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길고양이를 보면 몸을 뉘일곳은 있는지 먹이는 어떻게 구하는지 안쓰러웠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을 들어서면 맞아주는 태양이를 보면 아까 본 녀석이 좀 더 오래 생각났다. 차가움과 따뜻함, 야생과 안락 대조되는 몇 가지 단어가 잠깐 입에 맴돌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네가 살고있는 삶은 진짜 야생이구나. 도시속의 진짜 야생의 삶에 대한 이야기나 써볼까. 몇가지 단어만 적었을 뿐 10분전의 안타까움은 현관문에 들어서는 순간 금방 잊혀졌다.
남편이 되었고 곧 아빠가 되었다. 신생아실로 들어가는 인큐베이터안에서 3분남짓 짧은 첫만남이, 아침 수유부터 퇴근 후 동화책 읽어주기까지 길어졌다. 자다가 분유를 게워낼까, 땀을 많이 흘려 감기가 오지 않을까, 뒤집다가 매트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까. 분유 게워내는것만 보아도 호들갑을 떠는 게 일상이 되었다. 2단계 기저귀에서 3단계로, 분유에서 쌀미음으로, 점점 짧아지는 내복을 보면서 아이가 크는게 느껴진다. 나를 보면 웃는 입꼬리만 보아도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차오른다.
이리저리 유투브를 둘러보다 출생신고를 못해 병원에도 갈 수 없는 아이가 나왔다. 가명처리된 아이는 아빠와 고시원에서 단 둘이 산다고 했다. 열이 40도 가까이 올라도 병원에 갈 수가 없다. 자세한 연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법적으로 출생등록이 안되 그냥 달랬다고 한다. 몸이 클수록 옹알이도 커지고 그만큼 떼쓰는 것도 느는데 고시원은 좁고 방음에 약하다. 영상 말미에 후원을 바라는 문구가 올라왔고 아내에게 영상을 보여줬다. 신한카드를 꺼내 후원결제를 하며 안방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보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문득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오는 길에 본 고양이가 떠올랐다.
아이가 없었다면 넘겼을 영상이었다. 기부나 선행은 머릿속에 있는 정의로움이었지 실제로 지갑을 꺼낸적은 없었다. 울음이 전부인 아가가 울지 못하고, 열이 나면 어쩌면 최악의 경우 코로나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병원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고 처참했다. 커피 3잔값이지만 클릭 몇번으로 기저귀라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고시원보다는 좀 더 나은 환경으로 갈 수 있을지도. 7년전 고양이는 지나쳤지만 이번만큼은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부모라는 연결고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