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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ght Jan 13. 2016

안자이 미즈마루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

마을 도서관에 가면 꼭 신간 코너를 훑어본다. 갓 나온 책을 남보다 먼저 읽는다는 우월감인지 아니면 지식욕인지 그냥 지나치면 왠지 섭섭하다. 선택은  그때마다 다르지만 과정은 비슷하다. 제목과 겉표지를 살펴보고 목차를 본다. 페이지를 넘기며 스캔하다 보면 대충 각이 나온다. 안자이 미즈마루 (2015, 씨네21북스)를 그렇게 만났다.


안자이 미즈마루는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다. 2014년 고인이 된 그는 1981년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표지작업을 시작으로 30년 동안 같이 일을 해왔다. 하루키의 무명시절부터 알고 지냈다고 하니 사회에서 만난 친구 치고는 우애가 깊은 것 같다. 예술대에서 공부를 마치고 미국 유학 및 광고회사 덴쓰를 거쳐 작화 작업을 하는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안자이 미즈마루는 달리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그렸다. 출처 일본 잡지 'BRUTUS'


무라카미 하루키와 작업이라니 난해할 것 같지만 실상은 단순하다. 달리는 사람 가운데  HARUKI라고 쓴 걸 보니 하루키가 틀림없다. (마리텔에서 만화가 이말년이 서유리라 지칭하고 이마에 새긴 '낙인'이 떠오른다) 한 번은 하루키가 길을 걷는데 많은 시민이 자신을 알아봤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미즈마루 씨가 하루키 씨를 잘 알려주잖아요." 란 답변에 자신이 이렇게 단순하게 생긴지 깨달았다고 한 일화가 있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작업 원칙엔 몇 가지가 있다. 해가 지면 일을 하지 않기, 작업을 시작하면 온전히 작업에만 몰두하기 (전화도 받지 않는다), 사진을 보지 않고 머리가 기억하는 이미지를 그리기, 같은 그림은 두 번 그리지 않기 등이다. 해가 지면 술을 마셔야 하고 그림 혹은 일러스트레이트는 자기만의 느낌으로 표현해야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동 면발 하나도 장인정신이 깃든 일본 사회에서 그는 대충 놀면서 만든듯한 결과물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열심히 하니 자기 같은 사람도 필요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 조차도 1년에 딱 3일만 온전히 쉬는 프로 중의 프로다)


책은 그의 작업과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대담, 추모글 등이 실렸다. 카페 혹은 지하철에서 복잡한 생각 없이 그림만 봐도 괜찮다. 간결하고 투박하고 정겹다. 그림 外 미니멀한 일러스트가 많아 디자이너들이 봐도 좋은 작품이 많다. 마음을 다해 대충 그렸다는 말은 이런게 아닐까?


안자이 미즈마루 (1942~2014)



중국행 슬로보트 (1983)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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