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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ght Nov 04. 2015

서울 깍쟁이

소소한 자기고백 하나

"그거 서울 깍쟁이잖아요." 선생님이 대답했다. 자기도 그렇다며 아는 언니가 알려준 단어라며 웃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은연중에 자기도 그런 피해를 받고 싶지 않은 사람. 그녀는 서울 깍쟁이를 그렇게 정의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단어를 한번 더 읊조렸다.


욕심이 많은 아이 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퉁퉁한 덩치에 목소리까지 컸다. 반에서 제법 공부도 잘 한다는 칭찬도 몇 번 들었다. 꽤나 안하무인이었을 태도는 지금 생각해도 썩 호감형은 아니었다. 몇 해가 지났을까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무슨 이유였을까. 반 친구들과 말 한마디라도 섞어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쉬는 시간이면 농구를 하고, 그렇게 싫어했던 축구는 예비선수로 응원을 했다. 꽤 사교적인 친구로 1학년을 마쳤다. 


나이스 한 사람. 그 후 대학교 팀플, 동아리 어떤 집단에서 '나이스'함을 견지하려고 노력했다. 일을 더 맡더라도 모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 더 의욕적으로 행동했다. 혹시라도 예전 모습이 드러날까 일부러 웃고 파이팅을 외쳤다. 인성 바른 후배, 친절한 오빠, 리더십 있는 형 같은 호칭이 따라붙었다. 기분이 좋았고 더 힘을 냈다. 거짓은 아니었다. 여러 모습 중 가장 사회친화적인 면이 두드러진  것뿐이었다.


가끔 예민한 몇몇이 술자리에서 말했다. 오빠는 굉장히 친절하고 좋고, 진심 가득한 사람인데 항상 젠틀 한 모습만 보여줘서 잘 모르겠다고. 그럴 때마다 웃으며 넘겼지만 스스로를 곱씹었다. 나이스 가면이 붙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화'를 느끼지 않는 성자가 된 것인지. 아니면 좋은 사람이라는 사회적 평판을 잡기 위한 무의식인지.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던 그 즈음, '서울 깍쟁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일견 타당했고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대부분 사람 그렇지 않아요? 다 쿨하면서 멋있어 보이고 싶어 하죠. 사람마다 그걸 얼마큼 세련되게 표현하는가의 차이일 뿐. 사람들 은근히 다 비슷해요." 내 짧은 고백에 선생님은 말했다. 아무리 쿨한 사람이라도 그렇다며 웃으며 루쏘 원두 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몇 년이 지난 뒤 지금도 명확한 답은 얻지 못했다. 다만 조금 넉넉하고 유연한 깍쟁이, 그런 의미를 가진 사람이 되려면 얼마나 지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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