있다는 사실. 인생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늘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안심하며 걷는다. 하지만 낙엽 아래 홍시처럼, 삶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변수와 함정을 품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삶의 여러 고비도 그러했다. 번듯해 보이는 선택이 어느 순간 나를 넘어뜨리기도 했고, 사소한 부주의가 큰 아픔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왜 이것 하나를 보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 미끄러짐이 내 삶을 돌아보게 하고, 또 다른 길을 찾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낙엽 밑에 홍시가 있다는 사실을 안 지금은, 나는 길을 걸을 때 한 번 더 살펴본다. 삶도 그렇다. 눈앞의 화려한 풍경만 좇지 않고, 그 이면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작은 경계심이 내 발걸음을 더 안전하게 하고,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혹시 당신도 낙엽 속 홍시 같은 순간에 미끄러져 본 적이 있는가?
그 아픔 속에서 당신은 무엇을 배우고, 어떤 길을 다시 걷게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