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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유 컴패니언 Dec 05. 2022

고통을 받아들일 때 심리적 성장은 덤으로 온다

 

유기체적 경험에 좀 더 개방적인 사람, 삶의 감각을 알아채는 도구로 자신의 유기체를 믿을 수 있게 발달시키는 사람, 평가의 중심이 자신의 내부에 있다는 것을 수용하는 사람, 삶은 계속 변화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경험에서 새로운 자기 자신을 계속 발견하는 사람, 이것이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과 연관되어 있는 요소들이다.

                                                      -칼 로저스(Carl R. Rogers)-    

 

모멸감! 죽고 싶을 정도로 자신의 존재감이 훼손당하는 느낌과 기분이다. 우월한 조건에 있는 사람이나 조직이 상대적으로 약자인 사람에게 가하는 정신적 상처다. 나이 50이 되면 소위 말해 험한 꼴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믿었던 회사를 나가야 할지 속이 문드러져도 참고 견뎌야 할지 스트레스를 받을 시기다. 자신의 충성과 열정과 젊음의 에너지를 모두 제공했는데(물론 회사는 급여와 심리적 동기 부여 등 대가 지불) 이제 효용가치가 없다고 나가라고 한다. 자발적으로 나갈 의사가 없는 사람에게 다양한 회유와 압박을 가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일한 직장에 대해 자부심이 있다. 회사를 그만둘 때도 회사로부터 명예로운 대우를 받고 물러나고 싶은 것이 직장인의 바람이다.      


직장은 개인적인 감정을 존중해 주는 곳이 아니다. 개인의 정서와 욕구를 챙겨주지 않는다. 성과와 효율을 중요하게 다룬다. 직장인들은 착각을 자주 하곤 한다. 회사의 명함과 신분증이 고 나의 분신이라고 동일시에 빠진다. 회사가 나를 버릴 때쯤이면 그때서야 이게 아닌데라며 알아차린다. 회사와 나는 다른 존재임을 꿈을 깨듯이 머리를 흔들고 정신을 차린다. 회사에서 이제 좀 나가주기를 바라면서 은근히 신호를 줄 때가 있다. 망신을 당하고 물러나느냐 아니면 ‘존버(존나게 버티기 또는 존경받으며 버티기의 SNS상의 비속어)’로 남느냐 자신과의 갈등을 겪는다. 최악의 상황은 같은 50대인데도 누구는 남고 누구는 나가라고 할 때다. 회사 분위기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사내 정치 놀음을 하는 경우이다.  

   

최근 국내의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직장인 인식조사를 했다.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괴롭힘의 경험 비율은 29.6%였다. 괴롭힘의 유형은 모욕과 명예훼손이 19.4%로 가장 많았다. 대처 방법은 주로 참거나 모르는 척(67.7%)하고, 회사를 그만두는(23.6%)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기관이나 상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비율은 6.8%에 불과하고, 33.1%는 필요하지만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극단적 선택을 고민한 비율도 11.5%나 되었다. 사람은 사회적 관계를 통해 자신의 소속감 욕구가 채워진다. 회사 안에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상사나 사장, 그리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사람에 의해 망신을 당하면, 안전의 욕구와 소속감의 욕구가 한순간에 무너진다.      


직원에게 마음에 상처를 입혀서 직원 스스로 회사를 나가도록 유도하는 하나의 수법이다. 희망퇴직, 명예퇴직과 ‘존버’를 고민하게 만든다. ‘세상에 법 없어도 사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는 고지식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50대가 되면 뻔히 모욕을 당하는 줄 알면서도 반항을 하지 못한다. 자녀 교육, 결혼, 부모 부양 등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자금이 필요한 시기다. 이런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잘 대처하지 못하면 막다른 골목에 갇힌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나오거나 ‘존버’를 하면서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자신감도 잃는다. 억울함과 배신감, 서운함, 분노, 불안감의 감정 호르몬이 몸과 마음을 뒤덮는다. 심장과 뇌혈관 등 몸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수면 문제, 공황 등 불안장애를 겪을 수 있다.      


내가 심리 상담을 하면서 만난 50~60대 남자분 중에는 명예퇴직을 한 사실을 배우자에게 숨기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가족에게 말하는 게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한다고 했다. 배우자의 평소 행동으로 봐서 분명히 무책임하다고 비난할 게 뻔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더 꽉 막힌다고 했다. 숨긴다고 숨겨질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버거워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나도 50대 중반에 못된 자들로부터 모멸감을 당하면서 ‘존버’와 명예퇴직을 심각하게 고민을 했던 적이 있다. 명예퇴직을 신청했다가 창피함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다시 번복했다. ‘존버’의 스트레스를 통제하지 못하면 몸과 마음에 고스란히 증상으로 나타난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심리적 면역력이 중요함을 알아차린 기회였다.   

