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싸우는 방법을 알려주는 말이 있다.‘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자신과 상대방의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나는 40대 초반에 큰 싸움을 했던 적이 있다. 처음 2년은 나를 잘 알지 못해 내가 위태로웠다. 싸움은 나를 좌천시킨 사람들과 마음속에서 시작했다. 서슬 퍼렀던 시절에 직접 대들어 따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추가 보복을 당할까 두려웠다. 나는 살아남아야 했다. 집단에서 힘 싸움에 밀리면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슬금슬금 거리를 둔다.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동기들에게 전화를 붙들고 넋두리 하소연만 쏟아냈다. 그들은 처음에는 동정심으로 받아주다가 시간이 갈수록 점차 힘들어했다. 내가 전화하는 것이 망설여졌다. 점점 고립되었다.
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는 자존심 때문에 털어놓지 못했다. 못난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서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복수하고 싶었다. 당당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고 말겠다는 마음만 굳어졌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를 잘 보호해왔던 익숙한 전략을 사용했다. 우선은 나를 더 완벽함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그들로부터 추가 보복의 빌미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저들에게 복수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나는 살아남아서 복수하고 싶었다. 지방에서 80평 규모의 사무실에 혼자 근무하면서도 근무태도를 완벽하게 지켰다. 문서도 근거자료까지 검토하고 또 검토해서 이중삼중으로 만들었다.
대부분의 일이 내가 발령받기 전에 근무했던 직원들이 한 일을 정산하는 업무였다. 정산을 하면 할수록 문제가 될 부분이 많았다. 거래 업체는 돈을 더 달라는 문서를 보내왔다. 내가 정산해보니 주지 않아도 될 돈을 주고 근거도 없이 나간 돈이 많았다. 오히려 업체에 준 돈을 일부 돌려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당시에는 업체들이 모두 사기꾼으로 보였다. 더 화가 났다. 이런 부당한 파렴치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대가를 받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응징의 대상이 늘어났다. 업체들은 반발했다. 비용 정산 협의 자체를 거부하고 여러 경로로 회유, 유사 협박이 들어왔다. 내가 여기서 밀리면 끝장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좌천시킨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은근히 즐기면서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적개심이 일어났다. 더 악착같이 집요하게 문서를 만들고 상대방이 꼼작하지 못하도록 자료를 만들고 또 만들었다. 결국은 정산은 내가 정한 방식으로 마무리했다. 이 일은 2년 후에 내가 사법기관에서 실제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이중삼중으로 문서를 만들고 정산을 원칙대로 한 것이 나를 살렸다. 내가 복수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저들이 원하는 것을 내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통쾌했다. 싸움에서 이기는 줄 알았다. 내가 잘하는 방식으로 싸움을 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했다. 온몸이 늘 긴장 상태였다. 얼굴은 굳어졌다. 말수도 줄었다. 집에서도 그렇게 바뀌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내 몸에서 나를 챙겨보라는 신호가 왔다. 배가 아프기 시작하고, 불면증이 생겼다. 잇몸이 녹아내리고 항문에 치열이 생겼다. 부정맥 소견이 나왔다. 대장 결핵 진단까지 받았다. 마음도 같이 무너졌다. 온갖 공포증과 공황상태를 경험했다. 죽을 만큼 아팠다. 화병(속병)이 난 것이다. 나는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분투했다. 복수와 증오의 독을 묻혀 분노의 화살을 쏘고 또 쏘았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던 저들의 의도를 통쾌하게 막았다. 그런데 싸우면 싸울수록 그 화살은 나에게 돌아와 꽂혔다. 아픈 줄 알면서도 계속 쏘아댔다.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결과는 그들은 멀쩡했고 나는 비틀거렸다. 그들 앞에서 허공에 대고 칼춤을 추고 혼자 맥을 못 춘 꼴이 되었다.
