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상처 받지 않기 위해 더욱더 나를 철옹성에 가두었다

by 치유 컴패니언

“Let it go∼, Let it go∼”라는 노래가 내 귀에 쟁쟁하게 남아있다. 영화 ‘겨울왕국 1’의 주제가다. 주인공인 엘사가 외치는 자기 고백이다. 이제부터 ‘나는 더는 참지 않아’ ‘나는 다 내려놓을 테야’라고 자신에게 다짐하면서 부르는 노래다. 엘사는 아직 어린애지만 장차 왕국의 여왕이 될 후계자다. 엘사는 자라면서 부모님과 자기만 아는 말하지 못할 비밀을 감추고 산다. 심지어 같이 사는 여동생 안나도 모르게 한다. 엘사가 점차 나이가 들수록 그 비밀을 감추는 것이 힘들어졌다. 부모님은 엘사의 비밀을 백성들이 아는 것이 두려웠다. 특히 주변 나라에서 왕국의 힘을 무너뜨리려는 빌미가 되지 않을까 염려했다. 부모님은 결국 왕국의 성문을 닫아버리고 출입을 통제했다. 동생인 안나도 언니를 볼 수 없었다.


엘사가 숨기고 있던 비밀은 통제할 수 없는 두려운 힘이었다. 엘사의 손이 닿는 곳이면 모두 얼어붙어버리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엘사도 부모님도 놀라 당황한다. 엘사는 특수한 장갑을 끼게 된다. 그 장갑을 끼고 만지면 그런 힘이 나오지 않는다. 외부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장갑을 낀 채 생활하는 엘사는 성인이 된다. 드디어 여왕의 자리에 오르는 날이다. 닫았던 성문이 열리고 백성들과 주변 나라에서 여왕 즉위식을 보러 왔다. 동생 안나의 당차고 솔직하면서 한편으로 예의를 모르는 철없는 요구에 화를 낸다. 동생과 붙잡고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 엘사의 장갑이 벗겨진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엘사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른다. 엘사의 손이 닿은 곳은 모두 얼음으로 변한다. 왕국 전체가 겨울로 변해버렸다.


엘사는 자신의 비밀이 들통난 것을 괴로워하면서 왕국을 나와 산속으로 달아난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산속 전체를 얼음 궁전으로 만들어버린다. 나의 기쁨에 앞서 상대방의 기쁨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엘사를 결국 구해낸다. 엘사는 동생 안나가 엘사 자신을 구하고 얼어붙어 죽어가는 것을 본다. 그 순간 엘사는 동생 안나의 얼어붙은 몸을 부여잡고 고함친다. 마음속에 꽁꽁 묶어두었던 감정의 고리를 풀어버리면서. 동생에 대한 고마움, 여왕 역할을 하기 위해 억눌러야 했던 감정들, 비밀을 감추면서 생긴 강박감 등을 모두 내뱉는다. 그러는 중에 동생 안나의 얼어붙었던 몸이 녹으면서 살아난다.


이제 엘사는 자신의 비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백성들을 위해 지금까지 숨겨왔던 비밀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사용한다. 백성들이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된다. 백성들은 엘사가 들킬까 봐 두려워했던 비밀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었다. 엘사도 자신의 내면에 흐르는 감정을 거부하지 않고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 영화는 마음의 감옥에 스스로 갇혀버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스스로 만든 마음의 감옥을 벗어나는 과정도 보여준다. 심리적으로 굳어버리면 몸도 긴장이 된다. 딱딱해진다. ‘나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역할 놀이에 빠질수록 감추는 것은 많아지고, 주변 평판에 예민하게 된다.


