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실 후에 오는 감정적인 변동에 익숙하지 않다. 상실 후 어떤 일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것부터, 모든 일에 화가 나고 슬퍼지는 날카로운 신경까지, 다양한 감정이 넓게 줄 서서 기다리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만일 감정적으로 왔다 갔다 하지 못한다면 상실 속에서 평온을 발견할 힘을 결코 얻을 수 없다.(p.59-60).
-《상실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데이비드 캐슬러(2005/2007)-
2020년 12월 31일은 내가 정년퇴직하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마음이 조금 들떴다. 드디어 오늘이 왔구나. 퇴직일이 다가오면서 내가 경험하는 모든 걸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3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던 곳에서 나오는 순간은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회사의 정년퇴직 행사는 없었다. 직원들 얼굴도 보지 못하고 끝냈다. 코로나-19로 모든 행사가 중단되었고 직원들은 모두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을 머리로는 이해한다고 해도 가슴은 여전히 서운하고 허전했다. 오늘 회사에 갈 일이 없었지만,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오랜만에 정장을 입었다. 퇴직 행사에 입고 가려고 준비했던 옷이었다. 머리도 며칠 전에 미용실에서 멋있게 다듬었다.
나는 아내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고 멋있게 퇴직 인사를 하고 싶었다. 아내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말없이 평소처럼 식사를 준비했다. 식사 후 정장을 입고 소파에 앉았다. 7시 30분쯤이었다. 밖으로 나갈 데가 없었다. 아내와 차를 마시면서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게 있었다. 아내도 그런 나를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오전에 직장 동료와 후배들로부터 퇴직 축하(?) 전화를 받았다. 나의 퇴직 인사 글을 읽고 집에서 재택근무하면서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퇴직 10일 전인 12월 20일에 사무실에 혼자 나가서 짐을 정리하면서 사내 메일에 퇴직 인사 글을 남겼었다. 선배들이 퇴직할 때 인사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다음에 퇴직할 때 멋있는 글을 남겨야지’라고 생각했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내가 정말 쓰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나 자신에게 물어봤다. 눈을 감고 지난 시간의 기억을 떠올렸다. 성취, 인정, 실패, 억울, 후회의 기억들이었다. 내 마음속에 상영되는 내가 주인공인 ‘정 ××의 직장 드라마’를 시청했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내가 인정받아 우쭐했던 때도 있었다.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좌절도 했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상사와 속을 끓게 했던 부하의 얼굴도 떠올랐다. 승진에서 뒤처지고 보직에서 밀렸던 기억이 올라올 때는 서운함과 배신감, 적개심의 에너지가 조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 감정에 끌려갈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을 가지려고 남을 뭉개고 먼저 기어 올라가려고들 했는지 그들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퇴직할 시점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직장이라는 갇힌 공간에 있으면 보이지 않았던 것이리라. 한바탕 춤만 춘 것인데. 후회와 아쉬운 마음도 올라왔다. 그 많던 시간을 조금만 더 알차게 사용했더라면, 못할 게 없었을 텐데. 지나고 보니까 나는 그냥 시간을 갉아먹고 있었다. 32년을 다시 시작하라고 하면, 나는 가장 먼저 일과 여가를 위해 내가 몰입하는 시간과 그냥 사는 시간을 나눌 것이다. 그리고 몰입하는 시간에는 체면, 조건 따위의 겉치레는 벗어던지고 마음껏 후회 없이 빠져보고 싶다. 자격증. 취미, 여가, 여행 등 가리지 않고 그냥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싶다. 내 삶의 여유 공간을 만들고 싶다. 간절함으로 매 순간을 살고 싶다. 30년이라는 시간은 흘러갔다. 지금도 시간은 지나가고 있다.
(회사 사내 메일에 올린 퇴직 인사 글)
"제목: 고맙습니다, 감사하고 미안합니다.
12월 31일부로 퇴직하는 정 ××입니다. 우리 회사와 직장 동료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런 말을 전하는 것 자체가 지금 상황에서는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그동안 마음의 준비는 해왔지만, 회사에 반납해야 할 것, 정리해야 할 것이 하나씩 전달되네요. 동아줄보다 더 든든했던 회사의 울타리를 나가야 하는 날이 10 여일 남았습니다. 1989년 4월 1일부로 대강당에서 임용장을 받던 그때 기분으로 대강당에서 퇴직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세상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 퇴직일이 다가올수록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좀 더 동료들과 더 많이 어울리고 웃고 떠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제가 욕심도 부리고 억울하다고 원망했던 적도 있습니다. 저의 그런 마음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분들도 있을 겁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저를 풀어놓아 주시기 바랍니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바깥세상 사회생활은 처음입니다. 두렵고 불안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이제 너무 욕심부리지 않고 저 자신을 재촉하지 않으면서 인생 2막을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코로나-19로 우리 회사가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뻔히 보면서도 힘을 보태드리지 못해 안타깝고 부끄럽습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을 줄 알았는데, 할 말이 그리 많지 않네요. 지금은 그냥 답답하고 담담하고 어리둥절한 느낌입니다. 울적한 기분도 올라오네요.