   

내가 50대에 ‘존버’하던 기억을 소환해본다. “어느 날 갑자기 ‘정신 개조’, ‘개혁’과 ‘혁신’ 대상자로 내몰렸다.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작업과 반성문 쓰기에 끌려다녔다. 수모를 당하고 그냥 회사를 떠난 직원들도 많다. 나도 무력감을 느끼며 회사에 대한 애착도 일에 대한 열정도 없어졌다. 더이상 모욕당하지 않으려고 명예퇴직을 신청했다가 번복하는 창피함도 맛보았다. ‘존버’를 선택해서 보직을 받았지만, 못된 사람들의 압박은 집요했다. 보직 받고 일주일 만에 왼쪽 얼굴에 심한 안면마비가 왔다. 얼굴은 일그러지고 왼쪽 입, 눈, 이마, 턱의 모든 근육이 움직이지 않았다. 침을 삼키기도 어려웠다. 말도 어눌해졌다. 병원의 집중 치료와 심리학을 통해 배우고 훈련했던 모든 방법을 활용해서 치유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경험을 지켜보는 훈련을 계속했다. 온몸에 퍼지는 뒤틀림과 속 쓰림, 솟구치는 분노의 감정과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머릿속에서 ‘왜 이런 모욕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느냐’, ‘무슨 미련이 남아서 그러느냐’, ‘회사에 더이상 기대할 게 뭐가 있나?’라는 재잘거림, ‘가만두지 않겠다’라는 생각, ‘고함을 치고 싶다.’라는 충동, 배가 조이고 어깨가 들썩이고 목구멍이 움찔거리는 느낌이 올라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것 또한 그냥 지나가겠지’, ‘못된 사람들의 행동에 내가 그렇게 자동 반응하지 말고 조금 넉넉하게 바라보자.’, ‘그래, 지켜보자. 내가 어디로 가는지 한번 시험해 보자.’, ‘내 선택을 존중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내가 지는 게 당연하지.’라는 내 안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지금은 90% 정도 회복되었다. 힘들다고 느낄 때 왼쪽 얼굴에 약간의 경련이 일어나며 얼얼하다는 느낌이 있는 정도다. 

     

사람은 몸에 근력이 있어야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을 견뎌내고 생존할 수 있다. 또한 몸에 면역력이 있어야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을 예방하고 질병에서 회복할 수 있다. 외부 역경이나 스트레스를 견뎌내고 잘 적응하면서 생존할 수 있으려면 마음도 근력(筋力)과 면역력이 있어야 한다. 심리적 면역력은 외부 충격에 잠시 흔들릴 수는 있지만, 오뚝이처럼 넘어지지 않고 곧바로 중심을 잡고 제자리에 돌아올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마음의 근력이나 심리적 면역력을 심리학, 정신의학, 유아교육 등에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고 부른다. 회복탄력성은 이런 역경과 실패를 맛보면서 밑바닥으로 떨어졌다가 이전보다 더 높이 튀어 오를 수 있는 마음의 힘이다.      


회복탄력성은 타고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삶의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다양한 역경과 시련, 스트레스, 그리고 좌절과 실패를 통해 길러지기도 한다. 여러 연구에서는 회복탄력성을 훈련을 통해 기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트레스나 시련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면서 알아차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길러진다. 이 과정에서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뀌면서 수용과 이해의 그릇이 커진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좀 더 분명하게 구분할 줄 안다. 회복탄력성은 개인이 다양한 스트레스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자신의 강점과 미덕을 최대한 발휘해서 잘 적응해 나가는 긍정적 성장을 실현하는 기초가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온전한 수용과 이해, 그리고 타인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긍정적 존중과 수용, 공감적 이해를 바탕으로 잘 적응해가는 역동적인 에너지다.  

    

나는 40대에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죽을 각오로 치유 방법을 배워 회복했다. 그 이후 심리학으로 나를 구석구석 탐색하면서 제법 나를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50대에 그렇게 자만과 교만에 빠지면 한 방에 훅 넘어간다는 것을 또 배웠다. 내 안에 남아 있는 교만, 자존심, 인정받고 싶은 욕구의 뿌리를 찾아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 내가 맞닥뜨리는 고통스러운 상황도 심리적 면역력을 기르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제는 매순간 나를 보려고 한다. 볼 때마다 내 안에서 온갖 두려움과 불안, 근심 걱정, 우울, 절망, 후회, 재잘거림, 감각 느낌, 욕구, 기대, 충동, 갈망이 쉬지 않고 오르내린다. 내 안의 경험과 소통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사람은 매 순간 몸과 마음을 조심(操心, watch) 또 조심해야 한다. 역지사지의 공감적 이해와 자기 성장을 위해서!    

  

(Tip!)심리적 성장을 위한 마음가짐

고통스럽고 막막하다고 ‘생각’되는 스트레스라도 일단 숨 세 번만 크게 들이마시고 내쉰다.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 전화위복(轉禍爲福)’이다’라고 외친다. 주변에 또는 과거에 그런 사례나, 동서양 고전에 나오는 인물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려서 ‘그렇구나’라고 인정한다. 우리의 삶은 매순간 선택의 결과이다. 좋은 선택 나쁜 선택이 아니라 내가 정신차리고 선택했느냐가 중요하다. 습관적으로 자동적으로 감정적으로 선택한다면 자기 삶을 살지 못한다. 일시적으로는 손해가 되고 상처를 입더라도 숙고(熟考)를 통해 선택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세상이 끝장날 것처럼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도 지나고 보면 남들과의 세상 삶 ‘오십 보 백 보’ 차이다. 조급함, 조바심, 초조함, 불안은 사람을 긴장시킨다. 잠시 폭우를 피하는 시간적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벗어나려고 허둥댈수록 더 빠져든다. 빠져나오는 방법은 ‘나’를 탐색해서 알아차리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경험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몸에서 올라오는 감각 느낌과 감정(모욕, 열등감, 치욕, 분노, 무기력, 불공정에 대한 격노, 공분 등), 생각, 욕구 등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잃은 것에 집착하는 욕구를 알아차리고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그렇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다른 관점으로 상황이 보이기 시작한다. 세상에는 잃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얻는 게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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