“피자를 왜 먹어?”“애들에게 우리나라 파전을 먹여야지!”‘우리나라 파전이 있는데도 외국에서 들어온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려고 한다’고 아내에게 성질을 내던 내 모습이다. 아내는 내가 있을 때에는 피자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내가 출근하고 없으면 아내와 아이들은 피자를 먹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내가 40대 초반에 아프기 전의 일이다. 아내와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했다는 것을 아프고 나서야 알았다. 만만한 가족들에게 내가 만든 기준을 지키라고 강요했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화를 냈다. 내 권위가 서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피자의 맛을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가족들과 함께 즐겨 먹고 있다. 내 마음속의 얼음 감옥을 녹인 다음부터 참 많이 바뀌었다.


나는 결혼하기 전에 카레를 먹어본 적이 없다. 신혼여행 다녀온 후 이틀째로 기억한다. 퇴근하고 보금자리인 지하 셋방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맡아보지 못한 냄새가 솔솔 났다. 새색시가 앞치마를 하고 정성스레 음식을 하고 있었다. 조금 뒤에 아내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밥상 위에는 수놓은 밥상 보자기가 씌워져 있었다. 아내가 보자기를 열었다. 노랗게 만든 죽 같은 것이 밥에 얹혀 있었다. 나는 자동적으로 반응했다. 밥상을 아내 앞으로 밀어버렸다. 그리고 “이게 뭐냐고 이게 밥이냐고, 나는 안 먹어요”라는 말을 내뱉었다. 아내는 말없이 밥상을 가져나갔다. 밥을 다시 해오겠다고 했다. 한 시간 뒤에 밥과 된장국을 가져왔다. 나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밥을 먹었다. 그때는 아내로부터 어떤 말도 듣지 않았다.


당연한 일로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 기억조차 못 하고 있다가 내가 죽을 만큼 아프고 난 후에야 알았다. “내가 그때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내는 왜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일어났다. “그때 일 기억나는가?”라고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내는 새삼스레 왜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느냐고 했다. 내가 “ 당신에게 정말 못된 짓을 해서 용서를 구하려고…” 그 순간 아내가 울먹거렸다. 한 참 만에 그때 겪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음식 솜씨를 보이고 싶어 카레 밥을 만들었다고 했다. 오후부터 준비해서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카레 밥상을 들고 방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밥상을 밀어버릴 때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이게 밥이요?’라고 한 말에 할 말을 잃었다고 했다. 밥상을 들고나가서 밥을 다시 하면서 혼자 울었다고 했다. 다음날 점심, 또 다음 날 점심에도 울먹이면서 혼자서 카레밥을 먹었다고 했다. 다시는 카레밥을 하기 싫었다고 했다. 그땐 내가 왜 그랬는지 몰랐다. ‘밥은 매끼 국이나 된장찌개가 있어야 한다’고 나름 기준을 세워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하게 생긴 노랗게 뒤덮인 카레밥을 보면서 정성 없이 밥을 했다고 생각했었다. 이게 어떤 음식인지 먼저 물어보지도 않았다. 새색시에게 ‘음식 만든다고 고생했네’라는 드라마에서 보는 알콩달콩한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가 정한 기준에 맞지 않으면 성의가 없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여 있었다. 나만의 얼음 궁전에서 살고 있었다.


이런 어리석음이 얼마나 나 자신을 힘들게 했는지 잘 몰랐다. 아프기 전까지 그것을 알지 못했다. 어리석음이 그것이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모르고 그냥 말하고 행동했다. 어릴 적부터 자라면서 마음속에 쌓아온 기준, 잣대, 틀(frame), 고정관념, 선입견 등으로 세상일을 평가했다. 기준에 맞지 않으면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난, 험담, 분노를 쏟아냈다. 얼굴은 경직되고 머리는 뜨겁고 가슴은 얼음같이 찬 사람이었다. 알콩달콩하고도 모자랄 결혼 초에 새색시에게 겁도 없이 밥상을 밀어버린 행동을 보라. 얼마나 어리석고 유아적인지! 나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철옹성 안에서 혼자 고함치고 있었다. 세상은 내 기준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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