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 아니던가?

by 치유 컴패니언

마음이 원하면 독기를 품게 되고, 마음이 원하면 사랑을 품는다. 마음이 원하면 진실을 향하고, 마음이 원하면 환상을 쫒는다. 마음이 원하면 우주를 향하고 마음이 원하면 좁은 곳에 머문다. 우리의 오감도 이와 같다. 마음에 의해 움직인다. 우리의 오감은 마음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흘러갈 뿐이다.

-《루미 시집》, 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 p.173).


내가 퇴직하기 5년 전의 일이다. 그 ×과 엮였던 기억을 ‘속마음 털어놓기’로 했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갑자기 그의 안면을 갈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 ×을 만나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를 정도로 적개심이 강하게 일어났다. 명치끝이 꽉 조였다. 배는 팽팽하게 부풀었다. 어금니는 꽉 앙다물었다. 온몸이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내 몸에서 보내는 감각 신호에 주의를 가져갔다. 내 마음의 무대인 의식 공간에 올라오는 충동과 감정을 알아차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온몸에서 보내는 감각을 하나씩 알아차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내 마음의 무대에 올라온 그 ×의 얼굴을 피하지 않고 지긋이 관찰했다.


‘찌든 얼굴이네.’‘아이고, 참 팍삭 늙었네.’‘얼굴에 온갖 욕심 덩어리가 박혀있네.’‘나이 들어 제 버릇 개도 못 준다더니 그 꼴이구나.’‘칠십이 넘어서도 제 욕심에 눈이 어두워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참 안쓰럽다.’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내 마음의 무대에 올라온 이런 생각을 알아차리고 하나씩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계속해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그 ×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처음 만났던 기억 장면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의 표정, 목소리, 분위기, 태도, 동작, 주고받았던 말까지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를 관찰하는 눈빛이었다. ‘의식개혁과 혁신’이라는 냄새나는 칼을 차고 있었다. ‘눈치 빠른 자들은 그가 부임하기 전에 미리 달려가서 그를 알현했다는 소문이 있었지’라는 생각도 올라왔다.


내가 평가받고 판단당하는 느낌이었다. 개혁 또는 저항세력(?)에 대한 정보를 누군가로부터 귀띔을 받고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분위기는 싸늘했다. 그 순간 ‘아하, 벌써 구도가 정해졌구나.’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불안한 감정도 올라왔다. 분노의 감정도 올라왔다. ‘어떤 × 이 앞잡이 노릇을 했나’라는 생각도 올라왔다. 나는 이런 기억 장면을 또렷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이 순간 내 마음의 무대에 올라오는 생각, 느낌, 감정, 감각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씩 있는 그대로 마음속으로 읊어주었다. 내 마음의 무대에 올라오는 것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친절하게 바라보고 읊어주면 언제 내려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졌다.


나는 직장에서 퇴직하기 5년 전에 그 ×으로부터 ‘의식개혁과 혁신’ 대상으로 몰렸었다. 동료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형광조끼를 입고 등에 번호를 붙이고 노역을 당했다. 매일 반성문을 쓰게 했다. 새벽 4시에 인력시장이 열리는 남구로역으로 집합시켜 소감문을 작성하게 했다. ‘정신개조’를 슬로건으로 하는 ㅇㅇ단체의 훈련 프로그램에 강제로 참여시켰다. 나는 모욕감, 모멸감으로 치를 떨었다.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결기를 품었다. 복수할 독을 내 안에 가득 품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얼굴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스트레스와 분노, 적개심으로 인한 안면마비였다. ‘회복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하는 두려움과 불안이 올라왔다. 이미 얼굴 왼쪽이 일그러진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급히 대학병원 신경과와 한방병원, 통증의학과에 모두 달려갔다. 마음이 조급했다. 의학의 도움으로 마비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지만 예전의 얼굴이 아니었다.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다. 나는 내 얼굴을 거울로 볼 때마다 적개심이 끓어올랐다. 나는 꾸준히 속마음 털어놓기를 하면서 마음의 면역력을 키워왔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 × 이 휘두른 칼에 심한 상처를 입고 순간적으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내가 가지고 있던 면역력보다 더 큰 자극을 만났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절박한 마음으로 나를 점검했다. ‘자만하고 있지 않았는지?’‘자존심이 상했는지? 자존감이 상했는지?’‘내가 잃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명예, 지위, 승진, 보상에 대한 상실감인가?’ 마음을 다잡고 매일 ‘속마음 털어놓기’를 했다.


