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고통의 대가로 알게 된 어리석음의 가리개

by 치유 컴패니언

분노는 두 가지 근본 원인에서 비롯된다. ‘사람’을 통제하려는 부질없는 노력과 분노 및 수치심과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통제하려는 헛된 과정에서 생겨난다.

-Georg H. Eifert, Matthew Mckay, John P. Forsyth,《분노의 갑옷을 벗어라》, p.114-


지금 돌아보면 어리석음은 나에게 한 평도 안 되는 마음의 감옥이었다. 어리석음의 감옥에 갇히면 전체를 보지 못한다. 내 앞에 주어진 과제를 실수 없이 해결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의무감만 있을 뿐이다. 조금만 잘못해도 비난과 질책이 날아든다. 어렸을 적에 나는 어머니로부터 자주 질책을 받았다. 질책을 받는 순간 힘이 빠지고 하던 일을 내던지고 싶었다. 질책을 받고 나면 청개구리처럼 더 엉망으로 해버렸다. 또 날 선 질책이 날아왔다. 어머니가 시키는 일은 처음부터 재미가 없었다.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질책만 받았기 때문이다. 엉망이 된 기분과 감정, 폭발하고 싶은 생각들이 뒤엉켜 몸과 마음에 기억으로 남았다. 그때는 몰랐다. 어머니도 일이 고단하셨다는 것을. 어머니 당신의 어릴 적 아픔이 소화되지 못해 나오는 속 트림이라는 것을.


나는 일을 하는 중간에 내가 수긍하지 못하는 간섭을 받는 것이 그렇게 싫었다. 일을 맡으면 스스로 일의 본질과 의미를 만들면서 완벽하게 마무리하려고 했다. 결과를 평가받을 때 인정받고 싶었다. 이런 경향은 내 마음의 흐름을 어느 정도 알아차리는 지금도 수시로 찾아온다. 부정적 평가를 들을 때 나 자신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조이고 복부가 팽팽해졌다. 일에 대한 평가는 평가하는 사람의 관점인데도 말이다. 어릴 적 상처 경험은 이후 삶에서 나 자신의 생존을 위한 자기 보호 에너지를 만들었다. 오직 살기 위해 싸우고 달아나고 숨는 데 에너지를 썼다. 사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는 에너지가 메말랐다. 머릿속 생각으로는 즐거움과 행복이라고 해석했지만 몸과 마음으로 온전히 느낀 적이 없었다.


어리석다는 것은내가 하는 생각이나 행동은 언제나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좀 참으면 상대나 세상이 내 노력과 성의에 보답하겠지’하는 착각에 빠진 상태이다. 내 마음속에‘~해야 한다.’,‘~해서는 안 된다.’와 같은 기준이 만들어진다. 이것은 순수한 바람이 아니다. 상대와 세상에 대해 강제로 요구하면서 조종·통제하겠다는 선전포고다. 나의 일방적인 주장, 이론, 개념, 관념, 신념, 규정, 규범, 도덕적 잣대이다. 나는‘어리석음’에게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핸들을 넘겨주었다. 오히려 처음부터 그 핸들은 내가 잡고 있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다. 어리석음에 빠져있으면 내가 왜 분노의 감정에 휘둘리는지 모른다. 그냥 화가 나고 마음에 들지 않고 응징하고 싶은 충동만 올라온다.


분노는 부딪히는 일이나 돌아가는 상황이 내가 설정한 잣대에 어긋날 때마다 경험된다. 상대방이나 상황이 내가 만든 원칙과 기준에 맞지 않으면 정당하지 못하다고 평가한다. 편법으로 불공정하게 해서 이득을 보거나 돈을 낭비한다고 단정한다.‘자기 사업이라면 저렇게 결정하고 고집을 부릴까?’라고 생각도 한다. 상대가‘늘 무난한 사람, 늘 타협하는 사람, 갈등을 잘 조정하는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처세술인가?’라는 생각에 다다르면, 분노와 혐오감이 확 끓어오른다. 이런 잣대 기준은 하루아침에 뚝딱 마음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어릴 적부터 내가 차곡차곡 쌓아온 나의 생존 기술이다. 나에게 매우 절친한 친구이고 편안함을 주는 자동 조종장치이다.


내 아내는 나에게 “당신은 일을 할 때 다른 사람들보다 10년은 앞서간다. 10년 뒤에는 당신이 하고자 했던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더라”라고 말했다. 그랬다.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32년 회사 생활 마지막 해를 맞고 있다. 나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깊은 숙고를 한다. 뜸을 많이 들이는 편이다. 기초 자료부터 근거자료를 찾고 관련 도서를 읽고, 충분히 일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시작한다. 아내는 나에게 “당신 개인 회사도 아닌데 왜 그렇게 신경 쓰느냐고?”,“남들은 전혀 생각도 안 하는데 혼자 앞서서 미리 걱정하고 준비한다고 스트레스받는다.”,“왜 사장도 아니면서 당신이 혼자 다 끌어안고 끙끙대는 게 더 화가 나요!”라고 했다. 나는 아내로부터 이런 조언 아닌 핀잔을 자주 들었다.