동료‧후배 님! 모두 몸과 마음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 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 회사, 잠깐 동안 돌부리에 차여 휘청거렸지만 앞으로 더 탄탄해져서 다시는 휘청거리지 않을 거라고 기원합니다. 그동안 저와 제 가족을 책임져 주신 우리 회사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20년 12월 20일. 정 ×× 드림. "
그날 저녁에는 가족들로부터 정년 퇴임‘감사패’를 받았다. 촛불을 켜고 퇴임 축하 글씨가 새겨진 케이크도 받았다. 아들이 읽어주는 감사의 내용을 들으면서 지난 30년 회사생활이 다시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잠시 눈을 감았다. 내 몸과 마음에서 올라오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가족과 회사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의 도움에 대한 감사함도 마음속으로 읊었다. 이런 심정을 밝히면서도 조심스럽고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올라왔다. 요즘 상황에서 취직도 어려운데 정년까지 채우고 퇴직하는 사람의 배부른 소리로 들릴까 봐서다. 이 글은 한 사람이 직장생활이라는 하나의 익숙한 역할을 상실할 때의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이다.
이제 퇴직한 지 두 달이 지나고 있다. 건강보험이 지역가입자로 바뀌었다.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교육을 받았다. 은행에 가서 퇴직연금 신청도 했다. 걸음마를 떼는 아기 같은 마음으로 사회인(人) 신고식을 하나씩 해내고 있다. 앞서 나간 선배들도 같은 심정이었겠지. 그것을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털어놓기는 했는지. 모두 흔들리지 않고 담담히 그냥 잘 살아가는 것 같았다. ‘나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걱정과 불안이 올라왔다. ‘내가 정말 퇴직을 했나 보다’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나의 머리는 이미 퇴직을 인정했는데 가슴은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저 멍멍하다는 느낌뿐이다. 이번에 같이 퇴직한 동료에게 전화했다. 서로 수고했다고 위로하고 격려했다. 진한 동료애를 느꼈다.
나와 연락이 된 사람들은 나에게‘천천히 쉬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다. 나는 아직 딱히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다. 혼자 훌쩍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도 올라왔다가 외롭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올라온다. 코로나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도 나의 이런 상황을 뒷받침하고 있다. SNS에는 퇴직 인생에 대한 글과 동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노후 생활 자금, 건강, 일거리, 부부관계, 인간관계, 여가, 취미까지 전문적 조언을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노후 생활 자금은 불안하고 초조하고 조급 해지는 대상이다. 주택, 자녀 교육, 결혼 등에 들어갈 돈을 생각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일을 해야 한다는 조급증이 올라온다. 100세 시대에 인생 2막이라는 과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아직 살아보지 못해서이다.
내가 퇴직하고 나서 SNS에 올린 퇴직 심정의 글을 썼다. “2020년 12월 31일 퇴직했습니다. 32년이 지났습니다. 믿고 싶지 않은 시간입니다. 내일부터 사회 초년생입니다. 모든 게 낯설고, 잘 적응할지 두려운 마음도 올라옵니다.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지만 파도는 일렁입니다. 32년 동안 제 마음속에 일렁거렸던 파도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또 다른 파도가 오고 가네요. 앞으로도 그러겠죠. 진한 아쉬움도 있습니다. 나름 뿌듯함도 느낍니다. 저 자신이 상처 받아 갈피를 못 잡고 헤맬 때도 있었습니다. 몇 년 동안은 저를 치유하는데 코를 박고 있었습니다. 이후 15년은 저를 지적(知的)으로 성장시켜주신 분들과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하 생략)”여전히 가슴은 먹먹했다. 답답함은 아니었다. 얼떨떨함의 느낌이랄까?
나는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직장의 문을 나섰다. 아쉬움도 후회도 남았다. 앞으로의 삶은 모든 게 낯설고 불안하다. 나는 노후 자금과 주택, 자녀 교육과 결혼 등의 인생 과제를 안고 있다. 한 가지 하고 싶은 것은 분명하다. 나는 나의 깊은 내면을 있는 그대로 나에게 털어놓을 것이다. 매 순간 올라오는 생각, 감정, 기분, 느낌, 기억, 이미지를 알아차릴 것이다. 눈물이 나면 눈물을 맛볼 것이다. 화가 나면 화난 감정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경험할 것이다. 불안한 생각과 감정이 올라오면 피하지 않고 따뜻하고 부드럽게 맞이할 것이다.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충분히 알아차리고 나서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앞으로 나의 인생 후반전은 호기심과 즐거움 뿌듯함 충만함으로 채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