당시 그 ×의 주변인들에 대해서는 나는 연민의 감정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 ×에 대한 기억은 정말 끈끈하게 질척거리면서 올라왔다. 분노와 적개심의 광풍이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퇴직 시기가 가까워진 상태에서 ‘내 명예와 지위를 회복할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좌절감이 올라왔다. ‘내 얼굴을 망친 ×’이라는 생각에 죽이고 싶다는 충동도 올라왔다. 몇 번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래, 이번 기회에 제대로 속마음을 털어내 보자’라고 절박한 의도를 품었다. 내 안에 상처 받아 울고 있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안아주기로 했다. 그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감정과 생각, 감각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듬어주기로 했다. 실컷 눈치 보지 않고 털어놓게 했다. ‘이러면 안 돼, 그 정도는 돼’라는 검열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내 안에 아직도 자라지 못하고 투정을 부리며 울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창피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또한 나의 일부였다. 나는 내 안에 있는 아이가 경험하는 분노와 슬픔의 에너지를 쏟아내기로 했다. 내 안의 아이가 원하는 갈망과 욕구의 에너지를 뽑아내기로 했다. 내 안의 아이와 만나기 위해 나는 생생하게 깨어있기로 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을 알아차리고 내 안의 아이가 겪었을 고통을 부드럽게 감싸 안기로 했다. ‘그렇게 소중한 것을 잃어버려서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났을까?’‘그 × 만 아니었다면 승진도 할 수 있었는데, 이제 기회도 없어져서 얼마나 좌절감이 컸을까?’ 내 안의 아이가 습관적으로 경험하는 잘못되었다는 느낌마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는 마음이 평안하다. 그 ×과 마주했던 기억은 더 또렷하게 저장되어있다. 하지만 그 ×과 관련된 기억에 묻어있던 느낌과 감정, 생각의 에너지는 거의 다 사라지고 없다. 그 사람이 안 됐다는 연민의 마음이 조금씩 올라온다. ‘오죽이나 할 게 없었으면 그런 짓거리로 늦은 나이에 망신살이나 당했을까?’‘무슨 영화를 누리려고 그랬을까?’“그 사람이 다시는 고통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기를 바랍니다.”라는 연민의 문구를 읊어준다. 그 사람의 잘못된 행위가 나에게 심한 상처를 입힌 것은 사실이다. 처음에는 상처에 놀라 몸과 마음이 아팠었다. 극단적으로 그런 자극이 자만하고 있던 나를 다시 되돌아보도록 만들었다. 내 안에 있는 아이와 연결하도록 나를 더 치열하게 이끌었다.


나는 40대 초반에 겪었던 고통을 속마음 털어놓기를 해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깊이 박혀있던 그물들을 관찰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어떤 스트레스도 받아낼 수 있다.’라는 교만(驕慢)의 마음이 남아있었다. 알량한 나의 자존심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무례한 행동을 보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마음속에 아직도 남아있던 그물과 뿌리를 속마음 털어놓기로 찾아서 걷어내기로 했다. 그 사람으로 인해 내가 상처 입었던 흔적은 더 강한 접착제로 수리했다. 상처 부위가 더 단단해졌다. 내가 자존심의 허울을 미련 없이 벗어버리자 나의 자존감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내 마음속에 나타나는 세상이 훨씬 더 넓어 보였다. 나는 지금도 마음속을 털어내고 또 털어내고 있다.


속마음 털어놓기는 내 몸과 마음속에 쌓여있는 풀지 못한 감정, 생각, 감각의 에너지를 풀어내는 것이다. 나의 가면을 벗겨내는 것이다. 남에게 발가벗김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를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내 마음속을 정리·정돈하고 청소하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언어화해서 말을 하거나 쓰기 또는 다른 방법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비난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검열하지 않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친절하게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주는 것이다. 다독거려 주고 감싸주는 것이다. 내 안에 성장을 멈추고 웅크리고 있던 아이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내 안의 본래의 순수한 나와 연결하는 것이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지 않던가? 하나를 잃으면 또 다른 하나가 나타난다. 이제 두려워하지 않고 털어놓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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