이 싸움은 내가 졌다. 이제 나는 내 몸과 마음에 나타난 적들과 싸움을 하는 신세가 되었다. 우스운 상황이다. 이게 무슨 꼴인가? 복수하려고 시작한 싸움인데 상대는 어디로 간데없고 내가 나를 두들겨 패고 있었던 거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 내가 더 싫어졌다. 이 세상은 왜 내 마음 같지 않게 돌아가는가? 못된 짓 한 사람들은 그에 맞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해를 본 사람이 더 힘들어하는 게 정말로 공평한 것인가? 세상에 대한 원망이 솟구쳐 올랐다. 그런 생각을 할수록 몸과 마음은 더 아팠다. 내 몸에 나타난 증상들을 치료하는데 매달렸다. 힘들었기 때문이다. 진단과 검사, 수술, 약을 먹는 것이 힘들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병원에 가서 입원하기도 했다.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을 치료한다고 매달리는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것은 저 멀리 달나라 일 같이 느껴졌다. 그들이 보면 얼마나 비웃을까? 이게 무슨 꼴인가? 일을 원칙대로 해서 뒤탈 없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그게 어떻게 복수하는 일인가? 저들을 한 방 먹였다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까지 되기 전에 싸움을 일단 멈추어야 했다. 멈추고 다른 방식으로 싸웠어야 했다. 내가 건강하고 당당하게 살아있으면서 복수해야 이기는 것이다. 내가 당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내 머릿속의 상대방과 싸우는데 만 빠져 있었다. 늪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너 가만 안 둔다’고 소리치는 꼴이었다. 당시에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나를 코치하고 조언하고 몰아세우는 내가 누구인지 몰랐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도 안 되는 사람 마음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사람 마음속은 그 주인이 잘 알 텐데, 고개를 절레절레! 자신도 잘 모른다고 한다. 남들처럼 그냥 나이 먹으면 직장 구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살면 잘 사는 줄 안다. 그러다가 속이 풀리지 않는 것이 있어 내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돈을 주면서 찾아달라고 한다. 무속인과 역술인을 찾고, 분석가와 전문 상담가를 찾는다. 남에게 내 마음 좀 봐 달라고 하면서도 ‘들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같이 일어난다. 내가 듣고 싶은 것만 잘 들린다.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거울에 비춰주는데도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나만 아는 부끄럽고,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게 드러나면 내 체면이 구겨지기 때문이다. 억울하고 화나는 것이 드러나면 착한 사람으로 살았던 내가 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잘 살아왔다. 아내의 남편으로, 두 아이의 아버지로, 부모님의 아들로, 형제들의 오빠‧형으로, 친구들의 친구로, 회사에서 동료‧후배‧선배로 역할을 잘해왔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어디 그렇게 만만하던가? 휘파람 불면서 걷다가 어느 순간 돌부리에 나가 자빠지기도 한다. 툴툴 털고 일어나 가던 길을 걸어가면 아무 문제도 없다. 다음에는‘앞을 잘 보면서 조심해서 걸어야지’하는 마음을 먹으면 삶의 지혜가 하나 더 생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 데에 문제가 있다.‘누가 이런 곳에 돌멩이를 가져다 놓은 거야?’‘나를 다치게 하려고 일부러 가져다 놓은 거 아니야?’‘이런 짓을 한 사람을 찾아내서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곧바로 그는 손해만 보는 절대로 이기지 못하는 싸움을 시작하라는 지시를 그 자신에게 받는다. 나는 이렇게 지시를 내리는 ‘나’를 지금까지‘진짜 나’인 줄 알고 믿고 따랐다. 그 결과 처음 2년간의 싸움에서 처절한 패배를 당했다. 죽을 만큼 아프게 당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다음 2년간의 두 번째 싸움에서 나는 지지 않았다. 전략을 다시 세웠다. 속마음 털어놓기로 나를 찾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다. 지금까지 나는 태어나 살면서 사회적으로 규정한 역할의‘나’를 믿고 따랐다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내가 익숙하고 편하게 의존하면서 붙잡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진짜 나’를 알고 남을 알면 적어도 사는데 위태롭지는 않다는 것을, 그것이 결국 이기는 것임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