나는 일을 하는 것이 어려워서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은 없다. 일을 하는 과정에 관계하는 사람들의 행태가 내가 생각한 원칙과 맞지 않아 힘들었다. 나는 분노의 감정을 발산하지 못했다. 상대방 앞에서 핏대를 세우고 고함을 칠 용기가 없었다. 태어나 자라면서 그런 배짱을 키우지 못했다. 상대방에게 내가 준비하고 고민한 내용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게 힘들었다. 내가 꼭 구걸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런 사람에게 상식적인 것까지 구차하게 설명을 해야 되나?’라는 생각도 올라왔다. 나는 상대방을 비난하고 험담하는 말을 우호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쏟아냈다. 분노의 감정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내 마음속 어딘가에 눌러앉았다. 내 마음속은 부글거리는 에너지로 채워졌다.


나는 일을 할 때 누군가가 반칙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왜 저러지? 본래 취지대로 하면 되는데 왜 비틀어서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하지?”, “개인 욕심이 있나?” 이런저런 추정을 하면서 정당하지 못하고 부당하다고 판단한다. 괜히 화가 난다. 내 옆 동료에게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털어놓으면, “그래야 하는 건 맞는데, 힘이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하는데 어떻게 해, 할 수 없지?”대개 이런 반응을 보인다. 나중에 보면 내가 염려했던 부분이 현실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때는 이미 잘못된 선택을 했던 당사자들은 윗분들의 심기를 잘 헤아린 대가로 승진을 했다. 후임자들은 전임자의 잘못된 선택을 이해하지도 못했다. 새로운 문제인 양 허둥대는 것을 보면 다시 분노의 감정이 끓어올랐다.


일의 본질을 숙고해서 하지 않고 주어진 지시대로만 하는 좀비 같은 사람들이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않고 그냥 현재 갈등을 모면하기 위해 쉬운 선택을 한다. 그것을 보노라면 복부에서부터 팽팽하게 끓어오르는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내가 개인 사업을 하면 지금 하는 일이 내일 일주일 한 달 일 년 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서 할 것이다. 부당하게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응징하고 싶은 생각과 분노 감정이 같이 올라왔다. ‘저렇게도 사는구나? 아니 더 잘 사는구나?’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몇십 년을 죽 지나고 보니 그게 잘 사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내가 맡아서 한 일 중에 80퍼센트 이상은 소신을 지켜서 부끄럼 없이 해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슴을 졸이고 분노의 독을 품어내지 못하고 삼켜버려서 몸과 마음이 아팠던 대가는 치렀지만.

도로에서 깜빡이를 켜지 않고 이리저리 미꾸라지 운전을 하는 사람이나, 뻔한 거짓말로 드러날 사안을 얼굴 표정 한번 변하지 않고 뻔뻔하게 늘어놓는 궤변자들을 보면 가슴에서 천불이 난다. ‘저런 사람들을 그냥 놔두냐?’‘다시는 그런 짓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응징해야 된다.’는 머릿속 지껄임이 시작된다. 직접 응징하고 싶은 충동도 올라온다. 가슴은 뛰고 그냥 화의 감정이 올라온다. 험담과 비난의 말이 나온다. 미꾸라지 같은 그 운전자를 내가 바로 응징을 하면 속이라도 후련해질 것 같다. 그렇게 하기에는 내가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는 것을 알고 포기한다. 속은 부글거린다. 한동안 머릿속에서 쉼 없이 올라오는 욕지거리를 입 밖으로 내뱉는다. 그럴수록 속은 더 답답해지고 기분은 더 나빠진다.


그 운전자는 규정을 어기고 무례한 행동을 했다. 내가 마음속에 지켜야 하는 기준으로 정한 선을 나의 양해도 구하지 않았다. 내가 그 운전자 때문에 방어 운전한다고 얼마나 힘들었는가? ‘저런 사람들 때문에 사고가 난다. 규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올라온다. 내가 정한 기준, 틀을 벗어날 때 부당하고 무례하다는 생각의 갈고리가 분노 감정의 방아쇠를 당긴다. 다시 분노의 감정은 과거에 무례하고 부당한 짓을 했던 사건과 사람들의 기억을 불러온다. 감정과 기억의 닫힌 순환 회로가 연결된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파페츠와 이후 동료들이 발견한 뇌 회로이다. 한 번 이 회로가 돌기 시작하면 추가 외부 자극 없이도 과거 기억을 소환해서 감정 에너지를 키운다.


내가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점점 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이 일을 정당하지 않게 하고 있다고 단정하면 그들을 향해 비난하고 혐오하고 분노했다. 나는 편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응징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내가 의지했던 것은 어릴 적부터 받아들인 생존 기술 정보였다. 자동 내비게이션 프로그램이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가면 안심이고 벗어나면 불안했다. 그런 과정에서 해소하지 못하고 쌓인 감정의 에너지가 빠져나가지 못했다. 나는 붙임성과 처세술이 그렇게 뛰어나지 못했다. 부당하게 지시에 순응하는 사람들과 비교해서 내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들처럼 처세하지 못한 것을 두고 자책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일은 잘했으나 스트레스받지 않고 잘할 수 있는 지혜가 모자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에 심한 고통의 대가를 치렀다. 어리석음의 가리개가 벗겨져야 한다. 속마음 털어놓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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